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에 성격유형을 치는 순간 다양한 내용의 포스팅이 쏟아진다
검색창에 성격유형을 치는 순간 다양한 내용의 포스팅이 쏟아진다

회사의 브레인스토밍 트레이닝 시간. 

2년 차 직원이 내 말을 구조화 시켜 도표까지 넣어가며  수능 노트처럼 적고  있길래  "이건 적을 내용이 아니니 그냥 자유롭게 얘기하자"고 했더니 “제가 INFP A 타입이라서요”란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친구들도 "난 ISTJ 타입인데 그래서 인지 너랑 잘 맞는 것 같다"든지 "난 ESFP인데, 나 원래 약간 관종(관심종자)이잖아" 등 MBTI (성격유형검사) 관련 대화를 한참이나 이어갔다.

나는 직원들이 이야기를 들으며 두 가지에 놀랐다.
첫째는 '성격 유형 테스트를 이렇게 많은 해봤다고?' 하는 것이고 둘째는 '재미로 하는 테스트인 줄 알았는데 이걸 모두 기억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보니 관련한 콘텐츠가 꽤 많다.
검색창에 성격유형을 치는 순간 유형별 이상형은 물론 유형별 직장 상사 궁합 혹은 적성에 맞는 직업이나 사업유형을 추천하는 내용의 포스팅이 쏟아진다.

 

MBTI 유형별 특징을 나타내는 카툰. MZ세대들의 심리테스트 응용은 일상생활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도 적용되고 있다.
MBTI 유형별 특징을 나타내는 카툰. MZ세대들의 심리테스트 응용은 일상생활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도 적용되고 있다.

 

심지어는 유형별 음악 플레이리스트도 있다. 예를 들어 INFP(사람들은 인프피라 부른다)은  잔나비, 오혁, 카더가든 등을 추천하는 식이다. 관련 동영상에도 상당한 조회 수와 댓글을 볼 수 있고 음악적 성향에 대한 깊은 공감을 표하고 있다.

INFP의 주요 특징은 ‘성실하고 이해심 많으며 개방적이고, 잘 표현하지 않으나 내적 신념이 강하다’이다. 그런 특징의 사람들은 정말 이 아티스트들을 좋아하는 걸까?
난 잘 모르겠다.

MZ세대들의 MBTI나 심리테스트 등과 관련한 응용력은 일상생활을 넘어 사회생활에도 적용되고 있다. 

앞서 ESFP(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 타입)이라고 밝힌 직원은 입사시 자기소개서에 본인의 MBTI 유형을 맨 앞에 내세워 나를 당황하게 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각종 취업 커뮤니티에서 이를 입사지원서 작성 요령으로 추천하고 있었다.
‘처음에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지만, 나의 MBTI 유형을 보고 장점만 쏙쏙 빼서 자기소개서로 자연스럽게 녹여서 사용하기 좋다’는 후기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업무 배분할 때도 MBTI를 참고한다. 조별 과제나 아르바이트 업무시 유형을 참고해 자기의 역량과 성격에 맞는 역할을 맡기도 한단다.

먼저 자신의 MBTI 유형부터 밝히고, 그 특성에 맞게 자료조사, 기획안 만들기, 발표하기, 외부 고객 접대하기 등을 분담하면 서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진로나 말 못할 고민에 대해서까지 본인의 유형별 맞춤 조언과 컨설팅을 받고 싶어한다.  단순히 장난이나 재미가 아닌 것이다.

 

물론 오래 전에도 유사한 테스트나 유형의 분류 등은 있었다. 
그리고 MBTI는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한 정신분석학에 기반을 둔, 30년도 더 된 심리검사다. 태도 성향인 내향(I)과 외향(E), 기능유형중 인식기능인 감각(S)과 직관(N), 그리고 판단기능인 사고(T)와 감정(F)을 쓰는 방식과 비중을 바탕으로 구성된 검사시스템으로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가치가 있다.
한때는 기업 인사부서에서 효율적인 인재관리를 위해 사용됐었다.

