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월 중순 국내 유명 소프트웨어(SW) 업체 사장을 만났다. 그는 SW의 본토인 미국 시장에 준거사이트를 확보한 데 대해 흥분해 있었다. 사실 SW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 SW업체가 미국에 레퍼런스를 확보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흥분한 것은 단지 미국에 고객을 확보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이달 중순 미국 고객의 킥오프 미팅에 초청됐다. 공교롭게도 시점이 국내 모 굴지의 통신회사의 킥오프 미팅에 다녀 온 시점이었다. 그는 양국의 킥오프 미팅을 통해 한국 SW 산업이 발전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그의 요청으로 고객사명과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밝히지 않는다).

#한국에선

그는 지난 5월말 통신업체로부터 킥오프 미팅에 관해 연락을 받았다. 장소는 국내 유명 리조트로 1박2일 일정이었다. 그는 미국출장 등의 일정으로 행사 참여가 어려웠지만, 고객쪽에서 사장이 직접 참석해야한다는 독촉을 받고 시간을 쪼개 찾아갔다.

킥오프 미팅장에선 낯익은 얼굴이 많았다. 다름아닌 SW업계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장들이었다. 그들도 고객 요청으로 사실상 킥오프 미팅에 불려나왔다. A사장은 킥오프 미팅 다음날 고객들의 골프비용을 낸다고 했다. B사장은 리조트와 저녁 식사 비용을 맡았다. 그에겐 이들의 선물을 담당하는 역할이 떨어졌다.

“말이 좋아 초청이지 강제 동원이나 다름없었다. 국내 대부분 킥오프 미팅이 이런 식이다. 프로젝트하면 가격 후려치고 킥오프 미팅까지 불러 이것 대라 저것 대라. 한국에선 SW업체의 사장으로 살기 참 고달프다” 기자가 SW업계를 취재하면서 직간접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고객사의 킥오프 미팅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더 이상을 SW 사업을 하고 싶지 않다”고까지 했다. 실제 이 사장이 근무하는 회사는 해외 상장을 준비하면서 본사를 아예 해외로 이전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미국에선

그는 국내 통신회사 행사에서 돌아와 미국 고객으로부터 킥오프 미팅 초청을 받고 깜짝 놀랐다. 미국행 비행기 티켓과 호텔 숙소, 행사기간 렌트카 서비스까지 사실상 모든 비용을 고객사가 제공하겠다는 이메일을 받은 것이다.

그는 미국에 일주일을 머물렀다. 그는 밥값을 제외한 어떤 비용도 쓰지 않고 미국 고객사와 킥오프 미팅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가 프로젝트 실행방안 등을 설명하고 동행한 임직원들의 체류비용도 모두 고객사가 부담했다. 현지에는 지금도 개발자 2명이 남아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물론 모든 비용은 고객사가 부담한다.

그는 “미국 고객사는 제품력과 성능에 대해 철저하게 검증했지만 가격을 문제삼지 않았다”며 “구체적인 금액은 밝힐 수 없지만, 국내보다 수익률이 2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접대비 명목 등으로 빠져나가는 부대비용까지 계산하면 3배 이상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또 “SW사업 10여년하면서 대접받으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SW기업의 대표이사로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미국 고객사와 6개월 가량 접촉하면서 왜 미국이 SW 최강국이 됐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를 SW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고객과 대등한 관계에서 프로젝트 진행, 기술과 성능 위주의 제품 선별 등으로 요약했다. 그는 미국이 부럽다고 했다.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미국에선 평범한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차세대 먹거리로 SW 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분리발주도 하고 굿소프트웨어(GS) 인증제도 도입했다. 그밖에도 SW산업 육성책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SW산업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미국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정책 당국자들은 물론 SW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심해봐야 할 대목이다.

성현희 기자 ssung@it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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