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지난 21일(현지시간) 확정된 암호화폐 규제 권고안을 발표한 후 관련 업계가 각국 규제당국의 움직임과 후속 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FATF는 이번 권고안 발표로 암호화폐 거래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암호화폐가 자금세탁과 테러자금을 모으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현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FATF는 권고안 발표 후 각국 규제당국이 이를 법령으로 재정비하도록 1년의 유예 기간을 줬다. 이에 제도화가 이뤄질 때까지 블록체인 업계는 불확실성과의 불편한 관계를 당분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더비체인이 FATF가 발표한 권고안의 주요 내용을 짚어보고 쟁점 사안들을 살펴봤다.

 

암호화폐 취급 업소 신고제 도입...주요 쟁점은?

FATF는 암호화폐를 재산, 수익과 같다고 보고 이를 ‘가상자산’이라고 정의했다. 이 가상자산을 취급하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을 통칭해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자(VASP, Virtual Asset Service Provider)라고 했다.

권고 15안 3항에 따르면 VASP가 가상자산(암호화폐) 관련 사업을 하려면 소재지에 사업 신고를 해야 한다. 미국 뉴욕주에서 영업을 하려면 뉴욕금융감독청(NYDFS)에 신고 후 심사를 거쳐 비트라이선스(BitLicense)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이제 어느 지역에서나 사업 신고는 필수라는 것이다.

특히 권고안은 VASP에 법인뿐만 아니라 개인도 포함시켰다. 15안 3항 세부 내용을 보면 가상자산(암호화폐) 관련 활동을 하는 개인(natural person)과 법인이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시 규제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FATF는 암호화폐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일회성으로 거래하는 이용자들은 VASP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일반 이용자가 아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권고안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인이 거래소를 운영하는 등 법인과 같이 활동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FATF는 이런 경우에 신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이러한 기업형 개인과 일반 개인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에 대해 확정된 사항이 없어 향후 쟁점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감독원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암호화폐 취급업소의 신고 이행 의무를 확인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정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간한 ‘국가 자금세탁/테러자금조달 위험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FIU가 거래소 등 가상통화(암호화폐) 취급업소들로부터 신고를 받고 그 목록을 공개하는 것으로 법률 개정이 추진 중이다.

문제는 신고 수리에는 실명 확인 계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 3월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는 실명 확인 입출금 계좌 없이 거래를 하는 경우에 대해서 FIU가 신고 수리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

'국가 자금세탁/테러자금조달 위험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실명 확인 입출금 계좌 서비스는 은행과 취급업소의 자율적인 계약을 통해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은행이 취급업소에 실명 확인 계좌를 발급할 경우 취급업소와 이용자의 실명정보를 파악해야 하고 의심거래 보고의무 또한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발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한 거래소 관계자는 “국내 업계를 놓고 보면 실명 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거래소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향후 업계에 주는 타격이 가장 클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개 거래소만 실명 계좌를 통한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병욱 의원의 개정안은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의 특성을 고려해 FIU 원장이 정하는 자에 대해서는 예외로 둔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 예외 규정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나와 있지는 않아 향후 법률 개정 과정에서 논의가 명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전례 없는 글로벌 협력 요구...트래블룰 실현 가능할까?

FATF는 권고안 최종 확정을 앞두고 지난 5월 '트래블룰'을 담은 권고 15안 7(b)항에 대한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그 후 변동사항 없이 해당 내용을 포함한 확정안을 발표했다.

트래블룰의 주요 내용은 암호화폐를 보내는 사람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의 정보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1)자금을 보내는 사람의 이름 (2)암호화폐 지갑 등 보내는 사람이 거래 과정에서 사용한 계정 정보 (3)주소, 주민등록번호 또는 사업자등록번호와 같이 보내는 사람의 특정 정보 (4)받는 사람의 이름 (5)암호화폐 지갑 등 받는 사람이 거래 과정에서 사용한 계정 정보 등을 공개해야 한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도 회원가입과 고객인증제도(KYC) 등 권고안에 부합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 앞으로의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별 VASP가 권고안을 준수했다고 해도 표준안이 없는 상황에서 트래블룰이 실현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서클, 코인베이스, 체이널리시스 등이 권고안 발표 후 전례 없는 글로벌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또 권고안에서 규정한 VASP 모두에 트래블룰이 적용 가능할지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예를 들어 암호화폐 지갑의 경우, 분실 위험이 높은 프라이빗키를 업체가 중앙 서버를 통해 관리하도록 맡길 수 있지만 이용자가 이를 직접 관리하도록 하는 서비스도 있다. 이용자가 프라이빗키를 직접 보관해 관리하면 별도의 회원가입 없이 이메일 주소만으로 계정을 만든 후 트랜잭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서비스 특성상 이용자의 정보가 필요없는 경우도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정보를 어떻게 공유해야 할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이용자가 자신의 정보를 직접 관리하는, 일종의 탈중앙화 서비스들은 회원가입 절차를 따로 도입해 이용자의 정보를 수집하는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금 거래 투명성 확보 우선한 FATF 권고안...업계 미칠 영향은?

외신들은 이번 권고안 발표에 미국 정부의 입장이 특히 많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정부는 자금세탁방지와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디트,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 등 금융사들이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각각 1조5000억원, 1조3000억원의 벌금형을 부과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도 6월 21일(현지시간)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FATF 총회에서 "암호화폐가 정당하게 사용되는 것은 허용하지만 불법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더 이상 간과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이처럼 FATF의 권고안은 자금세탁을 확실하게 막겠다는 미국 정부의 기조와 의지를 따라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자금 거래의 투명성 확보에 주력한 FATF 권고안은 블록체인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 MIT 디지털 화폐 연구소 수석 고문인 마이클 케이시는 지난 5월 27일(현지시간) 코인데스크 기고를 통해 앞으로 암호화폐 생태계가 주요 거래소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거래소를 이용하지 않고 개인이 직접 거래하는 P2P 거래의 비중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체인파트너스 리서치센터도 6월 29일 'FATF가 블록체인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해 암호화폐 거래소 생태계가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라고 보았다. 각종 고객확인제도(KYC), 자금세탁방지(AML) 등에 투입되는 비용을 대형 거래소만이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또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대시, 모네로 등 프라이버시 코인들은 제도권 밖에서 거래가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록체인 업계도 규제당국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면서 내부적으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체이널리시스는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국 핀센(FinCEN)에서 전략 개발을 맡았던 마이크 모지어를 기술위원장으로 영입했다. 리플도 레그테크 스타트업인 코인펌과 협력해 자사의 XRP가 세탁이 됐는지, 자금세탁방지(AML)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각국 규제당국이 제도를 마련하기 전에 블록체인 업체별 대응 방안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유림 기자 2yclever@thebch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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