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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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수 IT칼럼니스트]"양은 온순한 동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다.”

16세기 토마스 모어가 소설 ‘유토피아(Utopia)’을 통해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으로 인한 농민과 노동자의 처참한 상황을 묘사하며 한 말이다. 당시 영국에서는 양모 가격이 크게 오른다. 지주들은 양을 더 많이 키우기 위해 공유지였던 밀밭에 울타리를 세워 초지로 바꾼다. 농민들은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 거지나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도둑질로 사형을 당한다. 그야말로 ‘이판사판’인 상황이 벌어진다.

이러한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 사유재산이 생기게 된다. 그 결과 소수의 지주와 자본가, 다수의 노동자로 나뉘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반이 마련된다. 한편으로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한다. 토마스 모어는 인간의 탐욕과 사회의 혼란상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이상 국가인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유토피아’는 모두가 바라는 ‘좋은 곳(eu-topos)’이지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ou-topos)’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이 담겼지만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이 상존한다.

흥미로운 점은 16세기는 서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예부흥 운동인 르네상스의 절정기였다. 르네상스는 신화 중심의 중세 시대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으로 나가고자 한 시대 정신이자 유럽 문화 근대화의 사상적 원류였다. 도시의 발달과 상업 자본이 형성됨에 따라 르네상스는 이후 형이상학보다는 인간의 경험과 합리성을, 중세 시대의 권위보다는 인간의 이성과 개인의 자유를 지향하는 계몽주의로 이어진다.  

이렇게 유럽의 역사는 겉으로 보면 중세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나고 풍요로운 시대를 지나온 것 같다. 그에 반비례해 경작지를 잃고 도시로 유입된 수많은 대중의 삶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21세기를 맞이해 클라우드, AI 등 새롭고 혁신적인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이에 기반한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가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 디지털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핑크 빛일까?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은 정말 괜찮아졌을까?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떠오른 책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이었다. 여기서 계몽이란 앞서 언급한 신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즉, 중세 어둠의 세계에서 르네상스를 거쳐 빛의 세계인 근대로 넘어가면서 인간이 야만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저자는 계몽이 진행됨에 따라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인 상태에 들어서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종류의 야만에 빠져든다고 했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산업의 야만성을 강조했는데, 이런 상황이 현대 자본주의의 논리와 결합되어 대다수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획일화 시킨다고 지적했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계몽의 변증법'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책'이라고 했다. 파시즘, 전체주의, 매카시즘 등 2차 세계대전 전후의 계몽을 빙자한 광기의 시대를 '부정'과 '비판'을 통해 보여줬지만 지금의 디지털 전환 시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오늘날 새로운 문화와 이데올로기는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이전보다 더 강력하고 은밀한 형태의 야만성을 띄면서 인간을 통제한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편향적이고 신화화되어 나타난다. 대중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체 세뇌되어 간다. 인간의 개성이라는 것도 거대한 디지털 플랫폼 틀 안에서만 존재한다.

최근 MZ 세대들이 '나는 남들과 다르고 나만의 개성을 찾는다'고 한다. 그것이 과연 나만의 것일까? 그들이 즐기는 디지털 서비스와 문화가 과연 스스로 의지에 기반한 것일까? 아니면 소수의 대형 포털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신화화되어 마치 그래야만 할 것 같고, 그것이 마치 나만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자유다 너의 생명이건 재산이건 계속 네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이후 너는 우리들 사이에서 이방인이 될 것이다"

