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투데이 강진규 기자] 미국 게임 소매점 게임스톱(Gamestop)의 주식을 둘러싼 사태가 전 세계 금융권을 뒤흔들고 있다. 이번 사태가 개인투자자와 헤지펀드의 대결, 공매도 문제 등으로 비화되면서 국내에 미칠 파장도 주목된다. 국내 공매도 금지는 물론 공매도 규제 강화와 폐지 등에 대한 논의가 불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31일 금융권과 외신들에 따르면 이달 들어 특히 1주일 간 게임스톱의 주식 가격이 요동쳤다. 뉴욕거래소에 따르면 게임스톱 주식가격은 올해 1월 4일 17.25달러(종가기준)으로 출발해 13일 31.40달러로 증가했다. 다시 1월 21일 43.03달러, 22일 65.01달러를 기록했다. 26일에는 전날 종가대비 92.71% 증가한 147.98달러 그리고 다시 27일에는 134.84% 급등한 347.51달러를 나타냈다. 28일에는 44.29%가 줄어든 193.60달러, 29일에는 67.87%가 급등한 325.0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말 13억달러(약 1조5000억원) 수준이었던 게임스톱의 시가총액은 200억달러(약 22조3000억원) 이상으로 급증했다.
게임스톱은 1984년 미국에서 설립된 게임 전문 소매 기업이다. PC게임, 비디오 게임 등을 주로 판매한다. 그렇다면 게임스톱의 사업 전망이 좋기 때문에 주식가격이 폭등한 것일까?
상황은 반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게임에 대한 온라인 구매가 늘면서 소매점인 게임스톱의 사업 전망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를 노린 헤지펀드들의 공매도가 진행되면서 이번 사태가 촉발됐다.
멜빈 캐피털, 시트론 리서치 등 헤지펀드들은 주가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고 공매도에 나섰다. 시트론 리서치는 공개적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공개하며 주가하락과 다른 투자사들의 공매도 참여를 유도했다. 39~40달러 선에서 거래되던 게임스톱 주식이 20달러 선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시트론 리서치는 트위터 등을 통해 게임스톱이 실패한 소매업체로 “지금 주식을 사는 사람은 포커게임의 멍청이”라고 조롱했다.
공매도는 말 그대로 ‘없는 것을 판다’라는 의미로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주문을 내는 것이다. 현재보다 미래에 주식 가격이 하락하면 공매도를 한 곳은 차익을 수익으로 가져간다. 반면 미래의 주식 가격이 상승하면 손해를 보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공매도를 투자기법, 상품으로 보고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대규모 자본이 주가하락을 유도할 수 있다고 공매도를 비난하고 있다.
시트론 리서치 등이 공공연하게 공매도를 한다고 밝히면서 미국 개인투자자들 일명 개미들이 분노했다.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 주식 게시판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를 통해 약 400만명의 개인투자자들이 헤지펀드와 전쟁을 선언했다. 그리고 게임스톱 주식을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일론 머스크 태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응원에 나섰다. 머스크 CEO는 26일 자신의 트위터에 '게임스통크(Gamestonk)’라는 글을 올리며 개인투자자들을 응원했다. 또 그는 28일 “집이 없으면 팔 수 없다. 차가 없어도 팔 수 없다. 주식은 없어도 팔 수 있다. 공매도는 사기다"라고 지적했다.
공매도를 주도한 헤지펀드들은 개인투자자들의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21일 43.03달러였던 게임스톱 주식가격이 300달러를 넘어서면서 파장이 커졌다.
