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기 메타넷BPO 연구위원>

지난해 말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08년 엔터프라이즈 웹 2.0이 주류로 부상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가트너는 세 가지를 그 이유로 들었다. 구글에서 엔터프라이즈 2.0 키워드에 대한 검색결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정도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IBM 등 대형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엔터프라이즈 웹 2.0 솔루션 패키지 공급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 웹 2.0 기술을 접목할 경우 업무프로세스관리(BPM) 및 서비스지향아키텍처(SOA)와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엔터프라이즈 2.0에 대한 오해

국내에서도 엔터프라이즈 2.0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올해 IBM, 오라클, BEA시스템즈 등 대형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마케팅이 본격화되면 시장의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수요자인 기업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엔터프라이즈 2.0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어떻게 도입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 하는 실천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고민도 다양하다. 심지어 웹 2.0 기술을 일부 도입했던 기업 중에는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며, 웹 2.0은 과대광고라고 폄훼하는 경우도 많다.

아래에 언급한 두 가지 사례는 웹 2.0 혹은 엔터프라이즈 2.0에 관한 논의를 할 때 핵심적인 사안이 무엇인지, 또 이를 도입하려는 기업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례 1:얼마 전 국내 대기업은 웹 2.0 기술을 적용한 사내 협업시스템을 재구축했다. 기존 그룹웨어나 인트라넷에 비해 다양한 기능을 업그레이드했다. 블로그, 태깅 등 다양한 웹 2.0 기능도 채용했다. 그런데 고민에 빠졌다. 화려한 인터페이스, 다양한 기능에 비해 사용자들의 활용도는 기존 시스템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회사를 벤치마킹했던 그룹관계사의 IT부서 관리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임직원들의 자발적 참여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쓸 데 없는 콘텐트만 쌓이는 지식관리시스템의 전철을 밟고 있다.”

 #사례 2:프록터앤갬블(P&G)의 ‘커넥트 앤드 디벨로프(C&D;Connect and Develop)’ 전략은 웹 2.0 사상을 기업에 도입해 성공적으로 혁신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P&G는 지난 2003년 “신제품의 50%를 외부 R&D 역량을 활용해 개발할 것”이라며 이 같은 전략을 추진해오고 있다. C&D전략의 성공에 힘입어 P&G는 2006년말 현재 약 35%의 신제품을 외부 R&D 네트워크를 통해 조달하고 있다. 나인시그마, 이노센티브, 유어엔코어, 옛2닷컴 등 외부의 다양한 지식커뮤니티를 목적의식적으로 활용하는 집단지성 체계가 이 같은 개방형 혁신을 가능하게 했다. P&G C&D 전략의 성공은, 일하는 방식과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웹 2.0 기술을 도입하는 것과 웹 2.0 사상을 체화하는 것은 별개라는 것이다. 특히 웹 2.0 기술이 엔터프라이즈 2.0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P&G 사례에서 보듯이 웹 2.0의 집단지성 전략을 개방형 혁신전략에 응용하는 것은 IT 이슈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P&G의 C&D 전략은 웹 2.0 개념이 태동하기 전에 나온 것이 아닌가.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P&G C&D 전략의 핵심 성공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P&G가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바꿨다는 점을 들고 있다. 외부 아이디어를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듦과 동시에 내부 아이디어가 잘 교류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소싱 하더라도 내부 조직 역량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 P&G의 C&D 전략은 웹 2.0 사상을 기업 문화에 온전히 체화해 나간 것이다.

반면 첫 번째 국내 기업 사례는 새로운 IT 패러다임을 도입할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새로운 IT 패러다임=신기술 IT시스템 도입‘이라는 잘못된 도식으로 이해하다 보니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도입효과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다. 특히 웹 2.0 사상과 기술을 기업에 접목하기 위해서는 참여와 공유라는 근본적인 문화의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인터넷의 자발적 참여와 기업 내 자발적 참여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는 수천만 명의 인터넷 사용자 중 단 몇 %만 적극적으로 참여해도 풍부한 콘텐트가 쌓이고, 이를 통해 집단지성의 효과를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고작 수백명, 수천명의 기업에서 10%도 안 되는 소수의 임직원만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면, 그런 시스템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참여와 개방, 공유라는 웹 2.0의 사상을 기업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교육과 보상을 충분하게 고민해야 한다.

