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aS [사진: 셔터스톡]
SaaS [사진: 셔터스톡]

[강경수 IT칼럼니스트]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 되겠습니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 그러하겠지만, 사업 영역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대부분 국내 기업의 한결같은 비전이다. 소프트웨어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필자 또한 관련 업계 종사자로서 오랜 기간 대외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며 수없이 반복했던 메시지이다.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에게 있어 ‘글로벌 기업이 되겠다’는 비전은 어쩌면 숙명일 수 있다.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통계 정보를 제공하는 SW통계포털(stat.spri.kr)을 보면 전세계 시장규모에서 한국은 0.9%에 불과하다.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46.5%)를 비롯해 영국, 일본, 독일 등 G7 국가의 비중을 합하면 74.7%에 달한다.  

국내 기업이 내수 시장에서 일정 이상 성과를 거두었다 해도 0.9%에 불과한 시장 규모에서 지리멸렬한 상황이 빠지지 않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IT서비스, 게임 등을 제외한 순수 소프트웨어 기업 중 연 매출 1,000억 원 이상을 달성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대다수 기업은 예나 지금이나 영세성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더 심란한 것은 이 작은 시장에서조차 주요 영역에서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이 반독점에 가깝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자본이나 기술 경쟁력 등에서 그들과 공정한 게임을 하기도 어렵다.    

전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한국은 막대 그래프를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전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한국은 막대 그래프를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2010년 이전까지 클라우드는 그냥 한때 반짝하다 사라질 유행처럼 여겼던 것 같다. 2006년 아마존이 AWS(아마존웹서비스)라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다른 IT 리더(오라클의 래리 앨리슨,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 등)는 대부분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2010년 전후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애저 클라우드를 뒤늦게 시작하고, 여러 빅테크 기업이 너도나도 클라우드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본격적인 성장을 이어갔다. 

매년 클라우드 현황 보고서를 발표하는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에 의하면 클라우드는 이미 빠른 속도로 전통적인 소프트웨어를 잠식하고 있으며, 2032년에 이르면 사실상 클라우드가 곧 소프트웨어인 세상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내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IDC(2022년 1월)에 따르면 2021년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클라우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22.3% 불과했지만 2025년에는 32.1%까지 증가한다. 성장율 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격차를 보인다. 전통적인 소프트웨어는 연간 1.1%인 반면 클라우드는 14.9% 성장이다. 

물론 시장조사기관마다 예측하는 수치는 조금 다르고,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시장이 완전히 사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클라우드가 소프트웨어의 미래를 주도할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없을 듯 하다. 전통적인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 입장에서도 이제 클라우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생존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 시점인 된 것이다.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는 클라우드가 2025년에는 기업 소프트웨어 50%, 2030년까지 75% 이상을 침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출처 : State of the Cloud 2020, Bessemer Venture Partners).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는 클라우드가 2025년에는 기업 소프트웨어 50%, 2030년까지 75% 이상을 침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출처 : State of the Cloud 2020, Bessemer Venture Partners).

앞서 거시적인 시장 상황이나 성장 측면 외에도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이 클라우드로, 즉 SaaS(Software-as-a-Service) 기업으로 전환해야하는 이유는 여럿이다. 먼저 ‘예측 가능하고 반복적인 수익 모델’을 확보할 수 있다. SaaS는 기본적으로 구독 방식의 비즈니스이기에 기존 라이선스 방식의 불규칙한 수익 대신 월이나 연 단위의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두 번째는 지역의 한계를 넘어서는 ‘규모의 경제’의 실현이다. 이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과도 연결된다. 기술적으로 SaaS는 클라우드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Cloud-Native Application)이기에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통해 연계되는 서비스 지향 아키텍처(SOA)로 구축되며, 모든 서비스 운영 방식이 자동화돼 있다.

특히 멀티테넌시(여러 사람이 동시에 단일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를 보장하기에 오류 수정이나 새로운 기능을 업데이트할 때도 모든 고객에게 즉각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네트워크로 연결만 돼 있다면 회사의 물리적 위치와 상관없이 전세계 누구에게도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셈이다. 따라서 자사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충분히 갖췄다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진다. 실제로 북미 시장에서 흔히 유니콘이라 불리는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소프트웨어 기업 중 80%가 B2B SaaS 기업이다. 

최근 창업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대부분은 사실상 시작부터 비즈니스 모델이 SaaS이기에 별 상관없다. 문제는 SaaS로 전환해야하는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특히 오래 기간 제품 공급 또는 시스템 구축 기반의 비즈니스를 전개했고, 그 결과 어느 정도 성과까지 이뤘다면 아이러니하게 SaaS화 하는데 있어서는 지금까지의 성공이 걸림돌이 되고 고민도 더 커진다. 

클라우드 소프트웨어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은 아직은 SI(시스템 통합) 프로젝트 방식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은 제품을 공급하고 설치하며 고객에 따라 최적화라는 명목의 추가 개발을 감수하는 시장이 주류이고 수익이 대부분이 이 곳에서 나온다.

