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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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투데이 황치규 기자]반도체 설계 외에 파운드리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는 인텔이 최근들어 부쩍 강조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있으니 바로 소프트웨어다. 

좀더 구체적으로 쓰면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다. 

얼핏보면 반도체 회사인 인텔이 SaaS를 외치는 것이 뜬금없이 보일 수 있지만 인텔 수뇌부 표정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  반도체 사업 영향력 확대를 위해 SaaS는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인식이 여기저기에서 엿보인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5월 개최한 비전 2022 행사에서 "보다 많은 Saas를 제공할 것이고, 보다 많은 SaaS들을 인수할 것이다. 반도체 플러스 소프트웨어는 솔루션"이라며 반도체 역량 강화를 위해 SaaS 형태 소프트웨어를 적극 투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발언의 수위를 감안하면 소프트웨어, 특히 SaaS를 향한 인텔의 공세에는 앞으로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 같다.

더레지스터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지난해 1억달러 이상 소프트웨어 매출을 거뒀는데, 겔싱어 CEO는 올해는 자체 개발 및 인수를 통해 확보한 제품들을 합쳐서 소프트웨어 매출을 50%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텔 전체 매출이 700억달러 규모인 것을 감안하면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 경쟁력까지 묶어서 보면 소프트웨어 갖는 전략적 가치는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 인텔 입장이다.

인텔이 소프트웨어를 부르짖는 것은 요즘 볼 수 있는 장면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인텔은 10여년전에도 반도체 사업 강화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전략적 요충지로 봤고, 상당한 돈도 쏟아부었다.

2009년에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업체인 윈드리버를 8억8400만달러에, 2011년에는 보안 업체인 맥아피를 76억8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인텔은 두 회사 모두 반도체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필요하다는 명분을 내걸고 손에 넣었다.

야심차게 추진한 맥아피, 윈드리버 인수는 결과만 놓고 보면 잘못된 만남으로 끝이 났다. 인텔칩에 맥아피 보안 기술을 통합하는 작업은 예상과 달리 지지부진했다.

J. 골드 어소시에이츠(J.Gold Associates) 애널리스티인 잭 골드의 표현을 빌리면 '통합은 이뤄진다', '이뤄진다' 하면서도 결국에는 영원히 이뤄지지 않았다.

 맥아피를 통해 칩에 보안 기술을 통합하려던 인텔의 계획은 현실화되지 않았고 2016년 사모펀드에 인텔에 맥아피 주요 지분을 42억달러에 매각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인텔이 임베디드 칩 비즈니스를 강화하기 위해 인수한 윈드리버도 맥아피와 비슷하게 2018년 사모펀드에 다시 팔리는 코스를 밟았다. 이 과정에서 당시 윈드리버 CEO이던 짐 더글라스는 "윈드리버의 성장은 인텔이 반도체에 집중한 것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잭 골드 애널리스트는 "인텔은 결코 소프트웨어 회사를 관리하는데 능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쯤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인텔이 이제 와서 다시 소프트웨어의 전략적 가치를 외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윈드리버나 맥아피와 똑같은 코스를 밟게 되지 않을까?

더레지스터는 일각에선 몇가지 이유로 상업용 소프트웨어를 향한 인텔의 이번 공세는 맥아피나 윈드리버 때는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인텔은 컴파일러, BIOS, 펌웨어에등에서 자사 반도체들에 대한 최종 사용자 소프트웨어 및 시스템들을 최적화하고 검증하는 것과 관련해 점점 비중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더레지스터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 잭 골드 애널리스트는 "반도체에서 뛰어난 엔지니어가 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최종 사용자들을 지원하는 완전한 솔루션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팻 겔싱어 인텔 CEO [사진: 인텔]
팻 겔싱어 인텔 CEO [사진: 인텔]

인텔 수뇌부의 DNA가 소프트웨어에 친화적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인텔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뒤 스토리지 업체 EMC, 인텔 지휘봉을 잡기 전에는 거의 9년 간 엔터프라이즈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업체인 VM웨어 CEO로 있었다. 인텔에서 소프트웨어 그룹을 이끌고 있는 그레그 라벤더 역시 겔싱어 CEO와 한솥밥을 먹은 VM웨어 CTO 출신이다.

인텔 소프트웨어, 특히 SaaS 사업의 방향은 외부 조직들 공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완제품보다는 소프트웨어 제작자들을 겨냥한 제품과 서비스들이 전진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인텔의 SaaS 전략은 점점 결과물을 통해 구체화되는 분위기다. 인텔은 프로젝트 앰버(Project Amber)에 대해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업체들이 보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원격 검증 SaaS로 프로모션하고 나섰고 AI 모델과 시뮬레이션을 개발하는 조직들을 겨냥해 최적화 소프트웨어인 시그옵트(SigOpt)를 제공한다고 더레지스터는 전했다.

인텔은 또 매니지드 AI 서비스인 씨엔브이알지.아이오(Cnvrg.io)와  클라우드 최적화 서비스인 그래뉼레이트(Granulate)를 포함해다양한 유형 데이터센터 인프라들에 걸쳐 워크로드를 관리하고 최적화할 필요가 있는 조직들을 위한 SaaS를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텔이 일부 SaaS 제품들과 관련해 경쟁사 제품도 지원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씨엔브이알지.아이오와 그래뉼레이트도 이들 제품에 포함된다.

이같은 오픈 전략은 보다 많은 칩을 팔아야 하는 측면에선 역효과가 날 수 있지만 인텔이 조직들과 보다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새로운 칩을 판매할 기회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인텔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더레지스터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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