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13일, 시속 20km로 주행하는 소형 버스 안에서 고화질 주문형 비디오(VOD)와 실시간 인터넷 방송이 끊김없이 상영됐다. 버스 내부 TV 화면에 찍힌 전송 속도는 1.3~1.4Mbps. 이는 유선 초고속 인터넷 전송 속도 1Mbps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달리는 차안에서도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휴대 인터넷’ 상용화가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아이티투데이 이호연 기자] 휴대폰에서 VOD 등의 동영상을 겨우 볼 수 있었던 3G 시절, 이동 중인 차 안에서도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와이브로’는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놀라움을 선사했다. 더욱이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순수 토종기술이었다. 당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와이브로 시제품 개발은 CDMA 상용화 이후 한국이 거둔 최대의 쾌거”였다.

그러나 2013년 10월 미래창조과학부는 ‘와이브로 종합 대책’을 통해, KT와 SK텔레콤 등의 와이브로 사업자가 가입자를 보호한다는 조건 아래 사업을 포기하는 것을 허용한다. 사실상 정부가 와이브로의 정책 실패를 인정한 것.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 KT의 다양한 와이브로 단말기가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제공=KT)


◇ 와이브로, 휴대인터넷 시대 열다 

와이브로(WiBro)는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무선 광대역 인터넷 기술이다. 이동중에도 인터넷을 끊김없이 이용할 수 있는 기술로, 우리나라에서 국제 표준화를 주도한 무선 휴대인터넷 서비스다.

이론상 최대 전송 속도는 10Mbps, 최대 전송 거리는 1Km에 달한다. 시속 120Km로 달리는 차안에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다. 와이브로의 평균 속도는 100Mbps급 초고속 인터넷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3G 통신망의 속도보다는 빠르다.

와이브로는 특성상 영화와 뉴스 등 대용량 데이터 전송에 최적화된 기술이다. 휴대폰용 이동통신과 무선랜(와이파이) 사이에 위치한 기술로, 3세대에서 4세대로 향하는 중간 단계로 세대를 구분지을 수 있다. 해외에서는 모바일와이맥스(Mobile WiMAX)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2004년 12월 13일 삼성전자와 ETRI 개발진이 와이브로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자료 화면 = YTN뉴스 캡쳐)

WiBro라는 이름은 ‘와이어리스 브로드밴드(Wireless Broadband)’의 머릿글자를 딴 것이다. 2003년 당시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측에서 2.3GHz 대역에서의 ‘초고속 휴대 인터넷 서비스’의 이름을 짓기 위해 고심하던 중,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제안으로 이같이 불리어졌다는 후문이다.

와이브로는 2002년부터 정부 주도 아래 기술 개발이 본격화됐다. 2.3GHz 대역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2.3GHz 휴대인터넷’으로 불리다가 2004년 공식적으로 ‘와이브로’라는 명칭을 갖게 됐다. KT와 SK텔레콤이 와이브로 사업자에 선정되면서, 2006년 6월 국내 와이브로 상용화가 시작됐다.

 <와이브로 정책 일지>
2002.10
2.3GHz 대역 휴대인터넷용 이용 정책 추진 방안 확정
2005.01
휴대인터넷 사업자 선정 (KT, SKT)
2005.12
와이브로 상용시스템 세계 최초 개발
2006.06
KT, SKT 세계 최초 휴대인터넷 상용서비스 개시
2007.10
ITU에서 6번째 IMT-2000 표준으로 채택
2008.10
삼성전자 ETRI 와이브로에서 진화된 ‘와이브로 에볼루션’ 개발
2011.07
와이브로 사업자 허가조건 이행 완료 승인
2012.01
ITU에서 4G표준으로 LTE-A와 함께 와이브로 에볼루션(와이맥스2)로 채택
2012.03
기존 사업자 주파수 재할당 (할당 기간 7년, 2012.03.30~2019.03.29)
2013.10
와이브로 정책방향 확정
(KT, SKT 기존가입자 보호 전제하 와이브로 사업 포기 허용)
2014.01
2.5GHz 주파수 대역 와이브로 또는 LTE-TDD 할당 계획 확정
(시행: 4월 말 예정, 할당 기간: 할당 받은 날로부터 5년)
(자료 참고= 미래부)


◇월 3만명씩...와이브로 ‘에그’ 반짝 돌풍

KT와 SK텔레콤은 2006년부터 국내 와이브로 서비스를 시작한다. 사실 와이브로는 2009년까지만 해도 전체 가입자 수가 30만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2009년 말 아이폰의 도입으로 3G 스마트폰이 급격히 확산, 무제한 요금제까지 도입되며 트래픽이 급증한다.

사업자들은 트래픽 분산, 사용자는 데이터 용량의 수요가 급증하자 와이브로는 재조명받기 시작한다. KT는 ‘에그’, SK텔레콤은 ‘브릿지’라 불리는 와이브로 단말기를 내놓는다. 특히 KT가 3W(Wifi, WCDMA, Wibro)전략을 내세우며 삼성전자와 손잡고 다양한 와이브로 상품을 선보이는 등 선제적으로 이에 대응한다.

와이브로는 저렴하면서도 커버리지가 넓어 노트북, 휴대폰 등 다양한 단말에서 무선 인터넷을 즐길 수 있어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었다. 단순 데이터만 놓고 봤을 때, 10GB 용량의 데이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3G스마트폰 요금제의 경우 5만4000원 이상을 내야 한다. 하지만 와이브로는 1만원~1만3000원 정도를 내면 충분하다.

