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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최대 총판 정원엔시스템 수사 후폭풍

IT제품 ‘밀어내기 관행’ 또 도마 오르나

미국 휴렛팩커드(HP)의 국내 최대 총판업체인 정원엔시스템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이 전격적으로 이뤄져 IT업계에 또 다시 ‘밀어내기 관행’이 이슈로 떠올랐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지난달 7일 정원엔시스템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를 압수수색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이날 압수수색에서 경찰은 노트북과 PC 10여대, 각종 서류를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원엔시스템에 대한 압수수색 이유에 대한 IT업계의 추측도 각양각색이다.

IT업계의 호사가들은 지난 2004년 한국IBM의 담합과 뇌물제공 사건과 같은 후폭풍이 불지 모른다고 얘기한다.

정원엔시스템 한 고위 관계자는 “경찰청 압수수색과 관련해 직원들의 동요는 없는 상태이고 아직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지켜보고 있는 상태”라며 “직원들에 대한 수사 여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HP 홍보팀 한 관계자도 “정원엔시스템이 HP의 최대 총판 중에 하나여서 경찰수사가 걱정은 되고 있지만 아직 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수사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며 “수사가 종결되기 전까지는 어떤 공식입장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 압수수색 이유는 뭔가?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정원엔시스템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한 것에 대해 IT업계의 추측이 다양하다.

이번 정원엔시스템 압수수색의 이유에 대해 IT업계에서는 하드웨어업계의 오랜 관행인 ‘제품 밀어내기’와 영업과정에서의 ‘금품로비’, 그리고 제품 납품과정에서 계약과 다른 서버 제품을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제품을 ‘덤핑 판매’했을 것이란 세가지 관측이 유력하다. 이 세가지 중 가장 유력한 추측은 병무청, 조달청, 경찰병원, 경기지방경찰청, 서울지방항공청 등 공공부문 영업에서 최근 두각을 보여 온 정원엔시스템이 서버 제품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금품로비’를 벌였을 것이란 관측이다.

수사과정을 계속 지켜봐야 알겠지만 어떤 추측이 맞던 한국HP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IT업계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한국HP와의 연관성이 밝혀지면 지난 2004년 1월 한국IBM이 정보통신부와 대검찰청 등 공공기관을 상대로 금품로비를 벌인 사건의 처리 과정을 밟을 수 있어 조사결과가 주목된다.

◆ 밀어내기 관행은 뭔가?

‘밀어내기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국적 IT업체의 한국지사장이나 영업총괄본부장이 교체될 때 그리고 한국지사의 총판이나 총판 하부 조직인 영업 협력사가 바뀌거나 추가될 때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밀어내기 관행’이었다. 심할 경우 다국적 IT업체 본사와 아시아태평양지역(AP) 본부의 임직원들이 대거 방한하고 자체 내부감사까지 벌어진다. 심할 경우 법적인 책임공방으로까지 확산된다.

이런 ‘밀어내기 관행’이 끊이질 않는 가장 큰 원인은 다국적 IT업체들의 한국지사에 대한 매출압박이다. 한국지사장이나 영업총괄본부장들의 경우는 매분기 매출목표치가 정해진다. 쉽게 달성할 수 없는 수준의 목표치이다. 매출목표치가 높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상체계도 잘돼 있다. 하지만 매분기 매출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경고나 주의 조치가 뒤따르고 몇 번 계속되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한국지사들의 경우는 여러 총판과 총판별로 총판 직속의 영업 협력사들을 두고 있다. 많게는 수천개에서 적게는 수십개의 영업 협력사를 두고 있다. 영업 부문도 복잡하다. 통신, 금융, 제조, 정부공공 등 큰 산업군별로 여러 영업 협력사를 두고 선의에 경쟁을 시킨다. 영업을 잘하는 협력사의 경우는 한국지사에 잘 보여 영업에 아주 중요한 정보를 얻기도하고 제품 마진폭을 좋게 받을 수도 있다. 영업에 정보는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지사에 잘 보여야 한다.

결국 총판과 총판 산하 영업 협력사들의 경우는 한국지사의 매출 달성요구를 거부하기가 힘들다. 본사나 AP의 매분기 매출 목표치를 한국지사가 달성하지 못하게 될 경우 한국지사는 총판이나 총판 직속 영업 협력사에게 선매출을 잡도록 강요하게 된다. 한국지사, 총판, 영업 협력사들이 한국지사의 분기 매출목표치를 달성시키기 위해 ‘가상의 매출’을 발생시키게 된다.

예를 들면 한국지사나 총판이 영업 협력사에서 프로젝트가 없거나 아니면 프로젝트가 끝나지 않아 제품 ‘주문’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서류상으로 ‘주문’하도록 한다. 제품을 주문하면 서류상으로 한국지사와 총판에 매출로 잡히고 실제 본사나 AP본부에서 제품이 제조단계에 들어가거나 선적되게 된다. 이런 ‘밀어내기’로 쌓인 제품은 정상적인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검은손’에 의해 사용자에게 넘겨진다.

이런 ‘밀어내기 관행’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더욱 극성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IMF 사태 전 ‘밀어내기’로 쌓인 부실을 털어낸 곳이 많다는 후문이다. 또 회사와 회사간 합병과 같은 큰 이벤트가 있을 때도 ‘밀어내기’로 쌓인 부실을 털어낸다는 후문이다. 특히 요즘과 같은 본사 차원의 인수합병으로 한국지사들의 자연스러운 합병이 이뤄질 경우도 이런 ‘밀어내기’로 쌓인 부실을 털어낸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 정통부와 KTB투자조합 왜 거론되나?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정원엔시스템에 대한 압수수색 사실이 알려진 후 압수수색에 대한 정보유출 의혹이 일고 있다. 경찰청이 정원엔시스템을 압수수색한 사실을 밝혀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철청의 내부 정보유출 의혹도 풀어야할 과제이다.

