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이 ‘무법천지’다. 자격 미달의 거래소가 무분별하게 투자자를 모은 후 투자금을 들고 사라지는, 일명 ‘먹튀’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퓨어빗이 30억원 대의 자체 암호화폐를 팔고 잠적한 것을 시작으로 12월 제트비트, 올해 1월 붐비트, 2월 루빗, 그리고 최근 코인빈까지 거래소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얼마 전 암호화폐 투자 사기로 경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한 코인업 사건의 중심에도 결국은 거래소가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된 것이라면 다행이나 그렇게 보기에는 우후죽순으로 거래소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속성으로 만들어 주는, 일명 ‘패키지’가 등장한지도 오래다. 최근 한 블록체인 행사에 나온 패키지의 경우 단 하루 만에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가격도 수 천만 원에서 수 억 원까지 다양했다. 한마디로 ‘맞춤형’으로 암호화폐 거래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거래소들이 과연 제대로 된 보안성과 이용자 보호체계를 갖췄을까? 또 다른 ‘먹튀’를 노린 검은 세력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많은 전문가들이 거래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암호화폐, 나아가 블록체인 시장의 미래가 없다고 지적하는 이유이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두말할 필요 없이 정부가 나서는 것이다. 중국처럼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하든, 일본처럼 암호화폐 거래소 등록제를 도입하든, 정부가 정책 방향을 확실하게 정하면 어떤 형태로든 암호화폐 거래소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는 ‘규제 아닌 규제’를 고수하고 있다. 암호화폐 관련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행위 자체로 정부가 ‘공인’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블록체인ㆍ암호화폐 업계 스스로 나서야 한다. 무책임한 정부 탓만 하면서 공멸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에 ‘한국블록체인협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블록체인협회가 어떤 곳인가. 지난해 1월 창립한 국내 첫 블록체인 관련 협회다. 협회의 주축은 업비트·빗썸 등 국내 내로라하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이다. 특히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회장을 맡으면서 국내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아온 명실상부 국내 최고 위상의 협회다.

물론 그동안 한국블록체인협회가 역할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거래소 자율규제 심사를 진행했고, 암호화폐공개(ICO) 가이드라인도 제안했다. 정부, 정치권과 소통을 위해 정책 간담회를 열었고, 최근에는 코인업 사건과 관련해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보다 적극적으로 블록체인ㆍ암호화폐 업계의 이야기를 듣고 강력히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건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거래소 자율규제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모두가 통과하는 일회성 자율규제 심사로는 신뢰를 받을 수 없다. 투자자 보호도 마찬가지다. 뒷북성 주의 당부 정도가 아닌 선제적 경보와 대응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블록체인협회는 당장 암호화폐 거래소 실태조사에 나서라. 정확한 거래소 실태를 파악해 투자자들에게 알리고, 문제가 있는 거래소는 직접 수사기관에 고발해라. 언제까지 정부만 바라보면서 손을 놓고 있을 것인가. 블록체인ㆍ암호화폐 산업도 살고, 한국블록체인협회도 사는 길을 찾기 바란다.

한민옥 기자 mohan@thebch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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