하지만 최근과 같은 이런 호응과 반응을 나타냈던 적도 없었고, 그 결과에 몰입하여 자기를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그에 따른 파생 콘텐츠가 이렇게까지 넘친 적도 없었다. 2030세대가 이 테스트 결과를  이토록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생활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하는 의문과 탐색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성찰의 답은 친구나 동료 가족 등 주변인들을 통해서 얻는다. 그 어느 세대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MZ 세대도 친구나 동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대들은 자기 자신을 다 드러내지 않고, 설사 그렇다 해도 불편하거나 심각한 이야기를 친구나 동료라는 관계를 통해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다 보니 “나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이런 '공증된' 검사에 더 의존하게 된다.

특히 취업 등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점에는 더욱 누군가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인사이트가 필요할 텐데, 그 역할을 이런 테스트가 대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는 MBTI가 정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MBTI를 생각했을 때 가장 관련도가 높게 나타나는  감정 키워드는 '정확성'이다.
네이버 카페 ‘MBTI & Health 심리 카페’ 는 회원이 8만명이고  매일 새 글이 600개 이상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이 커뮤니티의  Q&A에는 일반인의 글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정교한 분석과 답이 있다. 

카페의 글을 보면 MBTI가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건 아니지만, 응용은 한국에서 집대성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는 나도 “맞다”를 연발하며 맹신의 늪을 향해 달려가는 걸 느끼게 된다 .

실제 댓글에서 ‘한국인 특징’이라는 키워드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 댓글의 내용은 한국인들이 테스트를 좋아하거나, 분석 및 규정을 좋아한다는 내용이 많다. 또 이를 사주와 비슷한 방향성에서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한국인들이 사주 등을 통해 학습한 노하우를 MBTI와 결합해 새로운 콘텐츠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주는 정확성 면에서는 MBTI보다 떨어짐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MBTI 검사를 하고 콘텐츠도 찾아보다 보니, 실제 재미있다.
주변인들과의 궁합 등을 맞춰보는 재미도 있고, 나에게 맞는 패션이나 음악 등은 동의까지는 아니지만, 수긍이 가는 면도 있다. 특히 가장 열심히 읽었던 건 유형별 투자 및 자산증식 전략이었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투자전략까지 연결하는 이 위대한 응용력에 감탄하게 된다.

SNS에서 자주 볼 수 있는 MBTI 궁합표/ 자료출처_좋은일컴퍼니, 인싸요정
SNS에서 자주 볼 수 있는 MBTI 궁합표/ 자료출처_좋은일컴퍼니, 인싸요정

 

나의 테스트 결과는  INTP다.  논리적인 사색가로 호기심이 많고 사건이나 사물의 연속성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트렌드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까?.

MBTI에 대한 글을 시작하면서 사람을 지나치게 유형화하고 그 유형화에 따른 2차 콘텐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건 아닌지 우려했다. 물론 이를 맹신하는 몇몇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 이 유형에 인생과 운명을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한 방법으로, 그와 관련한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공통 수단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때 나의 팀장은 출근 첫날 내 혈액형을 물어봤었다.
B형이라고 했더니, 어쩐지 한 성격 할 줄 알았다며 그 이후 조금이라도 의견을 말하면 ‘역시 넌 B형’이라며 몰아세웠고, 고집을 피우면 '고집 센 신 씨'라 그렇다며  본인은 포용력 넓은 O형이라고 늘 강조했다. 

 

더 재밌는 건 옆 부서의 팀장(B형)이 ‘ O형은 통제를 걸 좋아하고 겉과 속이 다르니 상처받지 말라’고 말해준 것이다. 아마도 그때는 혈액형이 유행이었나보다.

우리 세대도 지역이나 성별, 혈액형으로 타고난 성씨까지 싸잡아 편견을 덧씌운 보편화와 일반화의 폭력을 수없이 저질러왔다. 적어도 최근의 성격유형 테스트나 각종 테스트 등은 약간이나마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고 다양하고 재미 있다.
안 해본 사람은 한번은 해볼 만 하다.

 

신은주 헤일로에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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