경찰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정보통신부가 최대 주주인 KTB투자조합이 정원엔시스템의 지분을 대량 매각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KTB투자조합은 정보통신부가 중소기업 육성 차원에서 지분 50%를 출자한 투자조합이다.

경찰수사 당일 정원엔시스템의 2대 주주인 KTB투자조합은 이 업체 주식 70여만 주를 장내 매도한 데 이어 지난달 13일에도 30만여 주를 팔아 보유 주식 200만여주 가운데 절반을 처분했다.

KTB투자조합 쪽은 이에 대해 2년 반 전에 정원엔시스템 지분 20%를 주당 1000원 내외에 샀고 이후 계속 팔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다가 최근 주가가 1700원선 이상을 유지하고 거래도 활발해 매도가 지속적으로 이뤄진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 정원엔시스템은 어떤 업체인가?

지난 2000년 코스닥에 등록한 정원엔시스템은 영우디지털, 대원과 함께 한국HP의 전통적인 총판업체로 매출 1000억원대의 유통 전문업체이다. 이 회사는 행정자치부, 정보통신부 등 28개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에 대형 서버를 주로 납품하고 있다. 최근 2년 사이에는 경찰병원, 조달청, 병무청, 경기지방경찰청, 서울지방항공청에 서버를 납품했다.

올해 1월 17일에는 한국HP로부터 최우수협력사로 꼽혀 한독컴퓨터와 함께 ‘최우수협력사 대상’ 수상의 영예를 받기도 했다. 정원엔시스템은 공공 부문 영업과 솔루션 부문 영업에서 다른 협력사에 비해 탁월한 성과를 올렸기 때문에 대상을 수상했다.

■ Box 기사 --- 웹하드에 IBM 사진 있음

한국IBM, IT업계 ‘비리’ 터지면 좌불안석

한국IBM은 ‘IT업계 로비 사건’만 터지면 좌불안석이다.

경찰이 미국 HP의 한국 내 최대 총판인 정원엔시스템을 압수수색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난달 14일 한국IBM의 대외 채널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난 2004년 한국IBM의 대형 로비 사건이 또 다시 거론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2004년 당시 한국IBM 금품로비 사건으로 한국IBM, LG IBM, SK C&C, LG전자, 위즈정보기술, 윈솔, 청호컴넷, 한국메인라인시스템 등 15개사 관계자와 공무원 48명이 검찰에 입건됐고 12명이 구속됐다.

한국IBM이 담합과 뇌물제공으로 수주한 기관별 납품규모는 새마을금고연합회 247억원, 국세청 153억원, KT 71억원, 한전 69억원, 대검찰청 35억원, 정통부 26억원, KBS 23억원, 해군 17억원, 육군 12억원 등 모두 660억원이었다.

이 사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는 해당 15개사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입찰참가 규제조치를 취했다. 결국 한국IBM은 몇 년간 공공부문 입찰에 참가자격 자체를 박탈당했다.

다국적 IT기업들의 경우 한국 내 총판이 공공기관 프로젝트를 수주해 제품을 납품하는 경우 본사와 한국 지사의 지원을 받아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이다.

정원엔시스템이 최근 공공부문 영업에서 두각을 보였기 때문에 한국HP로서도 경철청의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 KTB투자조합의 정원엔시스템 투자 문제없나?

경찰청의 정원엔시스템 압수수색의 파장은 KTB투자조합의 정원엔시스템에 대한 투자 적절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중소기업 육성 차원에서 지분 50%를 출자한 투자조합인 만큼 국내 IT 중소기업을 육성하는데 투자해야지 왜 하필 외국계 IT다국적 업체인 HP의 국내 최대 총판업체에 투자했느냐는 지적이다.

정통부가 정책자금 300억원(지분 50%)을 출자해 KTB네트워크(168억원), 동양생명(30억원) 등 다수 벤처투자회사와 결성한 투자조합 ‘MIC2003-1(11호)’은 지난 2004년 한국HP의 국내 총판인 정원엔시스템에 39억3000만원(지분 20.2%)을 출자했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정통부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투자했다고 하지만 정통부 주도의 중소기업 육성에 펀드가 외국계 IT업체의 국내 총판에 투자된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정통부가 수많은 IT중소벤처기업 육성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KTB투자조합이 정원엔시스템에 투자한 목적도 의혹의 대상이다.

KTB투자조합은 정원엔시스템이 외국계 컴퓨터 유통사업에서 벌어들인 자금으로 지난 2004년과 2005년 전사자원관리(ERP) 소프트웨어 제품 개발에 쓰는 등 투자규약상 구조조정 목적 상장기업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RP 전문업체 한 관계자는 “정원엔시스템이 제품 개발에 나섰다는 ERP 소프트웨어 제품에 대해 알고 있는 IT전문가들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특히 2004년에는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중소기업 ERP 3만개 확산 사업’으로 ERP전문업체들이 난립하고 있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KTB투자조합이 정원엔시스템에 투자한 목적이 ERP 소프트웨어 개발 목적이라면 그것은 투자조합 결성 목적을 크게 벗어난 잘못된 투자”라고 비난했다.

윤성규 기자 sky@it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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