이런 방식은 그동안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이 글로벌 외산 기업과 경쟁해 일정 성과를 거두는 데 기여를 한 측면도 있다. 흔히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이 자사의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많이 어필했던 ‘(외산 기업과 달리) 고객 맞춤의 차별화된 기술지원을 제공한다’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우스개 소리로 “어느 회사의 소프트웨어는 완제품이 아닌 반제품에 가깝고, 수없이 많은 고객별 버전이 따로 있어 같은 소프트웨어가 맞나 싶다”라고 할 정도였다. 

이는 클라우드 시대를 맞이해 ‘기술 부채(기존에 하던 프로그램 개발 방식을 고수하고 선진화하지 않으면 나중에 부채를 갚듯이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로 청구된다.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이 자사 제품을 경쟁력을 갖춘 SaaS로 전환하는데 치명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클라우드 네이티브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상당한 개발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의 조직과 자금 규모를 고려할 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업적 측면에서는 SaaS로 전환하는 초기 단계에서 비용이 증가하는데 비해 당장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데스밸리(사업 초기 수익이 나지 않아 겪는 침체 상황)’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특히 SaaS 전환으로 인해 기존에 판매하던 소프트웨어의 수익과 시장점유율이 감소하는 자기시장잠식(Cannibalization) 현상이 일정 기간 필연적으로 발생하기에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실제로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의 경우 2012년부터 2015년까지의 4년간의 SaaS 전환기에 급격한 수익율 감소를 감내해야 했다. 물론 SaaS 전환이 완료된 2016년부터는 이전보다 더 큰 수익율을 기록했다(2014년 6.5%였던 수익율은 2020년 41%로 증가함).     

사고 방식의 전면적인 전환도 중요하다. SaaS 기업이 되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서비스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 왔던 조직구성과 문화, 비즈니스 마인드 등 기업의 아이덴티티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구호로는 SaaS를 외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은 여전히 늘 해왔던, 당장 매출이 발생하는 익숙한 방식의 비즈니스를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SaaS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끼리 구색맞추기식 TFT(태스크포스팀)만 구성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도 파워포인트 장표에서만 존재하는 SaaS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 웬만한 소프트웨어 기업도 기능적으로는 메신저나 화상회의 SaaS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슬랙과 줌과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빙산의 일각’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지속적으로 무수히 많다.

기존 소프트웨어를 SaaS화 했다고 해도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계정 관리, 빌링 등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한 별도의 포털 플랫폼이 필요하다. 영업 부서가 직간접적으로 하던 대면 세일즈보다 마케팅 활동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또한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보다 서비스 운영 인력이 더 많아야 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공한 인터넷 서비스나 MMORPG(대규모 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 서비스를 하던 기업의 운영 노하우를 이식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구구절절 이야기하다 보니 과연 전통적인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이 SaaS 기업으로 거듭나고 글로벌 기업으로까지 성장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주변을 살펴보면 이론적으로는 왜 SaaS를 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해 대부분 아는 것 같다. 결국 SaaS로 가는 멀고도 험한 길을 단순화하면 고통을 감내하는 ‘(기업 오너의) 결단과 실행’만이 남는다. 자금의 여유도 필수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영세한 소프트웨어 기업에게 SaaS화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일 수 있다. 이들에게는 별도의 투자나 지원이 필요하겠다. 

물론 국내 시장이나 고객 상황을 고려했을 때 SaaS화는 북미 시장과 달리 아직은 과도기적인 측면이 있다. 여전히 국내 고객은 SaaS보다는 설치형 제품과 자기들 입맛에 맞는 최적화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보인다.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이 제공하는 검증된 SaaS의 종류가 제한적이다 보니 SaaS 서비스 수준에 대한 불안과 보안에 대한 우려도 큰 것 같다.  

2015년 창업한 맞춤형 커뮤니케이션 API를 제공하는 센드버드는 2021년 6년만에 1억달러의 시리즈C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10억5000만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한국인이 창업한 최초의 B2B SaaS 유니콘 기업이 된 것이다. 이 회사의 특이한 점은 국내가 아닌 바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창업한 스타트업이었고,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객사도 국내에 한정되지 않고 전세계에 분포되어 있다. 

센드버드의 사례를 보면서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이 SaaS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내부의 일부 조직이나 TFT 형태로 진행하는 SaaS 전환이 아닌 지금과는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조직과 인력으로(예를 들어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것처럼 별도의 법인을 만들어서), 지역도 압도적인 시장규모를 갖고 있는 북미시장에서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갈수록 폭증하는 데이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API의 등장, 그리고 올해 불어 닥친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의 생성형 AI의 열풍 등에 이르기까지 SaaS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나날이 더 다채로워지고 있다. 더불어 공략할 수 있는 시장도 이제 북미를 넘어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 여러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기술의 진보와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차별화를 위한 SaaS 기업의 노력도 더 강력해질 필요가 있다.

SaaS를 위해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딘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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