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진 벤처기업협회 회장(48)은 이달부터 그동안 구상해왔던 다양한 벤처 육성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글로벌 벤처 육성책 마련’, ‘한국벤처정책연구원 설립’, ‘CEO 전문 교육프로그램 가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취임 5개월째를 맞아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벤처 업계의 현황을 분석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벤처 육성정책을 펼쳐보겠다는 것이다. ‘먹튀’라는 불명예스런 말을 들으며 뛰어들었던 소프트웨어 업체 사장에서 벤처기업협회 회장으로 올라선 그를 만났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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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벤처 업계는 의외로 순혈주의가 강하다. 벤처 업체의 CEO라고 한다면 스스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대표적인 벤처인으로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의장을 꼽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알게 모르게 스스로 직접 개발한 제품으로 시장 진입을 했을 경우에 벤처 업체의 가족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른바 창업 1세대에 대한 예우가 지나치게 강하다.

백종진 벤처기업협회장(한글과컴퓨터 사장)은 순혈주의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무역회사를 운영하다, 벤처캐피탈 사업을 벌이던 그를 벤처인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최근 들어서다. 벤처기업 협회장 직에 두 번째 도전끝에 성공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가 벤처기업협회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업체인 한글과컴퓨터의 수장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백 회장은 지난 2003년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락세에 있던 한글과컴퓨터를 인수했다. 당시 소프트웨어 업계 분위기는 백 회장에 비호의적이었다. 회사를 인수해 비싼 값으로 다시 매각하는, 이른바 먹고 튀려는 ‘먹튀’라는 말로 폄하하기도 했다. 업계 뿐만 아니라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언론에 나오기를 꺼려하는 프라임그룹의 백종현 회장과 직접 기자간담회를 갖고 머리를 숙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뒤에도 여전히 그를 불신임하는 시각은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4년 후 한글과컴퓨터는 정상화를 이뤘고, 그는 한국벤처기업협회장에 올랐다. ‘먹튀’에서 ‘회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가 존경하는 인물은 프라임그룹의 회장인 백종현 친형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백종현 회장이 백종진 사장이 동생이기 때문에 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백종진 회장은 이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의 형은 리더의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사장을 시킨다는 것이다. 그가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게 경영했던 것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그가 프라임그룹에 합류할 때만 해도 운영하던 무역회사는 시쳇말로 잘 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오명 전 과기부총리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대통령 보고에서 과학기술부가 업무보고를 하는데 외산 제품이 아닌 국산 한컴 오피스 제품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오명 부총리는 대통령에게 자신이 보여준 제품이 외산이 아니라 한컴제품이라고 보고했다. 이후 다른 부처에서도 한컴 제품을 많이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배짱이 있다. 프라임그룹에서 일할 때부터 대부분의 임원들이 하지말자는 말을 해도 자신은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보통 사장들과 다르게 일을 벌려야만 그의 적성에 맞았다. 기업 목표에 따라 인수합병도 과감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일을 벌이지 않으면 회사는 커질 수 없다는 평소 철학이 깔려 있다.

그래서 그의 벤처지원 정책은 공격적이다. 인수합병을 통해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국내 벤처도 상장만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발전적인 인수합병(M&A)이 활성화돼야 한다. 벤처협회 차원에서도 건강한 인수합병 문화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

백 회장은 취임 초기부터 M&A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개별 벤처를 지원해 중견기업으로 키워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벤처생태계를 다시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달부터 칼을 본격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한다. 이달 중 첫 사업으로 글로벌 벤처 육성책을 마련하고 각종 CEO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실행조직인 한국벤처정책연구원을 만들 예정이다. 연구원 설립을 위해 순수자금 3억원과 한국벤처기업협회 부회장사들이 2억원을 출연해 모두 5억원을 만들 계획이다.

백 회장은 또한 이달 중 회장 취임 당시 밝혔던 회원사의 M&A 지원을 위한 500억원 규모의 ‘M&A펀드’를 결성한다. 새롭게 조성되는 ‘M&A펀드’는 연기금, 산업은행 등 기관투자가가 400억원을, 협회 임원사가 100억원을 출자해 회원사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그가 벤처와 손을 맺게 된 것은 1999년 프라임벤처캐피탈 대표이사를 맡으면서다. 한글과컴퓨터 인수 이후 본격적으로 벤처사업을 벌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길어야 10년이 채 안된다. 아직도 벤처업계에서는 그를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협회장 경선 때 그를 반대했던 세력들도 아직 여전히 남아 있다. 이제 그의 리더십이 발휘될 때다.

백 회장은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비즈니스 변화에 잘 대응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리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협회 역시 마찬가지다. 리더로서 협회의 목표와 방향을 잘 설정해나간다면, 부차적인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한글과컴퓨터 인수 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키고, 지난해까지 3년 연속 흑자라는 성적을 만들었던 그가 벤처업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가 주목된다.

 

 

이병희 기자 shaek@it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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