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밤새 가며 봤던 미국 TV 드라마 시리즈 중 'X-파일(1993~2018년, 총 11시즌)'이 있었다. FBI요원 멀더가 어린 시절 자신의 여동생이 외계인에 납치된 것이 정부의 음모에서 비롯됐다고 믿고, 동료인 스컬리와 함께 그 음모를 파헤치고 감추어진 진실을 찾아나가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X-파일에 나오는 외계인의 존재나 지구 식민화 정책 등과 같은 거대한 음모론(Conspiracy Theory)은 영화 '컨스피러시(1997년)'에 와서는 실생활에 더 밀접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이 음모에서 비롯됐다고 믿고 있으며, 본인조차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음모론에 관여되어 있다.

멜깁슨,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컨스프러시’의 포스터. 이 영화의 원제 자체가 ‘음모론(Conspiracy Theory)’이다
멜깁슨,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컨스프러시’의 포스터. 이 영화의 원제 자체가 ‘음모론(Conspiracy Theory)’이다

현실 사회에서도 음모론은 상당히 신빙성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실제로 미국인의 절반 가까이가 어떤 형태로든 음모론을 믿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로스웰 UFO 추락, 케네디 암살, 9.11 테러 등 주요한 사건의 배후에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고, 정부는 무언가 밝힐 수 없는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각종 정치사회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실체적인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엔 각종 음모만 난무한 체 흐지부지 끝나고 경우가 많다. 언론 매체에서도 진실에는 관심 없고 오히려 음모론의 확대 재생산하는데 동참하기까지 한다. 

음모론이 생기는 이유는 정보의 공유가 자유롭지 못하고 특정인 혹은 집단이 그것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 소통의 불균형. 즉, 정보를 가진 쪽과 이 정보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의 불일치 사이에서 음모론이 생긴다. 

음모론의 문제는 무엇일까? 음모가 음모를 파생시키고, 이렇게 음모만 판치게 되면 정작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진실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마치 음모론을 진실로 믿게 된다. 음모론은 대부분 그 내용 자체가 흥미진진해서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믿고 싶게 만든다. 또한 거짓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이 상당히 힘들 뿐만 아니라 설사 그렇다 해도 관련 이슈가 한참 지난 후이기에 '아님 말고'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면 그만이다. 

갑자기 음모론을 끄집어 낸 이유는 (몇몇 예외적인 경우는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개방과 공유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였다. 반독점이 일상화돼 왔던 IT분야에서는 적어도 그것이 특정 집단이 아닌 공공의 이익과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인간적 반항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개방과 공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대표적인 기술 중의 하나가 P2P(Peer-to-Peer)이다. 90년대 이후 널리 사용되는 인터넷 서비스나 최근 부상하고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IT 서비스는 사용자와 서비스 제공자가 분리되어 있는 클라이언트-서버 모델이다. 이에 반해 P2P란 중앙 집중적인 서비스 형태를 탈피해 개인과 개인이 서로 단순한 정보에서부터 애플리케이션이나 컴퓨팅 리소스까지 등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게 한 서비스 기술이다. 

P2P 기술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블록체인’이다. 블록(Block) 단위의 데이터를 사슬(Chain)처럼 연결해 저장한다고 해서 블록체인이라 명명했다. P2P 기반 방식의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의 일종으로 저장된 데이터는 분산하여 저장하기에 분산 원장 기술이라고도 불린다.

블록체인의 등장이 큰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오늘날 IT 세계가 개방과 공유가 자유로웠던 시대에서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일부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모든 정보와 기술의 반독점 상황이 점점 고착화되고 있기에 블록체인은 단순히 탈중앙적인 금융 시스템을 넘어 누구나 개방과 공유를 기반으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시대를 대표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반영할 것일 수 있다. 

사실 80년 이전까지, 모든 컴퓨터 프로그램은 자유 소프트웨어 형태였다. GNU 프로젝트의 창시자인 리처드 스톨만은 그때를 "특정한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를 자유롭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수정하거나 그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언제든지 열려 있었던 공유의 정신이 충만한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PC가 대량 보급되고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달라진다.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또는 서비스)를 소유와 독점에 관한 법률로 제한함에 따라 개발자와 사용자에 대한 자유로운 권리가 금지됐다. 

