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고성현 기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 발효로 배터리 업계가 북미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배터리 셀에 이어 양극재 기업 진출이 가시화된 가운데, 성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 음극재 부문 전지박(동박:Elecfoil) 기업 진출 계획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SKC 투자사 SK넥실리스와 롯데케미칼이 인수를 진행하는 일진머티리얼즈의 양강 구도가 구축될지 관심이 모인다.
동박 선두주자는 SKC 투자사인 SK넥실리스다. 지난해 SNE리서치 조사 기준 22%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 왓슨(19%)과 대만 창춘(18%), 일진머티리얼즈(13%)가 뒤따르고 있다. 유럽 헝가리 법인을 가동 중인 솔루스첨단소재는 아직 순위권 내에 들지 못했고, 동박 사업 진출을 가시화한 고려아연도 아직 공장 신설 단계다.
SK넥실리스는 북미 권역 내 동박 제조시설 두 곳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배터리 수요가 높아지는 미국과 캐나다에 각각 공장을 짓고 북부·북서부 중심 러스트벨트, 남부 선벨트의 완성차 및 배터리고객사를 모두 잡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SK넥실리스의 중장기 생산 능력 계획은 2025년까지 25만톤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정읍(5만2000톤), 폴란드(5만톤), 말레이시아(5만톤), 미국(각 시설 당 5만톤)으로 동박 시장 수요의 주도권을 잡겠단 계획이다.
롯데케미칼에 인수된 일진머티리얼즈는 국내와 말레이시아 생산 기지에 이어 스페인, 미국에 생산 거점을 마련한다. 이를 통해 2027년까지 22만톤 규모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면서 국내 동박업계 경쟁 구도는 양강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기차 등 고성능 수요에 따라 동박 두께가 6~8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얇아졌고, 내열성을 갖추면서도 광폭으로 잘라야 하는 등 진입장벽도 높아지고 있어 후발주자가 쫓아오기 어렵다는 관측에서다.
더군다나 동박 사업은 타이타늄 드럼을 비롯한 초기 설비 투자비용이 크고 전력 소모가 심해 고정비용이 높다. 일정 수준 가동률을 확보하지 못하면 수익을 보기 힘든 구조다. 여기에 미국 IRA까지 발효되며 현지 업체의 수요가 늘고 있어 동박 후발주자가 진입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다만 양강 체제로 굳어가는 SK넥실리스, 일진머티리얼즈의 부담도 크다.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고, 고금리·고환율이 지속되면서 높은 초기 투자비용이 걸림돌이다.
SK넥실리스의 모회사인 SKC는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에 따라 재무 안정성 부담이 확대됐다. 3분기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189%로 높아졌고 단기차입금 및 유동성 장기부채가 1조5692억원 규모로 커졌다. 이 가운데 SK넥실리스, 미국 앱솔릭스 법인 등 총 1조2000억원의 투자가 집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무 안전성을 확보하면서도 경기가 악화된 상황에서 투자를 지속해야 하는 셈이다.
이에 관련해 SKC는 SK넥실리스 투자 관련 자금 마련과 재무 안전성에 대해서는 큰 부담이 없다는 입장이다.
최두환 SKC 최고재무책임자(CFO)는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차입에 대한 부담은 12월 초 인더스트리소재 사업 딜 클로징이 되면 매각대금이 납입될 거고, 3분기말 부채비율이 190% 못 미치는 수준이나 현금을 고려하면 순부채비율은 150% 수준"이라며 "매각 딜 클로징이 완료되면 120%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고, 동박 사업 투자 재원 계획은 이미 확보돼 있어 재무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일진머티리얼즈를 품은 롯데케미칼의 투자는 아직 물음표 상황이다. 롯데케미칼은 3분기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이 2조2000억원 규모로 인수대금인 2조7000억원을 납입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레고랜드발 채권 디폴트 사태로 유동성 위기를 겪는 롯데건설에 유상증자 최소 875억원, 단기자금 5000억원을 대여하면서 재무 체력이 다소 떨어졌다. 화학 시황 악화로 영업손실이 지속돼, 나이스신용평가 등이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Negative)'로 조정한 점도 부담이다.
인수 후에도 스페인, 미국 진출에 따른 증설 투자비용에 약 2조원 가량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케미칼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대금을 내부 자금 1조원과 금융 기관을 통한 외부 자금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업계는 롯데케미칼이 최대 2조원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도 관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