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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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투데이 황치규 기자] 2021년 기업용 테크 시장은 코로나19발 거센 변화의 '시즌2'였다. 2020년초 느닷 없이 불어닥친 코로나19 상황 속에 대부분 산업에서 반강제적인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됐고 올해 들어 변화는 더욱 거세게 일었다. 클라우드 인프라 도입이 확산을 넘어 대세가 됐고 재택과 원격 근무를 지원하기 위한 협업 플랫폼은 비즈니스 운영체제(OS)라는 애기를 들을 만큼 산업 전반에 걸쳐 중량감이 높아졌다.

코로나19라는 강력한 외부 충격으로 시작된 디지털 전환은 관성, 가속도의 법칙과 결합되면서 기업들 DNA 자체를 바꾸는 수준이 됐다. 특히 비즈니스와 IT 경계가 허물어졌다. IT는 IT부서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고정 관념은 파괴됐고 현업 조직이 IT부서에 의존하지 않고 디지털을 직접 활용해 비즈니스를 챙기는 흐름이 확산됐다. 로우코드, 노코드, AI 등 이를 지원하는 기술과 솔루션들도 쏟아졌다. 

디지털 역량으로 무장한 비테크 회사들이 기존 테크 기업들과 경쟁하는 장면들도 여기저기에서 연출됐다. 디지털 전환에 경험을 쌓은 비테크 기업들이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으로 진화하면서 금융과 유통 산업 생태계 전체에 걸쳐 역학 관계 재편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인프라부터 비즈니스 소프트웨어까지 클라우드로 재편

기업 디지털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IT인프라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보면 올해 시장은 모든 것은 클라우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분위기였다.  IT인프라의 경우 퍼블릭이냐 프라이빗 이냐에 차이는 있지만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면 일단 클라우드를 밑바탕에 깔고 시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뿌리를 내렸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전통적인 제조사들이 퍼블릭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핵심 업무를 돌리는 것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장면이 됐다. 대한항공과 매일유업처럼 모든 IT인프라를 퍼블릭 클라우드로 전환하는 대기업들도 늘었다.

프라이빗과 퍼블릭 클라우드를 연결하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대한 열기도 엔터프라이즈 기업들 사이에서 고조됐다. 특히 금융권은 자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구현하고 필요할 경우 퍼블릭 클라우드도 활용하면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확산을 주도했다. 특정 퍼블릭 클라우드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업체들을 활용하는 멀티 클라우드 전략도 주목할 만한 트렌드로 부상했다.

판이 커졌으니 클라우드 업체들 간 경쟁도 뜨거웠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 외에 올해는 오라클도 국내 클라우드 시장에서 공세를 강화했고 알리바바나 텐센트 같은 중국 회사들도 국내 클라우드 시장 공략을 위해 투자를 확대했다. 네이버 클라우드, 카카오, NHN 등 국내 대형 인터넷 업체들도 클라우드 사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전진배치하면서 만만치 않은 세력으로 부상했다. 특히 공공 클라우드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델테크놀로지스, 시스코,  HPE 등 서버나 스토리지 인프라를 팔며 한때 IT인프라 시장을 주도하던 회사들의 변신도 눈에 띈다. AWS나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클라우드 시장 주도권을 내준 이들 업체는 기업들이 자체 데이터센터에서 퍼블릭 클라우드처럼 쓸 수 있는 서비스형 인프라(IaaS) 플랫폼을 앞세워 변격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클라우드 판은 퍼블릭 클라우드 진영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기존 IT인프라 업체들이 퍼블릭 클라우드와는 다른 클라우드 플랫폼 전략으로 추격하는 흐름으로 재편됐다. 이에 따라 퍼블릭 클라우드가 대세론을 탈지, 아니면 프라이빗 IaaS를 내세운 회사들이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고 퍼블락 클라우드와 공존하는 구도가 될지 여부가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로 부상했다.

새로운 키워드들의 탄생

인프라 시장만 클라우드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 아니었다.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 시장 역시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도 성장에 더욱 탄력을 받았다.

한국 시장은 그동안  소프트웨어 업체들 사이에서 SaaS로 파고들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코로나19 상황 속에 분위기가 확 달려졌다. 원격과 재택 근무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이 SaaS를 안쓰면 안되는 상황이 펼쳐졌고 지금은 SaaS 퍼스트를 추진하는 회사들도 크게 늘었다. IT인프라를 직접 구축하지 않고 클라우드에서 빌려 쓰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통하듯 기업용 소프트웨어도 이제 깔아 쓰는게 아니라 접속해 쓰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SaaS 확산에 선봉은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는 협업 소프트웨어였다.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줌, 슬랙 등 코로나19발 재택 근무 확산으로 다수 기업들이 도입한 협업 플랫폼은 모두 클라우드 기반으로 돌아가는 SaaS 제품들이었다. 팀즈, 줌, 슬랙의 강세 속에 협업 SaaS 스타트업들은 계속 등장했다. 코더(Coder)들을 위한 SaaS를 표방하는 공동 코딩 툴인 코드펜(Codepen) 등 선택하고 집중하면 거물급 협업 SaaS 틈바구니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스타트업들이 늘었다.

