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암호화폐 규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공식적으로는 언급을 자중하고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물밑으로는 은행이 암호화폐 거래소와 기존 거래를 취소할 수 있는 법 조항을 준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7일 2019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암호화폐와 관련된 내용을 담지 않았다. 

금융위의 업무계획에는 암호화폐 진흥이나 규제 등 내용이 전혀 없었지만 금융위의 암호화폐 정책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금융위원회는 업무계획에서 올해 주요 입법과제 중 하나로 제윤경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꼽았다.

금융위 업무계획에 따르면 이 개정안은 암호화폐 취급업소(거래소)에 금융회사와 동일한 자금세탁방지의무 및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대한 신고의무, 추가적인 내부통제 의무 등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금융회사가 암호화폐 거래소와 금융거래를 의무적 혹은 재량으로 거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특정금융거래정보법 개정안은 2018년 3월 21일 제윤경 의원 등 10인이 제안했다. 2018년 3월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회부돼 7월 25일 상정됐다. 2018년 11월 23일에는 법안심사제1소위에서 논의됐다.

개정안이 의원 입법형태로 발의되기는 했지만 금융위가 주요 입법과제로 설명한 것으로 볼 때 금융위의 의중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2018년 11월 23일 회의에서 정부의 입장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금융위는 대체로 다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또 금융위는 '가상통화 대응' 정책실명 공개과제 사업내역서에서 금융위가 암호화폐와 관련해 특정금융거래정보법 개정안 의원발의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내용  출처: 국회 특정금융거래정보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

 

자금세탁 위험 높다고 판단되면 기존 거래도 종료

 

이 개정안은 암호화폐 거래소가 보관, 관리, 알선 등을 위해 암호화폐를 금융자산과 교환하는 거래 등을 자금세탁행위 및 공중협박자금조달 행위 방지 의무부과 대상거래로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금융회사가 암호화폐 거래소와 금융거래 시 거래소의 신고의무 이행 여부 등을 추가적으로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법안은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고객이 자금세탁행위나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의 위험성이 특별히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 해당 고객과의 신규 거래를 거절할 수 있고 이미 거래관계가 수립돼 있는 경우에는 해당 거래를 종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존 법령에는 암호화폐 거래소 등 고객들이 은행에 의무이행, 신원확인 등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에 거래를 거절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개정안은 ‘자금세탁행위나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의 위험성이 특별히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범위가 넓어졌다. 판단과 책임 역시 은행에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조항이다. 이 경우 개정안은 신규 거래는 물론 기존 거래도 종료할 수 있다고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은행들이 상당수 암호화폐 거래소와 거래를 중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빗썸, 업비트 등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는 시중 은행을 통해 고객 가상계좌 등을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후발 주자들은 법인계좌를 통한 고객들의 입출금, 일명 벌집계좌를 통해 암호화폐를 거래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이같은 벌집계좌가 금융사고 등의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면 거래소들은 벌집계좌를 사용하지 않도록 은행 거래를 해용해 달라는 입장이다. 이에 다시 금융당국과 은행은 암호화폐 시장의 과열을 막기 위해 규제를 풀 수 없다고 주장한다.

 

"거래소가 은행 설득 못한 것"

 

개정안이 통과, 시행될 경우 시장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금융위가 암호화폐 규제 강화 방안을 준비해 왔고 개정안을 통과시켜 고삐를 더 쥐겠다는 점이다. 금융위는 개정안 통과를 위해 논란을 교모히 부인하면서 의원들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비체인이 확인한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3일 법안심사제1소위에서 김종석 의원(자유한국당)과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논쟁을 벌였다. 

김종석 의원은 “최근 문제가 된 것이 암호화폐 관련해서 자금세탁방지를 잘 준수하는지 여부를 보겠다는 행정지도만으로도 은행들이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거래를 거부해 버렸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우리 암호화폐공개(ICO)나 암호화폐 거래에 있어서 금융회사들이 아예 관련된 구좌 개설을 거부하고 폐쇄해서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암호화폐 거래가 불가능해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용범 부위원장 “이번 개정안과는 사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다시 김종석 의원은 “금융기관들이 구좌 개설해서 암호화폐 거래소하고 거래할 때 자금세탁 방지의무를 금융기관에 부여하면서 금융기관들이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구좌 개설 자체를 거부하는 일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거 아닙니까”라고 지적했다.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내용  출처: 국회 특정금융거래정보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

 

이에 대해 김용범 부위원장은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된다”고 언급했다. 김 부위원장이 지칭한 것은 2018년 1월 나온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이다.

김종석 의원과 김용범 부위원장의 숨바꼭질 같은 논쟁은 계속됐다. 김종석 의원은 “은행이 할 수 있다고 하면 되는데 은행들이 자금세탁 방지의무 때문에 그냥 아예 거래를 거절해 버려서 현실적으로 ICO나 암호화폐 거래소가 작동을 못하게 되어 있는 게 현실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반면 김용범 부위원장은 “전면 금지돼 있는 게 아니고 과거에 그런 가이드라인이 없을 때보다 은행들의 주의 의무가 강화돼서 취급업소 중에서 은행들 설득이 안 돼서 취급업소가 새로 사업을 개시하기가 다소 어려워졌다는 거지 현재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소위 취급업소들이 다수 있다”고 반박했다. 즉 거래소가 은행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김용범 부위원장은 자금세탁방지 등을 위해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제시하며 가이드라인을 강조했다. 바로 금융위가 원하고 것은 특정금융거래정보법의 상당 부분은 이 가이드라인을 법으로 바꾸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말그대로 가이드라인이지만 법은 다르다. 

이미 가이드라인에는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등 자금세탁 위험이 높은 경우 거래를 거절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정금융거래정보법은 이 가이드라인의 핵심 내용을 법으로 명시하는 수순인 것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암호화폐 업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저변에 깔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가이드라인에는 금융회사 등이 암호화폐 거래소를 자금세탁 등의 위험이 높은 고객으로 고려해 거래소에 대해 업무규정이 열거한 추가적 확인 사항과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위험이 높은 고객의 예시로 카지노사업자, 대부업자, 환전상 등을 꼽았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카지노사업자, 대부업자 등과 유사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금융위가 치밀하게 규제 법제화를 준비해 온 만큼 올해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점쳐진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이를 근거로 금융위는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통제와 규제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업계에서는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시장 냉각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함께, 오히려 암호화페 거래소의 꼼수 영업을 차단함으로써 암호화폐 시장 건전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강진규 기자  viper@thebch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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