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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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투데이 강진규 기자] 한국 금융이 신뢰 위기에 직면했다. 레고랜드에 이어 흥국생명 콜옵션 사태까지 관계자들이 입장을 번복하면서 국제 금융 시장에서 신뢰가 의심받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제금융센터는 흥국생명 콜옵션 문제와 관련해 국제 금융 시장의 반응을 분석했다.

앞서 이달 1일 흥국생명은 2017년 11월 발행한 5억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의 조기상환권(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보험사는 물론 은행, 한국 전체 채권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국 채권의 신용부도스와프(CDS)는 11월 1일 68.8bp에서 11월 3일 74.9bp로 급등했다. 신용부도스와프(CDS)는 부도가 발생해 채권이나 대출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대비한 신용파생상품이다. CDS는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지표로 알려져 있다.

은행들의 채권 CDS도 마찬가지였다. 신한은행의 CDS는 11월 1일 67.8bp에서 7일 73.5bp까지 급증했고 KB국민은행의 경우에도 11월 1일 68.4bp에서 7일 75.1bp로 상승했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금융당국 등이 진화에 나섰고 흥국생명은 입장을 번복해 9일 콜옵션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흥국생명의 콜옵션 입장 번복으로 국내 은행들의 CDS는 이전 수준으로 낮아졌다. 급한 불을 껐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국제금융센터는 신뢰의 문제를 지적헸다. 센터는 “콜옵션 결정의 번복은 한국 발행사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투자자 신뢰를 일부 손상시킨 부분은 있어 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며 “최종적 콜옵션 행사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과정상 혼선으로 투자자들은 당분간 국내 보험사 채권 투자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한국 금융시장의 불안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시각 개선이 필요하고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제공할 수 있을지 여부가 내년 한국 채권 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흥국생명 콜옵션과 관련해 금융당국 역시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흥국생명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직후 금융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서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흥국생명이 콜옵션을 행사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한 것에는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9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은행장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을 만나 “흥국생명이 11월1일 콜옵션 행사 안 하겠다고 발표했고 문제 될 것 같아서 '흥국생명 괜찮은 회사다'라고 보도자료 배포했다"며 "그런데 이게 해명이 안 될 것 같아 미리 조치를 준비한 것으로 대응하자고 했고 11월9일 콜옵션 이행을 다시 추진해 사태가 해결됐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이런 신뢰의 위기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월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에 해당 채권이 부도 처리 되고 전체 채권시장이 요동쳤다. 지방정부가 보증한 채권도 부도가 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대기업은 물론 공기업 채권까지도 외면을 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대기업, 건설회사 등이 자금난으로 쓰러지고 그 여파로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소문이 확산됐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10월 27일 김진태 지사는 보증채무 2050억원을 12월 15일까지 상환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시장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금융권은 레고랜드, 흥국생명 콜옵션 사태가 유사한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약속을 깨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이를 번복해 수습하려고 하지만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유사한 사태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금융연구원의 2023년 경제 전망 행사에서 박종규 금융연구원 원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박 원장은 “우리는 지난 1~2달 동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바람에 단기 자금 시장과 자본시장 전체가 요동을 치는 일들이 있었다”며 “정부와 금융시장이 협업으로 빠른 시일 내로 봉합하고 있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원장은 “금융의 본질은 계산이 철저해야 하고 탄탄한 신뢰를 토대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말은 곧 나의 맹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격변의 시기에서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자세다. 단기적으로 손해가 예상되더라도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격변의 시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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