ㅏ라한민옥 디지털투데이 편집국장
ㅏ라한민옥 디지털투데이 편집국장

# 미국에 '아마조나이즈드(Amazonized·아마존 당하다)'라는 말이 있다. 아마존이 특정 시장에 진출하면 순식간에 고객과 이익을 장악한다고 해서 나온 신조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네이버 당하다', ’카카오 당하다', ‘쿠팡 당하다’는 말이 종종 쓰인다. 미국이나 한국 모두 특정 플랫폼 기업의 전방위적 사업 확장에 따른 독점 우려가 반영된 표현일 것이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카카오에 당했다. 국민 메신저라 할 카카오톡을 비롯해 포털 다음, 카카오T, 카카오맵, 카카오페이 등 카카오 계열 주요 서비스 대부분이 동시에 중단되며 대한민국 일상이 장시간 멈춰서는 블랙아웃이 벌어졌다.

국내 인터넷 서비스 사상 최악의 장애다. 카카오톡이 10시간 넘게 끊어진 건 출시 12년 만에 처음이다. 택시 호출, 지도, 결제 등 카카오가 자체 운영하는 서비스는 물론이고 가상자산 거래, 본인 인증, 정부 민원까지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하는 각종 서비스가 일제히 멈췄다. 전 국민이 큰 불편을 겪었고 그 피해 규모는 아직 추산조차 불가능하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나서 상황실 격상을 지시하고 주무부처 장관이 직접 사과까지 했을까.

 

# 이번 사태의 책임은 SK C&C와 카카오에 있다. SK C&C의 경우 화재, 천재지변, 테러 등 어떤 사태에도 데이터센터를 안전하게 운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 데이터센터는 국가 기간시설 못지않게 중요한 보안시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SK C&C는 지하 3층 전기실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3분 뒤 전원을 차단해 모든 서버 가동을 중단했다.

일각에서는 SK C&C가 이중·삼중으로 대비했다는 비상전력공급시스템을 가동하지 않고 전체 전력을 차단한 이유에 의문을 표한다.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왜 비상전력공급시스템 가동 대신 전원을 차단했냐는 것이다. 데이터센터 재난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가동했는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고의 1차적 원인은 화재를 일으키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SK C&C에 있지만 ▲재난시 백업·이원화 미비 ▲과도한 서버 집중 ▲비상대응체계 부족 ▲자체 운영 데이터센터(IDC) 전무 등 카카오의 총체적 위기관리 능력 부실이 피해를 눈덩이처럼 키웠다는 게 IT 업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카카오 같은 거대 플랫폼이 데이터센터 한 곳에 불이 났다고 서비스 완전 먹통을 장시간 이어지게 했다는 것은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 두 회사는 적절한 책임을 져야 하며 제대로 된 배·보상과 함께 확실한 재발 방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 무엇보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태를 철저히 복기해 인터넷 플랫폼 전반의 재난관리 대응체계를 재정비하기 바란다. 사태를 키운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한 후 그에 맞게 어떤 제도를 개선할지, 보완할 규율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하지만 사태 직후 벌어지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의 행보를 보면 대형 인터넷 플랫폼, 일명 빅테크에 대한 규제의 칼부터 꺼내든 것은 아닌지 우려가 앞선다. 

사태 발생 3일 만에 정부와 정치권은 각종 빅테크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 카카오 같은 인터넷 사업자와 SK C&C 같은 데이터센터 사업자를 국가 재난관리체계에 포함하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이 나왔고 대통령까지 가세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 중인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에 힘을 싣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카카오 금융계열사는 물론 핀테크 기업들에 대한 전방위 점검을 예고한 상황이다.

빅테크가 커진 영향력에 걸맞은 시스템 체계를 갖추고 독과점을 제재해야 한다는데 이견은 없다. 다만 그 대책이 규제 강화 일변도여서는 안 된다. 벌써 인터넷 업계에서는 자율 규제에 대한 기대감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대신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하고 있는 국내 플랫폼 기업들에게만 과도한 족쇄가 채워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와 청치권은 이미 규제 역차별로 많은 국내 인터넷 기업들의 발목을 잡은 과오가 있다. 대책 마련이라는 조급함에 규제의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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