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지난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3차 국가초고성능컴퓨팅 육성 기본계획’(2023~2027년)을 확정했다.

제3차 기본계획은 엑사스케일 시대를 대비한 초고성능컴퓨팅 발전 전략으로 활용 분야별 혁신 지원, 초고성능컴퓨팅 자원 접근성 강화, 기술강국 도약, 생태계 기반 확충이라는 4대 중점 방향 추진을 통해 과학기술 및 경제·사회 혁신 가속화를 위한 초고성능컴퓨팅 기술력 및 인프라 확보를 목표로 한다.

국가초고성능컴퓨팅 육성 기본계획은 2011년 제정 및 시행한 ‘국가초고성능컴퓨터 활용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제 5조에 따라 5년을 주기로 수립하는 법정 계획으로, 국가초고성능컴퓨팅 분야 연구개발 및 인력양성, 초고성능컴퓨팅 자원의 효율적 구축 등을 포함하는 중장기 종합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초고성능컴퓨팅 세계 7대 강국 실현’을 제시한 제 1차 기본계획(2013년~2017년)을 통해 국내 초고성능컴퓨팅 활성화 기반을 마련했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초고성능컴퓨팅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한 제 2차 기본계획을 기반으로 세계 수준의 인프라를 확보하고 혁신성과 창출 및 산업/생활 현안을 해결하며 초고성능컴퓨팅 활용을 확대하고 응용을 전문화하는 등 국가과학기술 경쟁력 제고에 기여해 왔다.

특히 제2차 기본계획을 기반으로 2018년 도입된 국가초고성능컴퓨터 5호기 누리온(Nurion)은 총코어 수 57만20개, 25.7페타플롭스의 성능으로 도입 당시 세계 11위의 성능을 기록했다(2023년 6월 기준 성능 세계 49위). 

누리온은 월평균 시스템 가동률 99.4%, 사용률 74.4%, 최대 사용률 90.7%, 작업처리건수 약 965만 건(2019년~2022년)으로 국내 초고성능컴퓨팅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최근 초고성능컴퓨팅에 대한 수요는 과학·공학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산업계 및 국가·사회적 현안 해결 등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누리온은 이런 최근 수요에 맞춰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렇듯 한층 더 다양하고 활발해진 활용을 통해 누리온은 과학기술 R&D 수준 향상과 세계적 연구성과를 창출하는 등 국가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핵심 도구로서 기여해 왔다.

◆거대 계산자원 및 활용기술 개발 통한 세계적 수준 연구성과 창출 지원

누리온은 과학·공학 분야 연구 중심 지원을 통해 세계 최대 규모 근우주 은하의 생성과정을 규명하고 인간 정상 세포의 노화 및 말암 과정을 규명하는 등 초거대문제 및 난제 해결을 통해 세계적 우수 연구성과를 창출(SCI 논문 622건, NSC 저널 33건 유발, 2019년~2022년)함으로써 국가 과학 기술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근우주 은하의 생성과정을 규명한 유체역학 수치 모의 실험은 초기 우주 천체 및 은하 진화 과정을 담은 세계 최대 규모의 유체역학 우주 모형 시뮬레이션으로, 기존 세계 최대 규모 실험 대비 3배 이상 큰 공간, 10배 이상 규모인 100억개 입자와 500억개의 격자를 모사했으며, 누리온 전체 자원의 30%인 2,500 계산노드(17만개 코어, 7.5페타플롭스)를 사용해서 90일간 수행됐다. 이 실험을 통해 우주거대구조물이 은하의 분포, 생성 등 특성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했으며, 차세대 우주론적 유체역학 수치실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Astrophysical Journal 4편 발표, 2021년, 2022년, 2023년 7월, 2023년 8월).

인간 정상 세포의 노화 및 발암 과정도 규명했다. 누리온을 이용해 28명의 개인 피부, 혈액 및 대장 상피 조직에서 확보한 총 899개의 대규모 단일세포 전장유전체를 분석한 실험으로, 후성유전체 불안정성의 대다수가 초기 배아 발생 과정에서 형성됨을 증명했다. 이 실험은 향후 노화 및 질환 발생 제어, 암 예방 등 정밀치료 시스템 구축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며,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2023년 5월)됐다.

◆산업계 지원으로 기술혁신 기반 마련 및 생산성 향상 기여

누리온은 산업계 지원을 통해 메모리 집적도 향상을 위한 신소재 개발, 적층형 반도체소재 기반 다진법 메모리 소자 개발 등 나노 소재 분야 기술 혁신의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OLED 소재 물성 시뮬레이션 지원 시뮬레이션 해석기법 개발과 같이 자동화 도구 구축을 통한 공정 및 개발 과정 고도화·효율화·기술 국산화 같은 산업적 성과를 이뤄냈다.

우선 메모리 집적도 향상을 위한 신소재 개발했다. 반도체 분야에서 메모리 집적도를 현재보다 1000배 이상 높일 수 있는 신소재를 찾는 연구에 기여한 사례로, 누리온을 활용함으로써 ‘산화하프늄’이라는 분자에 들어있는 산소 원자에 전압을 가하면 원자간 탄성이 사라져 집적도를 향상시킬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현상을 이용하면 반도체 소형화시 저장 능력이 사라지는 문제점을 해결하여 현재 10nm 수준에 멈춰 있는 반도체 공정을 0.5nm까지 미세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으며,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2020년 7월)됐다.

적층형 반도체 소재 기반 다진법 메모리 소자도 개발했다. 누리온에 기반한 시뮬레이션과 실험적 검증으로 이차원 물질 기반 소자 다중비트 메모리의 비트 수 제어 기본 원리를 규명하고 ‘2차원 소재 플로팅 게이트(가장 많이 상용화된 메모리 소자 중 하나) 메모리 기반 다진법 소자 멀티비트 구현’에 관한 일반 법칙을 정립했다(Advanced Functional Materials(2021년)).