▲ 왼쪽부터 KT 와이브로 단말기 '에그'와 SK텔레콤 '브릿지'

전송 속도도 LTE 못지 않았다. 당시 KT가 내놓은 와이브로는 최대 전송속도 40Mbps로 LTE(75Mbps)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실제 LTE폰에서 동영상을 다운로드받을 시 6~8초 정도 소요되며 5~6초 정도 걸리는 LTE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는 SK텔레콤보다 LTE를 다소 늦게 시작한 KT에게 가입자 이탈을 막는 방어 효과로 작용했다.

KT는 LTE 전국서비스가 상용화되기 전인 2011년 말까지 기존 와이브로 요금을 최대 75% 할인하는 프로모션 등을 진행하며, 빠르게 가입자를 늘려갔다. 당시 월 3만5000명꼴로 가입자가 유입되며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에그’가 불티나게 팔리며 KT와이브로 서비스는 2011년 말 74만3033명의 가입자를 확보한다. 이는 전년비 2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 와이브로, LTE에 패하다
‘와이브로’는 국내 이동통신기술 최초로 국제 표준에 채택되며 글로벌 통신 시장 선점의 토대를 마련한 기술이다. 과거 국내 업체들이 퀄컴 등의 해외 업체에게 CDMA 등 통신 기술 로열티를 지불했다면, 와이브로 도입 이후 한국이 해외로부터 로열티를 받는 등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와이브로는 폐쇄적인 정책과 사업전략의 실패로 시장에서 외면당한다. 4G표준 규격에 함께 채택됐던 LTE와의 경쟁에서 완전히 패한 것. 2011년까지 인기를 끌었던 와이브로는 LTE 본격 상용화 이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이동통신사업자들이 기존 통신망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투자 비용이 적게 드는 LTE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국내서는 KT와 SK텔레콤 등의 사업자들은 기존 3G 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로 mVoIP 도입 등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SK텔레콤의 사업도 KT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이뤄졌다. 이에 따라 와이브로 단말 수급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와이브로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은 HTC의 ‘이보4G+'가 유일하게 됐다.

이에 따라 와이브로의 가입자도 정체상태에 머문다. 와이브로 가입자는 2012년 104만명을 넘긴 이후부터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반면, LTE 가입자는 2011년 119만명을 기록하다가 2012년 1581만명, 2013년 2399만명 등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국내 와이브로 가입자 현황>

구분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01
KT
950
103,266
156,900
285,040
365,393
743,033
933,747
845,585
839,377
SKT
447
995
11,051
31,840
89,601
55,330
115,478
137,802
137,291
합계
1397
104,261
167,951
316,880
454,994
798,363
104,9225
983,387
976,668
                                       (단위: 명, 출처 = 와이브로 전담반/미래부 ) 

결국 와이브로는 ’에그‘나 ’브릿지‘ 등의 외장단말을 통해 주요 단말에서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는 보완재 로 그 성격이 바뀌어갔다. 국내 사업자들 역시 와이브로를 3G, LTE, 와이파이 등의 트래픽을 분산하는 용도로 주로 이용하고 있다.

▲ 자료 참고 = 미래부

해외서는 와이브로 사업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된다. 현재 와이브로 사업을 하고 있는 해외 국가는 미국, 일본, 러시아, 말레이시아 정도로 몇 손가락안에 꼽는다. 그나마도 중국이 세계표준으로 정한 시분할 방식 롱텀에볼루션(LTE-TDD)를 병행하고 있다. 와이브로 원천기술을 개발한 삼성전자조차 이를 포기하고 LTE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와이브로에서 진화된 와이브로 에볼루션도 상용화하고 있는 국가가 전무하다.

이통사 관계자는 “와이브로의 기술은 훌륭했지만, 시장성에서 LTE에 밀렸다”며 “정부정책과 사업전략의 실패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비운의 기술”이라고 평했다.

◇LTE-TDD 급부상...와이브로 향방은?
LTE에 밀려 한계에 봉착한 와이브로는 LTE-TDD가 급부상하면서 현재 존폐의 기로에 섰다.

LTE-TDD는 최근 중국에서 급부상한 이동통신 기술이다. 기존 LTE가 주파수 분할 방식(FDD) 기반이라면 LTE-TDD는 시분할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기술적으로 거의 유사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증가하고 있다. 2013년 7월 말 75개국 194개 사업자가 서비스를 개시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관련 업계와 학계에서는 장래가 암울한 와이브로 대신 LTE-TDD를 국내 도입해 향후 시분할 통신 분야에서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와이브로 역시 시분할 방식을 이용하는 만큼 이를 계승해 LTE-TDD 시장에 진출하자는 설명이다.

▲ 미래부는 와이브로 정책 방향 토론회를 통해 와이브로 출구 전략을 모색한다.

이에 2013년 10월 미래창조과학부는 와이브로 출구전략을 발표한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LTE-TDD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휴대인터넷 용도로 할당된 2.3GHz, 2.5GHz 주파수 대역에 LTE-TDD 도입을 허용한 것.

기존 와이브로 사업자의 경우 이용자 보호 대책을 충분히 마련한다면 와이브로를 포기하고 LTE-TDD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2.5GHz 주파수 대역의 경우 와이브로나 LTE-TDD 기반의 신규 사업자(제4이통)에게 할당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한국모바일인터넷(KMI)이 LTE-TDD 방식으로 제4이통 사업자 선정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인터넷페이스컨소시엄(IST)은 와이브로 기술을 내세워 도전하려 했으나, 주주구성 확보에 난항을 겪어 무산됐다.

다만, 업계에서는 와이브로가 군통신에 일부 활용되고 있는 만큼 재난망 사업 등 특수목적용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정부가 실패를 인정한 와이브로가 이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또다른 대안으로 명맥을 이어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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