[디지털투데이 황치규 기자]인텔은 80년대 앤디 그로브 주도 아래 경쟁이 치열한 D램 사업에서 철수하고 CPU 사업에 집중하며 죽다 살아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는 과감한 결정이었고 지금도 인텔의 운명을 바꾼 결정으로 불리운다. CPU에 집중한 뒤 승승장구하다 새롭게 부상하는 모바일 패러다임에는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이는 인텔이 테크 생태계에서 존재감이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80년대는 과감한 결정으로 변신해 체질을 바꾼 인텔이 21세기 들어 모바일에선 해맸던 이유를 어떻게 봐야할까?

국제 관계(IR) 전문가 크리스 밀러가 쓴 칩워에 따르면 80년대는 배가 너무 고팠고 2000년대는 거꾸로 배가 너무 불렀다. 아쉽울게 없다 보니 어지간한 기회에는 눈이 잘 나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PC와 서버칩으로 버는 매출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지 싶다. 이 과정에서 인텔은 아이폰용 칩을 만들어줄 수 있겠느냐는 애플의 제안을 거절하기에 이른다.

"한때 앤디 그로브에게 조언을 건넸던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의 눈으로 보자면 인텔의 딜레마는 쉽게 진단 가능한 것이었다. 인텔 직원이라면 클레이턴 크리스텐슨과 그가 제시한 개념인 혁신가의 딜레마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텔은 사실상 돈을 찍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PC용 프로세서 비즈니스에 너무 오래 안주해 있었다. 앤디 그로브가 인텔을 D램 제조 회사에서 프로세서 제조사로 탈바꿈시켰던 1980년대와는 사정이 달랐다."

"당시 인텔은 돈을 피처럼 흘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회사중 하나였다. 인텔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야 한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다.. 문제는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너무도 달콤했다는 것이다. 인텔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두개의 성체인 PC와 서버에 틀어박혀 x86이라는 깊은 해자로 보호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맥 컴퓨터에 인텔 칩을 도입하기로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잡스는 오텔리니를 찾아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애플이 신제품으로 컴퓨터와 핸드폰을 결합하려 하는데, 인텔이 그 목적의 칩을 만들어 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모든 휴대 전화는 그에 맞는 운영체제가 있고 휴대전화 네트워크와의 통신을 관리하는 반도체가 들어 있다. 하지만 애플은 새로운 전화기가 컴퓨터처럼 작동하기를 원했다. 그러자면 컴퓨터에 들어가는 것처럼 강력한 칩이 필요할 터였다. 오텔리니는 훗날 기자 알렉시스 마드리갈을 만난 자리에서 당시 벌어진 일을 털어 놓았다."

"애플은 정해진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단 한 푼도 더 주려 하지 않았죠. 그때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들어오는 주문량을 더 늘리라는 식으로 진행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당시 예측했던 비용은 잘못됐고 소비된 칩의 물량도 모든 사람의 생각보다 100배나 더 늘어났습니다. 결국 인텔은 아이폰용 칩 공급 계약을 거절했다."

이후 상황은 많은 이들이 아는 대로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패러다임을 바꿨고 모바일이 주는 기회를 뒤늦게 알아차린 인텔은 따라잡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여전히 PC와 서버 밖에선 마이너에 머물러 있다.

"애플은 휴대전화에 들어갈 칩을 공급해줄 다른 업체들을 물색했다. 잡스는 암의 아키텍처에 주목했다. x86과 달리 모바일 기기에 최적화되어 있었고 전력을 효율적으로 소비했다. 초기 아이폰의 프로세서는 TSMC의 뒤를 이어 파운드리에 뛰어든 삼성이 제작했다."

"아이폰이 틈새 시장 상품이 될 것이라는 오텔리니의 예측은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그 실패를 깨달았을 무렵에는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훗날 인텔은 스마트폰 산업에서 지분을 가져가기 위해 발버둥쳤다. 하지만 스마트폰용 제품을 만드는 데 수십억달러를 투입하고서도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낼 수 없었다. 오텔리니와 인텔이 사태를 파악하기 전 애플은 깊숙한 해자를 파고 거대한 이윤의 성채를 쌓아 버린 것이다."

"인텔이 아이폰 칩 공급 계약을 거절한지 채 몇 년도 흐르지 않아 애플은 스마트폰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기 시작했다. 인텔이 PC 프로세서를 팔아서 얻는 것보다 더 큰 수익이었다.  인텔은 애플이 쌓은 성벽을 허물기 위해 몇 차례 시도했지만 애플은 이미 선발주자의 이점을 누리고 있었다. 특히 인텔의 PC 사업이 여전히 높은 이익을 내고 있고 데이터센터 산업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던 터라 2등이 되려고 수십억달러를 쓰는 일은 분명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따라서 인텔은 오늘날 판매되는 칩 중 3분의 1을 차지하는 모바일 기기 분야에서 발을 들일 방법을 찾지 못했고 그 상황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