웹 2.0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쉽지만 웹 2.0 문화를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 문제는 웹 2.0 문화를 실현하지 못할 경우 웹 2.0 기술은 회사 내에 무수한 IT 도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한 P&G의 C&D 전략은 엄밀하게 얘기하면 요즘 언급되는 웹 2.0 기반의 IT인프라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당시 P&G의 이메일 시스템은 무려 25년간 사용해온 낡은 기술이었다. 대표적인 웹 2.0 혁신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골드코프’처럼 P&G 역시 웹 2.0 개념이 탄생하기 이전에 개방과 공유라는 정신을 기반으로 이런 혁신을 추진했다.

두 번째 엔터프라이즈 2.0의 기술적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웹 2.0 기술을 도입할 때는 IT부서의 주도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P&G와 모토로라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부터 P&G는 웹 2.0 기술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대표적인 엔터프라이즈 2.0 기업이라는 평가도 받기 시작한다. P&G가 2005년부터 도입하기 시작한 웹 2.0 기술도 베스트 프랙티스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P&G는 C&D 전략이 한창 성과를 보이던 2005년부터 e메일, 그룹웨어 등 협업시스템을 웹 2.0 기반으로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다. C&D 전략의 성공을 위해서는 IT부서가 혁신의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판단, 이 일환으로 다양한 웹 2.0 기술을 도입한 것이다.

P&G의 엔터프라이즈 2.0 전환을 이끈 핵심 임원 중 한명인 필리포 파세리니 최고정보책임자(CIO)는 2005년부터 시작된 웹 2.0 도입에 앞서 이렇게 강조했다고 한다. “웹 2.0이 P&G에 맞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항상 IT부서가 먼저 사용해 봐야 한다.” P&G는 이 같은 검증을 거쳐 전사에 걸쳐 협업시스템 업그레이드, 통합커뮤니케이션(UC) 도입, 검색시스템 개편, 기업 블로그 및 소셜 네트워킹 도입 등 순차적으로 웹 2.0 기술을 적용해 나갔다.

모토로라의 ‘인트라넷 2.0’ 플랫폼은 소셜 컴퓨팅과 웹 2.0 기술을 이용해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모토로라는 IT부서와 마케팅 및 커뮤니케이션부서, 엔지니어링 부서가 공고한 협력체계를 갖춘 후 인트라넷 2.0 플랫폼을 구축했다. 새로운 업무방식을 창출하고, 직원들에게 유용하면서도 유용한 도구를 제공하기 위해 웹 2.0 기술을 대거 접목하기로 한 것이다.

모토로라는 인트라넷 2.0 도입을 위해 △신제품혁신그룹이 사용할 수 있는 위키 △용어 및 약어 정리를 위한 위키피디아 방식의 협업 저작시스템 △테스트 계획이나 절차 상태 등을 여러 그룹이 추적할 수 있는 팀 협업 툴 △전사 블로그를 이용한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시스템 등의 기술 요소를 검토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인트라넷 2.0 플랫폼은 △백엔드 기술의 허브 역할을 하는 엔터프라이즈 포털 △사용자생성컨텐트(UGC)와 협업을 위한 리포지토리 역할을 하는 전사지식관리 플랫폼 △다른 사람의 관심사를 알 수 있는 소셜 태깅 및 소셜 북마킹 기술 △상향식 정보인덱스인 포크소노미(Folksonomy) △집단지성을 위한 통합 소셜 서치 엔진 등으로 이뤄져 있다.

현재 모토로라의 인트라넷 2.0 플랫폼은 임직원, 계약직, 핵심 파트너 등 총 7만 4000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이 인트라넷 2.0에는 무려 5만4000개 이상의 블로그, 4500개 항목의 위키, 50테라바이트가 넘는 정보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모토로라는 인트라넷 2.0 도입 후 무엇보다 IT부서와 연구개발 부서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제품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효율성이 개선되는 등 다양한 성과를 거뒀다.