이후 개발자나 사용자는 몇몇 특정 회사의 소프트웨어에 종속적일 수 밖에 없고 이것은 소프트웨어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우리에게 ‘자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떼어놓을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특정 회사의 소프트웨어만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다.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주류에서 소외되는 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다른 대안에 대해서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오랜 기간에 걸쳐 알게 모르게 빅테크 기업의 반독점에 구속된 노예 상태에 익숙해졌는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서비스 정책에 좌지우지될 수 밖에 없다. 설사 잘못된 정책에 항변을 해도 결국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여전히 대부분의 이득은 고스란히 그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젊은 시절의 리처드 스톨만.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대부터 PL/1 언어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했으며 1970년 하버드에 입학했다. 대학 2학년 때 MIT 인공지능연구실에 연구원으로 채용돼 ‘개방과 공유의 자유’라는 해커들의 문화적 토양을 경험한다.
젊은 시절의 리처드 스톨만.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대부터 PL/1 언어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했으며 1970년 하버드에 입학했다. 대학 2학년 때 MIT 인공지능연구실에 연구원으로 채용돼 ‘개방과 공유의 자유’라는 해커들의 문화적 토양을 경험한다.

리처드 스톨만은 1984년 MIT 연구원을 그만두고 반독점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에 대항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GNU 프로젝트와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시작한다. GNU 프로젝트와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목적은 80년대 이전과 같이 사용자에게 구속 받지 않은 자유의 권리를 되찾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카피라이트로 사용자 권리를 구속하는 독점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에 반대해 소프트웨어를 자유로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카피레프트라는 것을 정의하고, 모든 자유 소프트웨어는 이를 실제로 구현한 라이선스인 GPL을 따르도록 했다. 

"어떤 프로그램을 좋아한다면 당연히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황금률(성서에나오는 “대우받고자 하는 데로 대하라”)이라고 생각한다.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사용자를 각각 구분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고, 사용자 서로가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사용자간의 결속이 깨지는 것을 거부한다. " - GNU 선언문 중에서 

GNU는 "GNU는 유닉스가 아니다."란 의미를 갖는 "GNU's Not UNIX"의 약자로, 원래의 문장 안에 자신이 이미 들어 있는 재귀 약자이다.
GNU는 "GNU는 유닉스가 아니다."란 의미를 갖는 "GNU's Not UNIX"의 약자로, 원래의 문장 안에 자신이 이미 들어 있는 재귀 약자이다.

GNU 프로젝트가 시작 된지도 어느덧 40년이 지났다. 긴 세월을 거치며 GNU 프로젝트는 다양한 형태의 오픈소스 운동을 파생시키며 발전했다. 초기의 과격하고 선악구분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과 시대의 요구에 맞게 변화를 겪으며 성장한 것이다. 그 결과 리눅스는 오늘날 클라우드 컴퓨팅의 사실상 표준 운영체제로 자리잡았다. 그 기반 위에 가상화, DB, 빅데이터, 미들웨어 등 여러 분야의 수많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이 순간에도 주요 서비스 항목으로 클라우드 인프라 위에서 동작하고 있다. 이렇게 클라우드 시대를 맞이해 오픈소스가 주류로 부상했다. 하지만 과연 그에 비례해 개발자와 사용자는 과연 80년대 이전과 같은 개방과 공유의 ‘자유’를 만끽하게 됐을까.

대규모 자본이 투자돼야 하는 클라우드 인프라의 특성상 개별적인 오픈소스의 사용 비중과 무관하게 빅테크 기업 중심의 반독점 상황은 더 고착화돼 가는 모습이다. 최근 유럽연합은 10여 년 만에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반독점 조사에 착수했다. MS가 클라우드 기반 협업 플랫폼 ‘팀스’를 주력 서비스인 ‘마이크로소프트365’에 끼워 팔아 시장 경쟁을 방해했다는 혐의를 살핀다고 한다. 

또한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기 위해 윈도우와 오피스를 자사의 애저 클라우드 외에 사용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서한을 미 연방거래위원회 보내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구글의 경우에도 자사 검색엔진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 여부를 다투는 재판을 해야한다. 구글이 강력한 검색엔진으로 인터넷 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반독점 법안에 명백히 위배된다고 주장도 제기된 것이다.

이미 거대해 질 정도로 거대해 진 오늘날의 IT 환경에서 80년대 이전의 개방과 공유의 ‘자유’가 풍요로웠던 시대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낭만적이고 순진한 발상일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지난 40년간 IT기술과 서비스는 너무 복잡하고 방대해져 여러 사람과 기업의 다양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보다는 빅테크 기업 중심의 시장지배력과 인수합병 등 승자독식의 방향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순수의 시절을 꿈꿀 수는 최소한의 권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점점 약육강식의 공륭화돼 가는 클라우드 시장을 보면서 비록 소수의 목소리일지언정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기 마련이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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