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 시장에 회오리가 몰아칠 태세다. 지난해 9월 테슬라 배터리데이에서 나온 내재화와 전고체 배터리가 변화를 촉발시킨다. 테슬라에 이어 완성체 기업들이 너도나도 '내재화'를 입에 담기 시작한다.

지난 3월 폭스바겐 파워데이는 기존 이차전지 기업을 더욱 긴장시킨다. 내재화와 전고체에 유럽내 배터리셀 생산을 늘리려고 한다. 각형 배터리도 가세한다. 우리 기업들은 파우치형을 슬며시 내려놓고 각형에 힘을 싣는다.

여기에 스웨덴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도 키우겠다고 한다. 투자를 늘려 생산량 확대를 꾀하겠다는 얘기다. 한-중-일 삼국이 주도하는 배터리 시장에 선전포고와 다름없다. 배터리 치킨게임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 보인다.

치킨게임은 승자 독식 구조다. 피를 말리는 가격경쟁이다 보니 누가 승자가 될지 장담하기가 어렵다. 지나온 반도체 치킨게임 역사가 짐작케 할 뿐이다.

 이완식 편집위원
 이완식 편집위원

반도체 시장의 첫 치킨게임은 인텔과 일본기업들과의 사이에서 시작됐다. 1980년대 D램 주도권을 쥔 인텔에 NEC와 도시바, 히타치등이 저가를 내세워 맞붙었다. 그 당시 모두가 적자를 기록했지만 인텔은 D램을 버리고 시스템 반도체에 집중하게 됐다. 그 후 NEC 등 일본기업들은 10년 이상을 반도체 시장 승자 독식을 누렸다.

그 다음 치킨게임은 2007년과 2010년에 벌어졌다. 두번 모두 난야 등 대만업체들이 시작했다. 공격적 투자로 저가를 앞세웠다. 불똥은 독일기업 키몬다로 튀었다. 2009년 당시 세계 2위였던 키몬다를 파산으로 내몰았다. 히타치와 NEC의 D램 사업부 통합법인이었던 세계 3위 엘피다도 결국 4위였던 마이크론에 팔렸다. 두번의 난을 일으킨 대만기업은 간판만 지키는 꼴이 됐다.

이로 인해 반도체 D램 시장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마이크론 3강 체제로 재편됐다. 3사는 2017년 찾아온 슈퍼사이클의 꿀맛을 맛보게 됐다. 올해 3분기부터 예상되는 호황의 열매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반도체 치킨게임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그 열쇠는 세번의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아 'D램 왕좌'에 오른 삼성전자가 알려줬다. 삼성전자는 치킨게임을 하면서도 흑자를 시현했다. 저가 경쟁에서도 제값을 받아가면서 치열한 가격 경쟁을 이겨냈다. 한발 앞선 신기술 투자로 초격차 전략이 통했기 때문이다.

이차전지도 마찬가지다. 반도체보다 진입장벽이 낮다고 평가되는 배터리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초격차 전략은 필수다. 지난 주에 열린 '인터배터리 2021'에서 국내 배터리 3사는 차세대 기술을 선보였다. K-배터리의 가능성을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초격차 전략은 기업의 노력이 절대 요구되지만 정부도 이에 보조를 맞춰줘야 한다. 조만간 발표하는 정부의 K-배터리 발전전략이 기대되는 이유다.

K-배터리는 중국에 이어 점유율이 세계 2위다. 세계 선두를 달리는 중국 기업 CATL은 유럽으로 발을 넓힌다. EU 완성차 기업들은 유럽내 배터리셀 생산을 확대한다. 미국도 반도체와 함께 배터리를 전략 육성하겠다고 한다. 이래저래 우리 기업들은 치열한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한민국은 치킨게임 승자의 DNA를 가지고 있다. D램 뿐만이 아니다. 가전과 휴대폰에서도 승자 경험을 보탰다. 하루 아침에 얻은 DNA가 아닌 오랜 기간 축적해온 경험과 학습의 산물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배터리 치킨게임 시계가 빨라졌다. K-배터리가 D램과 가전처럼 치킨게임에서 승리하려면 결국은 초격차 전략뿐이다. 치킨게임은 달리 말하면 가격전쟁이다. 기술력이 앞서면 가격 경쟁력은 따라오게 마련이다. 치킨게임의 최강 무기를 갖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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