SaaS 열기는 협업을 뛰어넘어 확산됐다. 최근에는 전사적자원관리(ERP) 같은 기업내 핵심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도 SaaS로 전환하는 사례도 증가했다.

이같은 상황은 거물급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SaaS에 과감하게 베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오라클이나 SAP 같은 글로벌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물론 지란지교소프트, 솔트룩스 등 국내 소프트웨어 회사들도 SaaS에 승부를 걸었다. 정부도 기존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SaaS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에 나섰다.

소프트웨어를 쓰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은 보안 측면에선 새로운 리스크의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대응하는 보안 패러다임이 있으니 바로 제로 트러스트다. 제로 트러스트는 코로나 19 상황 속에 달라진 SaaS 확산 등 업무 환경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보안 전략으로 급부상했다. 

코로나 19로 재택 근무에 들어간 기업 직원들이 회사에 복귀한다 해서 예전처럼 대다수 직원들이 주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방식이 '대세'로 남기는 어렵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많은 기업들이 재택을 포함한 원격 근무와 회사 내 업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워크 형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회사 밖에서 일하는게 편하고 생산성도 좋은 이들에겐 하이브리드 워크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보안 측면에선 적지 않은 부담이다.

방화벽 등 기존 네트워크 보안 기술은 기업 네트워크 주변에서 침입자들을 막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워크가 확산되면 침입자들은 이같은 외부 방어 시스템을 보다 쉽게 파고들 수 있다. 해커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기존 보안 솔루션들로는 이를 막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반면 제로 트러스트는 공격자가 내부에 침입한 상황을 전제로 하는 보안 개념이다. 네트워크에 들어올 때 여러 인증 수단을 거치도록 하는, 이른바 멀티팩터 인증 수준을 뛰어넘는 환경을 구현, 사용자가 인증을 통해 네트워크에 들어온 후에도 특정 시스템이나 파일에 접근할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백그라운드에서 끊임없이 오가는 정보를 체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로 트러스트에 대한 열기는 업계 판세에서도 엿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같은 퍼블릭 클라우드 업체부터 내로라 하는 보안 업체들이 앞다퉈 제로 트러스트를 화두로 던지고 나섰다.

다양성의 공존인가 빅테크로의 집중인가

클라우드 기반 컴퓨팅 인프라와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확산되고, 소유가 아니라 구독의 시대가 열리면서 기업용 테크 시장을 둘러싼 판은 그 어느때보다 역동적이다.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의 경우 소수 업체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지만 그위에서 돌아가는 서비스형 플랫폼(PaaS)와 SaaS 쪽에선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IaaS를 제외하면 기업용 테크판은 아직까지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구도가 계속될 지는 미지수다. 클라우드 생태계에서 활동하는 기업용 테크 업체 중 아마존웹서비스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세일즈포스, 어도비 외에 회사는 많지 않다. 천하의 구글도 클라우드만 놓고 보면 여전히 적자다. 올해 3분기에도 구글 클라우드 부문 적자는 6억4400만달러에 달했다.

클라우드 DW 회사인 스노우 플레이크, 멀티 클라우드 솔루션 업체 하시코프 같은 회사들도 성장세는 빠르지만 여전히 적자 상태다. 유망 SaaS 회사들도 아직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클라우드 기반 인프라 및 소프트웨어 환경에선 테크 기업들이 예전처럼 돈벌기 쉽지 않다는 애기도 많이 들린다. AWS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는 돈을 벌고 있지만 이들 업체 클라우드를 파는 매니지드 서비스(MSP)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저조한 상황이다. 국내는 특히 그렇다는 지적이다. 모 클라우드 MSP 업체 CEO는 "기술력이 확실하지 않으면 MSP로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투자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 적자를 감수하는 기업용 테크 기업들의 성장 전략은 여전히 먹혀드록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자본 시장 흐름이 바뀌면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성장보다는 수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경우 돈을 벌지 못하는 유망 기업용 테크 기업들은 돈잘버는 빅테크 기업들에 흡수 통합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다양성이 어느정도 공존하는 지금의 기업용 테크판은 다시 빅테크 주도 통합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2022년 향후 판세에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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