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 모(29세 여)씨는 지난 4월 '갤럭시S5' 단말을 구매했다. 기존 단말 약정이 6개월 남았지만 대리점 직원이 최신 단말이라고 부추겨 큰 맘 먹고 폰을 바꿨다. 전략 스마트폰이라고 샀지만 음성 통화 외 SNS나 카톡, 웹 검색을 이용하는 것이 고작이였다. 이후 6월 ‘갤럭시S5 광대역 LTE-A’가 출시됐다.

이 씨는 “최신폰이 불과 2달만에 구형폰으로 전락했다”며 “갤럭시S5는 이미 일부 매장에서 공짜에 풀리고 있다. 소비자를 농락하는 처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삼성전자가‘갤럭시S5 광대역 LTE-A 단말’을 출시하면서 갤럭시S5 구매자들이 뒤통수를 맞았다. 2달만에 프리미엄 단말이 출시되며 소비자는 호갱(어리숙한 사람을 뜻하는‘호구’와‘고객’의 신조어)으로 둔갑했다. 휴대폰 출시 주기가 짧아지면서 발생한 상황이다.

휴대폰 출시 주기의 단축은 잦은 휴대폰 교체로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입자를 확보하려는 이동통신사와 판매량을 높이기 위한 제조사가 휴대폰 교체를 종용한다는 지적이다. 지나치게 잦은 휴대폰 교체는 통신비 부담을 포함한 여러 역효과를 낳는다. 그 어느때보다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왼쪽부터 LG 'G3' 삼성전자 '갤럭시S5 광대역 LTE-A'

휴대폰 교체율 세계 1위, 단말 출시 주기↓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세계에서도 휴대폰을 가장 자주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국내 휴대폰 교체주기는 약 16개월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위권 국가는 약 24개월임을 감안하면 8개월 이상 빠른 것이다.

또한 세계 88개국 휴대폰 시장 중 한국 휴대폰 이용자들의 연간 제품 교체율은 67.8%로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은 2위 그룹인 칠레(55.5%), 미국(55.2%), 우루과이(53.6%)의 교체율보다 월등히 높았으며, 교체율이 가장 낮은 방글라데시보다도 8배나 높았다. 2017년에도 교체율은 62.9%로 여전히 10명 중 6~7명은 휴대전화를 새로 바꿀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드럼 세탁기나 냉장고 등의 가전을 1년 4개월마다 바꾸는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제조사들의 단말 출시 주기가 짧아지면서 휴대폰 교체는 더욱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일반적으로 1년에 2종류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출시했으나, 최근 이같은 공식마저 깨졌다. 삼성은 봄에 갤럭시S 시리즈를 가을에 노트 시리즈를 선보여왔는데, 지난 4월 갤럭시S5를 선보이고 6월 변종 모델인 갤럭시S5 광대역 LTE-A를 출시했다. 여기에 9월 갤럭시노트4와 더불어 갤럭시F(갤럭시S5 프라임)도 함께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LG전자 역시‘G3’를 당초 예상됐던 7월보다 2개월 앞당겨 선보였다. 지난 2월 G프로2를 출시한 이후 3개월 만에 G3를 내놓은 것이다. 하반기에는 G플렉스2가 나올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조사들이 신제품 공백기를 최소화해 경쟁사에 뒤지지 않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1년씩 휴대폰 바꾸라고 권유하는 사회

유례없는 휴대폰 교체율의 원인은 국내 이통시장이 소비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비대칭적인 시장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요인으로는 단말기와 통신서비스가 밀접하게 결합되어, 이통사와 제조사의 보조금‘짬짜미(담합)’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현 시장은 포화상태로 진입하면서 제조사와 이통사가 휴대폰 출시를 통해 경쟁사 고객을 뺏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단말 판매량 증가와 경쟁사 가입자 유치를 위해 보조금으로 유인한 뒤, 기존 단말 약정을 깨도록 부추기는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쓸만한 스마트폰인데도 새로 구매하게 되는 과소비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마케팅 또한 이를 겨냥한 상품이나 서비스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선 판매점에서는 단말을 한 개라도 더 팔기 위해 기존 단말 할부금을‘페이백’으로 지원하고 있다. 페이백은 정상가로 휴대폰을 개통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해당 가입자에게 보조금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물론 불법이다.

▲ 사진 속 판매점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은 없음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착한 기변, 대박 기변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월정액 6만2000원 이상의 고액 요금제 가입자나 8만원대 LTE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 신규 단말기를 싼 값에 구매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KT의 스펀지 플랜도 7만7000원 요금제 가입자가 12개월이 되는 시점에 쓰던 폰을 반납하면 잔여 할부금이 면제되는 제도이지만, 자칫 단말 교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평소 통신비가 적게 나오는 소비자라면 휴대폰을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해 불필요한 통신비 지출을 하는 셈이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고가 요금제 가입을 유도해 가입자당 월평균 수익(ARPU)을 높일 수 있으므로 절호의 기회다.

적당한 단말 교체는 통신사와 단말 제조사 등 이통업계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잦은 교체는 되려 통신비 폭탄을 초래한다. 90만원의 스마트폰을 24개월 약정에 구매하면 단말기 대금만 3만7500원이다. 여기에 LTE62 요금을 합하면 전체 통신비만 10만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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