디지털 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이방인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무능력에 빠진다. 더 나아가 정신적인 무력감을 초래한다. 그래서 거의 모든 이방인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거나 타협점을 찾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사회가 개인에 가하는 폭력을 극명하게 보여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는 살인을 했다는 것보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무덤덤 했다는 사실에 더 비난을 받는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기존 사회의 틀에 동화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서 우리는 겉으로는 '새로운 것', '참신한 것', '기발한 것'을 원하는 것 같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반복적인 형태에서만 가능하다. 오늘날 인간이란 단지 디지털 자본주의 사회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산과 소비라는 메타 시스템 속 부속품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주체성'은 끼어들 틈도 없다. 디지털 시대의 지주들은 육체를 자유롭게 놓아두는 대신 곧바로 영혼을 공략한다. 새로운 형태의 암흑 시대인 것이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미국 중심의 대형 기업들은 사실상 전세계 관련 산업을 독점하고 있다. 최신 금융기법으로 금융시장도 장악하고 있다. 문제는 16세기 인클로저 운동 때처럼 그 성공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소수 자본가, 혁신가 등이 지나치게 많은 몫을 가져갔다. 그 과정에서 십 수년 간 노동력을 제공했던 일반 대중의 임금은 물가인상율을 고려하면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생활 수준도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급격히 악화됐다.

1994년 설립된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을 시작으로 30년이 지난 현재에는 전자상거래, 배송과 물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등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플랫폼의 거의 전 영역에서 압도적인 시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대규모 금융 자본을 활용한 공격적인 투자를 기반으로 약탈적 가격정책(Predatory Pricing)과 사업 영역의 수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을 통한 확장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어떤 형태로든 아마존에 의존하고 있다. 아마존과 경쟁하는 기업들 조차 어떤 영역(예를 들어 클라우드 컴퓨팅)에서는 이마존의 서비스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전 세계 기업 시가총액 순위를 살펴봐도 상위 5위(2023년 6월 기준) 안에 아마존을 비롯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이 포함돼 있으며, 이들 모두 주요 영역에서 반독점에 가깝게 디지털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점점 가속화되면서 소수 빅테크 기업의 반독점이라는 울타리도 더 높고 공고해 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주류 미디어에서는 이들이 새로운 디지털 자본주의를 이끄는 영웅인 것처럼 찬사를 보낸다. 그들이 선보인 혁신적인 기술과 서비스는 세련되고 창의적일 뿐 아니라 윤리적이고 인류 전체에 기여를 한다고 선전한다. 겉으로 드러난 메시지만 보면 빅테크 기업들은 노동자 착취에 의존해 진화해 왔던 자본주의의 속성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마존 물류센터에 있는 로봇이 직원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

올해 1월 아마존의 영국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첫 공식 파업을 벌이며 내세운 구호이다. 영국 아마존은 지난해 여름 시급을 5% 인상했다. 영국 물가 상승률은 이전 달 대비 10.5%였다. 열악한 급여 문제 외에도 이들은 물류센터의 근로 시간이 길고, 작업 속도가 너무 빨라 부상률이 높았다. 특히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2분 이상 자리를 비우기만 해도 감시 시스템에 포착돼 추궁 받는다고 밝혔다.

미국 아마존은 회사 설립 이래 무노조 경영 전략을 펼쳐왔다. 2022년 4월 뉴욕주에 위치한 JFK8 물류센터에서 ALU(Amazon Labor Union)이란 이름으로 미국 최초의 합법적 아마존 노동조합이 탄생했다. 미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10%에 불과한 것을 고려할 때 ALU 결성은 향후 그들의 권익이 어떻게 보장될지 여부를 떠나 미국의 노동운동 흐름에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클라우드, AI 등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오늘날의 디지털 인클로저 운동은 16세기와 달리 더 은밀하고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거대 디지털 서비스가 풍요로운 일상과 찬란한 미래를 선사할 것처럼 보이지만, 기술의 진보는 이미 여러 영역에서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애거나 줄어들게 하고 있다(울타리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반면 울타리 안에 남아 있어도 이전보다 더 열악해진 상황으로 전락하거나 AI, 로봇과 같은 지능적이고 자동화된 시스템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16세기 인클로저 운동 이후 야기된 처참하고 야만적인 이면의 현실. 일반 대중들이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굶어 죽거나 사형당해 죽거나) 마찬가지다.”라고 절규했던 당시 상황이 21세기 디지털 세계에서도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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