 엔터프라이즈 2.0 베스트 프랙티스

지금까지 우리가 추진해온 IT 프로젝트는 기업의 일상적인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세스를 표준화함으로써 업무처리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배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자동화 후에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임직원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려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일상적으로 반복되지 않는 프로세스를 개선할 수 있어야 있어야 한다. 웹 2.0에서 얘기하는 소셜 북마킹, 위키, 소셜 네트워킹 등 소위 ‘소셜 프로세스’에 관한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좋은 기술이 곧 성공요인이 될 수는 없다. 웹 2.0 소프트웨어 기술이 이러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런 상호작용 자체를 자동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치 전화기에 비유할 수 있다. 누구나 전화기를 이용해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할 수 있지만 전화기가 이런 대화 과정을 자동화할 수는 없는 법이다. 웹 2.0이 딱 그런 꼴이다.

위키, 매시업, 소셜 태깅, 블로그 등을 도입하는 것이 엔터프라이즈 2.0을 실현하는 중요한 기술 기반인 것은 확실하지만, 이런 인프라를 갖춘다고 해서 엔터프라이즈 2.0이 실현되는 것인 아니다. 웹 2.0 기술은 네트워킹을 맺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프로세스의 처리 속도를 높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엔터프라이즈 2.0에는 왕도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다양한 성공사례와 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추진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먼저 웹 2.0에 대한 이해를 통해 전사적인 공감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를 10대들의 인터넷 문화로 이해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런 기술을 도입하면 무조건 사람들간의 상호작용이 배가될 것이라고 믿는 것도 문제다. 웹 2.0을 혁신의 새로운 트렌드인 사상과 기반이 되는 기술 측면에서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기술을 도입하기에 앞서 웹 2.0식 상호작용과 프로세스가 꼭 필요한 부서와 업무, 역할을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

세 번째 빨리 움직이고, 이후에 확산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웹 2.0을 통해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먼저 포착해 짧은 시간내에 성공사례를 만들라는 것이다. 기업블로그든, 부서단위의 위키든,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든 기업마다 핵심가치가 다를 수 있다.

네 번째 부서에서 전사로, 사내에서 사외로 확산하기 위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일종의 웹 2.0 로드맵이 필요하다.

다섯 번째 IT부서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IT부서에서 먼저 웹 2.0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그 타당성을 검증했던 P&G나 IT부서의 주도로 마케팅/커뮤니케이션부서와 엔지니어링부서가 혼연일체가 돼 인트라넷 2.0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모토로라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밖에 웹 2.0 기술과 관련해 제기되는 표준의 미비와 보안 이슈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제품 도입 전략도 고민거리다. 현재 위키 등 대부분의 웹 2.0 기술은 공개 소프트웨어에 기반하고 있다. 또 소셜 네트워킹 등 상당수 기능은 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제공하고 있다. 상용 스위트 제품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공개소프트웨어나 공개 서비스를 활용할 것인지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IT부서의 역할 변화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IT부서의 주도권이 약해진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로 인해 효율적인 관리체계를 구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매시업처럼 현업이 주도해 애플리케이션을 조합해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IT부서의 역할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미국의 금융회사인 톰슨파이낸셜은 비즈니스 매시업 기술을 도입하면서 웬만한 일상적인 애플리케이션 개발 및 활용은 현업에서 주도하고 있고, IT부서는 핵심 애플리케이션 관리에만 치중하는 식으로 변했다.

분명한 것은 임직원들의 상당수, 특히 젊은 층들은 일상적으로 웹 2.0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우리가 사용하는 정보시스템의 대부분은 이미 웹 플랫폼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SOA 등 새로운 IT 패러다임 역시 웹 플랫폼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웹 활용 패턴의 변화가 이미 일상사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데, 웹 2.0 혹은 엔터프라이즈 2.0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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