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암호화페공개(ICO) 실태조사 결과는 한마디로 ‘역시나’였다.

실태조사가 ICO 제도화로 이어질까 ‘혹시나’ 했으나, 정부의 입장은 1년 전과 비교해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암호화폐는 ‘투기’고, ICO는 ‘사기’였다. ICO 전면 금지 방침에도 전혀 변함이 없었다.

이러려면 정부는 대체 왜 실태조사를 한 것일까? 사실 이번 실태조사는 동기부터 석연치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 실태조사에 들어가면서 ‘ICO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진상조사’라고 했지만, 업계에서는 대대적인 제재를 위한 근거 마련이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했다. 질문 자체가 설문조사가 아니라 범죄자를 잡아넣으려고 쓰는 조서에 가깝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 마련이 아니라 ICO 업체들을 형사고발하기 위해 질문서를 만들었다는 말도 들렸다.

그리고 실제 정부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P2P 대출 유동화 토큰 발행·거래, 가상통화 투자펀드 판매 등 현행법 위반 사례를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 통보하기로 했다.

정부가 위법을 저지른 ICO 업체들을 조치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기에 가까운 비즈니스 모델로 ICO에 나서는 업체들이 여전한 현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더욱 대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문제는 실태조사의 결과가 법적 조치로 ‘끝’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실태조사가 무엇인가? ‘실제(實際)의 형편(形便)을 살펴보는 일’이다. 다양한 측면에서 실제 형편을 파악해 문제가 있으면 조치하고, 추후 그런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게 실태조사의 근본 목적이다.

그런데 정부는 실태조사 결과 ICO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행위 자체로 정부가 ICO를 ‘공인’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제도화를 사실상 거부했다. 문제는 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테니 업체나 투자자들은 알아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정부가 이런 규제 아닌 규제를 계속하면 제대로 해보려는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업체들은 결국 움츠려 들어 아무것도 못하고 고사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다. 문제가 되더라도 개의치 않는 소위 ‘교도서 담벼락 위를 걷는’ 업체들만 더욱 설치게 될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몫이다. 정부의 취지가 발표처럼 미국·유럽 등과 보조를 맞춰 제도화를 신중하게 지켜보겠다는 것이라 해도, 최소한 불법에 대한 명확한 지침 정도는 시장에 전달해줘야 하는 이유이다.

아울러 정부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업계는 물론 학계, 정치권, 투자자가 모두 참여하는 토론회라도 한번 열기를 권한다. 정부가 ICO와 별개로 블록체인 기술과 산업 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데도, 블록체인 스타트업 대다수가 ICO 허용을 주장한다면 제대로 이유라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한민옥 기자 mohan@thebch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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