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민트초코 소주의 출시는 내게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올해 민트초코가 큰 인기를 끌기는 했다. '오리온 민트초코파이'에서부터 '롯데샌드 민트초코', '다이제씬 민트초코' 등 각종 유명 장수 브랜드들이 잇따라 민트 초코 버전을 출시했다. 일부 마트에서는 민트초코 컬러로 도배된 독립된 매대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민트소주의 출시가 좀 더 남달랐던 것은 디저트와 과자류와 달리 소주는 음식이나 안주와 함께 소비되므로 새로운 맛도 대부분 다른 음식과의 밸런스에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류는 맛을 바꾸는데 따른 리스크가 커 진정 메이저 트렌드가 아니면 반영하기 힘든 산업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소주가 출시 한 달 만에 100만 병이 판매됐다고 하니 '우리나라에 이 정도로 '민초파'가 있었나 ?" 하는 생각에 놀랐다.
민트초코는 맛의 신세계를 원하는 소수의 마니아층에게는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아이템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셀럽이나 연예인들의 민초 호불호 논쟁을 통해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며 수면 위로 올라왔고, 이는 시장에도 반영돼 관련 제품의 매출을 이끌었다.
그렇다 해도 그 트렌드는 잠깐 일부에서만 유행하다 마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올 초 베스킨라비스31의 민초맛 아이스크림이 품절 사태를 일으키기 전까지는 말이다.
배스킨라빈스 민초맛 품절소식이 기사화 되자, 이 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기사에 맛에 대한 혐오를 가득 담은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그러자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결집, '개취(개인의 취향)'의 논쟁이 개취의 전쟁이 돼버렸다.
댓글마다 대댓글로 반박이 이어지며, 웃으며 시작한 일에 죽자고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일단 민초파의 의견은 이렇다.
초콜릿을 먹으면 물리면서 입이 텁텁해지고 끈적해지지만, 민트가 같이 들어가면 달콤하게 시작하여 끝 맛이 상쾌해 맛의 밸런스가 잘 맞는다고 한다.
초코디저트의 경우 음엔 극강의 달달함에 짜릿하지만 나중엔 초콜릿 특유의 물림과 텁텁함에 깔끔한 아이스아메리카노나 차를 찾게 되는데 초콜릿을 질리지 않고 끝없이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장치가 바로 민트라는 것. 민트와 초코가 만들어주는 맛의 밸런스는 민초단에게 성스러운 찬양과도 같은, 맛의 영역이다.
이와는 정 반대의 주장도 있다. 반민초단은 “치약맛이 나는 민트를 굳이 먹어야 하나. 초코면 초코, 민트면 민트지 왜 두 가지 맛을 섞어서 불필요한 맛의 조합을 만드느냐 “고 말한다.
초콜릿의 당도와 종류에 따라 느낄 수 있는 깊이감이 다른데 그 맛을 굳이 민트가 끼어 들여서 해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상대방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면서, 민초단과 반민초단의 결집이라는 재미있는 현상을 만들게 됐다.
아무튼 예기치 않게 이뤄진 국민 취향 대결은 관련 뉴스와 콘텐츠들을 양산했고, 민트초코에 대한 인지와 이해가 없던 사람들에게까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나는 민초인가? 반민초인가?”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궁금함을 풀기 위해서는 그 맛을 볼 수밖에 없다.
그 시도를 통해 반민초로 본인의 정체성을 확인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민초파임을 확인한다면 본인에게는 새로운 맛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는 거고, 기업의 입장에서 보자면 설득이 필요했던 잠재적 소비자를 비용의 지불없이 적극적 소비자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논쟁이 관심을 만들고, 관심이 호기심을 만들고, 호기심은 결국 제품의 수요를 늘렸다.
이 논쟁이 화재가 된 것은 자신의 취향이 존중받기를 원하고, 의견 개진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MZ 세대에서 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화제가 제품의 출시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들이 불을 지핀 이슈가 시장에 반영된 제품과 브랜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니, 자신들이 적극 참여했던 논쟁의 부산물이라 생각하고 더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는 또다시 시장의 관심으로 선순환되고 이 시장의 관심은 새로운 제품과 브랜드의 출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초단 내부에서는 이번 민트소주 출시를 취향의 최고 업적이라고 자부하고 반민초단은 이 정도로 민초가 화제가 된 것은 본인들의 공격때문이니 수혜기업들은 반민초단에 감사해야 한다는 진심 어린 우스개 소리를 하고 있다.
얼마 전 BTS와 백종원이 나온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음식 취향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눴다. ‘짜장라면의 물 버린다 vs 물 졸인다’ , ‘라면 끓일 때 뚜껑 연다 vs 닫는다’ 에서 시작해 탕수육의 부먹 vs 찍먹, 파인애플 피자의 호불호 그리고 민트초코 vs 반민트초코에 대한 얘기까지 다뤄졌다.
백종원씨는 선택을 원하는 BTS 멤버들에게 ‘가치관과 신념의 문제’로 민초 vs 반민초 문제는 세계관 최강이라며 답을 회피했는데, (알려진 바로는 그분은 민초파다) '가치관과 신념의 문제'라는 대목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이는 이런 사소한 일에 대한 논쟁이 불필요하거나 어리석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나 사회적 민감도를 가진 이슈가 아닌 이런 논쟁은 지식이나 반박 논리의 정교함이 없어도 자신의 취향만 확고하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고, 또한 세대나 지위에 상관없이 누군가와 대화 하기에도 부담 없고 편하다.
같은 취향이라면 비슷한 입맛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연대감을 느낄 수 있고, 이런 가벼운 논쟁거리를 통해 '취향의 다름'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
대립 중에서는 가장 건강하고 건전한 대립이 아닐까?
민트초코에 대한 TMI (Too Much Information) 두 가지
1. 민트초코의 탄생
민트초코는 1973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왕실에서 엘리자베스 2세의 딸 ‘앤(Anne)’의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여기서 결혼식 후 피로연에서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를 공모한 것이 민트초코 탄생의 계기. 재능있는 파티시에, 요리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수많은 작품 중 우승한 디저트가 바로 민트 로열이다. ‘마릴린 리케츠’라는 사람이 만들었으며 민트추출액과 초콜릿을 결합해 아이스크림을 만들었고, 이것이 바로 영국 왕실의 공모를 통해 탄생한 위대한 조합인 민트초코가 되었다.
2. 나는 민초?반민초?
졸업 후 입사 2~3년차 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미국 출장을 다녀온 PD분이 한국에는 없다는 초콜릿을 팀마다 선물로 나눠주었다. ‘미제 초콜릿이니 당연히 맛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은박지를 까서 한입에 넣는 순간 느껴지는 그 이상한 조합. 같이 나눠 먹었던 다른 분들이 “이게 뭐냐”며 다신 안 먹겠다고 짜증을 냈지만, 나는 아침의 상쾌함과 한밤의 텁텁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그 놀라운 맛에 매료됐고 그 나머지의 초콜릿은 내 차지가 되었다. 그렇다. 나는 민초파다.
신은주 헤일로에이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