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택 전 장관 “CDMA 상용화, 한국 이동통신 역사 다시 썼다”
양승택 전 장관 “CDMA 상용화, 한국 이동통신 역사 다시 썼다”
  • 이호연 기자
  • 승인 2014.03.19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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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30주년]특별인터뷰-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

[아이티투데이 이호연 기자] “ETRI 소장 취임 후 계약서에 서명부터 했다. CDMA사업의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었다”

18일 기자와 만난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당시 CDMA 상용화 개발 과정을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첫마디부터 CDMA 개발의 막중한 책임이 전해져왔다.

1992년 6월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 양승택 소장은 미국 샌디에고에서 퀄컴과의 CDMA 공동 연구 계약서에 서명했다. 양 소장은 부랴부랴 서명을 했지만 CDMA를 제대로 이해하는 국내 연구원이 몇 명이나 될지 한숨부터 나왔다. 그가 ETRI로 부임한지 한 달 만의 일이었다.

▲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사진제공 = IST)

양 전 장관은 “CDMA계약서에 명시된 단계조차 중간에 힘들면 빠지겠다는 식으로 작성됐었다”며 “무려 880억원이 들어가는 연구였다. 끝을 보겠다는 각오로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정신부터 바짝 차려야겠다고 이를 악물었다”고 기억했다.

양승택 전 장관은 우리나라 정보통신 혁명을 이끈 주역이다. 지난 1981년 ETRI 기술 담당 상무를 시작으로 2002년 7월 정보통신부 장관을 마칠때까지 굵직굵직한 정보통신 기술 개발에 앞장섰다. 전전자교환기(TDX) 개발과 CDMA 상용화를 진두지휘했으며, 와이브로 또한 그의 작품이다. 한국 이동통신 역사의 산 증인으로 꼽힌다.  

CDMA 상용화는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CDMA 기술은 퀄컴이 특허를 가지고 있었지만, 상용화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이를 시도한 국가조차 없었다. 당시 국내 이동통신 기술은 아날로그 방식도 겨우 구현하는 수준이었다. 기술부재로 단말은 물론 장비도 외국산에 의존했다. ETRI 또한 노조 문제로 CDMA를 개발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양 전 장관은 “ETRI 소장에 부임하자마자 노조 문제를 해결하고, ETRI 정상화부터 신경썼다”며 “CDMA 상용화 개발을 위해 연구원을 초기 140명 증원하고, 이후 민간 업체까지 포함해 총 750명의 연구진이 CDMA 상용화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CDMA 개발은 1993년 윤동윤 체신부 차관이 장관이 되면서 탄력을 받는다. 그러나 8월 무렵, 퀄컴과 공동 개발에서 경쟁 관계로 돌아서게 된다. 퀄컴이 국내 CDMA 교환기를 ATM(비동기 전송방식)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한 것. 교환기 기본 설계를 ATM으로 변경하면 CDMA 상용화가 당초 목표했던 94년보다 2~3년이 더 늦어질 판국이었다.

양 전 장관은 “퀄컴의 요구는 개발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것”이라고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동시 공학’을 과감히 도입, CDMA개발 전체 프로세서를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성공한다. 이는 CDMA 상용화 기간을 단축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편, 퀄컴은 ATM 방식의 교환기를 한국보다 2년 뒤에 개발하고 이마저 타 회사에 매각한다.

CDMA 상용화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기술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오히려 그의 발목잡았던 것은 내부 분열과 상용화 개발 막바지에서도 불거졌던 CDMA에 대한 불신이었다.

양 전 장관은 “CDMA개발 도중 부호코드 사전을 한글화시키는 작업이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워 애를 먹었다”면서도 “CDAM 개발에 대한 불신에 비하면 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다수의 통신 전문가 및 삼성전자, 신세기통신 등의 사업자는 물론 청와대와의 탐탁치 않은 시선과도 맞서야 했다.

그가 경상현 장관 앞에서 CDMA 도입을 막기 위해 로비 공작을 펼친 신세기통신의 외국계 주주와 담판을 지은 일화는 유명하다. 1995년 당시 양 전 장관은 근거 없이 CDMA기술을 문제 삼는 에어터치 이사에게 조목조목 따지며 “이것은 한국 사람을 무시하는 당신의 심리적 문제이지 어떻게 기술적 문제인가?”라고 지적했다. 무안해진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결국 수많은 난관을 거친 끝에 1995년 10월 정보통신부는 PCS 개발 방식을 CDMA 단일 표준으로 공식 발표하면서 모든 잡음을 잠재운다. 이 기세를 몰아 1년 후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전신)이 1996년 1월 1일 인천 및 부천 지역에서 CDMA 세계 최초 상용화에 성공한다.

양 전 장관은 “CDMA 상용화 개발 4년 만에 이뤄낸 쾌거로, 이는 한국이동통신의 역사를 완전히 다시 썼다”며 “특히 CDMA 도입은 당시 국내 인프라와 단말을 완전히 장악하던 모토로라를 퇴출, 한국의 기술적 자립도 함께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CDMA 도입으로 한국 이동통신 시장은 유선에서 무선으로 완전히 체제가 전환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1984년 처음으로 개시된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200만명이었는데, CDMA를 계기로 현재 온국민 누구나 휴대폰이 있을 정도로 급격히 대중화됐다.

그는 “최근 한국 이동통신업계는 포화상태인 가운데 ‘플랫폼’의 등장으로 다시 한 번 변혁을 겪고 있다. 탈통신도 이러한 일환으로 볼 수 있다”며 “고착돼 있는 이동통신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자가 자꾸 나와서 가격 인하를 유도해야 하고, 기존 이통사업자 역시 폐쇄적인 철학을 버리고 플랫폼 사업자를 포함한 다양한 업체와 상생을 통해 새로운 정보통신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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