OLED 소재 물성 시뮬레이션 역시 지원했다. 삼성 디스플레이와 공동연구를 통해 OLED 디스플레이 분야에 특화된 초고성능컴퓨터 기반 자동화 웹 플랫폼인 Sync-OLED를 개발한 사례로, 시뮬레이션 전문 인력 및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 웹 환경을 기반으로 최소 조작만으로 표준화된 OLED 소재 물성을 계산할 수 있어 인력 및 시간·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도구를 활용하면 OLED 소재 관련 기업들이 손쉽게 누리온 기반으로 소재 개발에 필요한 물성을 평가할 수 있어 제품의 품질 향상과 경쟁력 강화가 예상되며, 현재 ㈜삼성디스플레이 협력사 12곳에서 제품개발에 활용 중이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국가·사회적 현안 해결...국민 삶의 질 향상 도모

과학기술 연구나 산업 분야 활용 외에도 누리온은 생명·보건, 기상·기후 등 국민생활과 직결된 공공서비스 분야와 자연재해를 포함한 재해대응, 국방 등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선제적인 대응과 효과적인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데 적극 활용되고 있다.

누리온은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 연구뿐만 아니라 개인의 유전적 특성이 코로나19 감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에도 활용됐다. 누리온을 활용한 연구를 통해 코로나19 스파이크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복원함으로써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기반이 되는 정보를 획득·제공했으며, 누리온에서 수행된 ACE2 단백질 유전 변이에 따른 바이러스 결합 시뮬레이션을 통해 코로나 19 감염률 변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PLoS Computational Biology(2020년 7월)).

온실가스 저감 예측 기술도 개발했다. 기존에 수행할 수 없었던 코크스 공정 전과정 시뮬레이션에 누리온을 활용함으로써 이산화탄소 감축량을 예측하고 공정을 최적화하는 기술을 개발한 사례다. 포스코와의 공동 연구로 탄생한 이 기술은 전산유체역학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철공정 중 하나인 코크스 공정에서 저감 가능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예측하는 기술로, 포항·광양의 제철소 2개의 전 코크스 공정에 적용시 연간 총 32만 톤의 탄소 감축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 초거대 규모 다리(Tacoma Bridge) 붕괴사고를 세계 최초로 재현했다. 누리온을 활용, 1940년 미국 타코마 다리 붕괴사고 당시 실제와 유사한 조건을 만들어 바람에 의한 다리 진동과 붕괴 매커니즘을 분석해 붕괴사고 전 과정을 세계 최초로 재현한 실험이다. 누리온 자원 중 2500노드를 90일간 사용해서 시뮬레이션을 수행함으로써 사고 이후 지금까지 붕괴과정이 명확히 이해되지 않았던 대형 재난을 해석했다. 대형 건축물 설계 단계부터 초고성능컴퓨팅 기술을 활용, 붕괴 위험도 등을 도출함으로써 자연 현상에 의한 건축물 붕괴 같은 재해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을 시사한 사례다(Journal of Fluid Mechanics(2022년).

여기에 공군 수치예보 협업체계를 실시간 운영 중이다. 누리온은 공군 전용 계산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공군수치예보를 무중단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비상시 전력 손실 최소화를 위한 기상 정보를 실시간으로 생산·지원하고 있다. 또한 군 훈련 및 연습시 누리온을 활용한 수치예보모델 운영 전환 훈련을 정기적으로 수행해 전시상황에서 공군 수치예보시스템 피폭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함으로써 국가 위기상황 체제 대응에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누리온은 첨단 분야의 세계 수준 연구성과 창출, 산업 생산성 향상, 국가·사회문제 예측·해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며 지능정보사회의 핵심인프라로서 초고성능컴퓨터의 위치를 재확인시켰다. ‘제3차 국가초고성능컴퓨팅 육성 기본계획’에서는 제2차 기본계획을 기반으로 한 누리온의 성과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양한 분야의 초고성능컴퓨팅 활용 확대를 위한 지원을 체계화하고, 혁신적 활용 성과 창출 및 산업계 활용 활성화를 추진한다. 

이를 위해 국가 초고성능컴퓨터 6호기(600PF)를 도입, 초고성능컴퓨팅 성능을 고도화하고 소재·나노, 우주, 자율주행, 핵융합 등 과학 난제 및 한계돌파 분야의 기술개발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기상, 생명·보건, 해양, 국방 등 공공·생활밀착형 현안 해결에 초고성능컴퓨팅을 적극 활용하는 등, 혁신적 활용 성과를 창출하고자 한다. 특히 초고성능컴퓨팅 활용이 저조한 산업계의 초고성능컴퓨팅 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M&S) 기술·인공지능 기반 모의실험(시뮬레이션) 기술 등을 개발하고, 다양한 기업·연구자의 초고성능컴퓨팅 활용을 지원할 연구개발 서비스업을 육성함으로써 엑사스케일 시대에 대한 대비를 넘어서 사회 전반의 혁신을 지원하고자 한다.

이미 주요국은 초고성능컴퓨팅의 중요성을 인식, 정부 주도로 육성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고 엑사스케일 시스템을 개발하는 경쟁체제에 돌입해 있다. 초고성능컴퓨터는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결코 뒤처져서는 안 될 전략기술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번 제3차 기본계획의 확정을 통해 글로벌 환경 변화에 맞춘 선제적 대응으로 기술·산업 대전환기의 신성장동력 창출의 기회를 도모했으며, 과학기술 선도국가 실현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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