이번 사태로 주식시장도 출렁였다. 29일(현지시간) 뉴욕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620.74포인트(2.03%) 떨어진 2만9982.62에 거래를 마쳤다. 다우지수가 3만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12월14일 이후 처음이다. 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73.14포인트(1.93%) 내린 3714.24에, 나스닥 지수는 266.46포인트(2.00%) 내린 1만3070.69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뉴욕증시 3대 지수가 한 주간 3%가 넘는 하락률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는 게임스톱 등 일부 주식 과열에 대한 우려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은 이번 공매도의 파장도 우려하고 있다. 공매도의 대규모 손해가 금융투자사 파산이나 투자자 손실,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주식거래앱 로빈후드 문제까지 불거졌다. 로빈후드는 미국의 주식거래앱으로 젊은 개인투자자들이 주로 이용했다. 이름 그대로 대형 금융사가 아니라 개인투자자들의 입장에서 주식 거래를 돕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번 게임스톱 사태와 관련해 로빈후드가 게임스톱 주식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로빈후드는 주식의 비정상적인 급등을 이유로 꼽았지만 미국 금융당국이 아니라 로빈후드 업체의 자체적인 판단에서 이뤄진 조치였다. 로빈후드의 주주 중 시타델 헤지펀드가 있고 두 회사가 게임스톱 공매도에 관여한 멜빈 캐피털과 관련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공매도 세력과 그 수익을 위해 로빈후드 앱이 개인투자자의 게임스톱 주식 구매를 막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2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금융산업규제국(FINRA)을 비롯한 유관 기관들과 함께 협력해 규제 대상 기업들이 개인투자자를 보호하도록 하고 이들의 잠재적인 위법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이 성명이 로빈후드 등의 게임스톱 주식 거래 제한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게임스톱 공매도 사태에 대한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미국 뉴욕검찰은 로빈후드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일부 헤지펀드는 항복 선언을 했다. 29일(현지시간) 이번 공매도를 주도했던 시트론 리서치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 “공매도 연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공매도 전쟁으로 헤지펀드들은 약 200억 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 헤지펀드들이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임스톱 사건은 공매도를 둘러싼 헤지펀드와 개인투자자들의 대결이었다는 점 그리고 현재까지 개인투자들이 승리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동안 헤지펀드와 대형 금융회사, 컨설팅 업체들은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헤지펀드, 공매도 등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일부 외신들은 2007년 서프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대형 금융회사, 투기자본의 부도덕성을 봤던 개인투자자들의 분노가 이번 사태에 영향을 줬다고 해석한다. 게임스톱 사태와 유사한 사건이 더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에 미국 금융당국과 의회는 제도 보완, 공매도 규제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공매도 재개 논의에 불똥...국내 개인투자자 단체 행동, 반발 예상
게임스톱 사건이 국내에도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에서도 공매도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3월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주식시장 안정을 위해 6개월 간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했다. 이어 다시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추가로 연장 조치했다.
그리고 올해 1월 11일 금융위는 기자들에게 보낸 공지 문자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한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는 3월 15일 종료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금융위가 공매도 재개 방침을 밝힌 후 주식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불거졌다. 또 더불어민주당의 양향자, 김병욱, 송영길, 박영진 의원 등이 공매도 재개를 비판하고 나섰다. 4월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도 1월 19일 공매도 금지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당의 공매도 금지 연장 주장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공매도 재개 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을 바꾼 후 2월 중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공매도를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4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여론에 민감한 여당은 금지 연장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로써는 3~6개월 한시적으로 공매도 금지를 연장하고 제도를 개선한 후 재개하는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연장 이후 과연 공매도를 재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안드레아스 바우어 국제통화기금(IMF) 한국 미션단 단장 겸 아시아태평양 부국장은 지난 28일 화상 브리핑을 통해 “공매도는 주요 금융시장의 일반적인 관행이고 시장참여자의 가격발굴 활동을 지원한다”며 “한국 시장은 코로나19 이후 시장 안정화가 진행되고 있어 공매도 재개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IMF의 이런 지적에 공매도 재개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일부 금융기관, 전문가들도 공매도 재개 필요성을 이야기했고 정치권에서도 제도 보완 후 재개를 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그런데 게임스톱 사태라는 변수가 생겼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공매도를 완전 금지하자는 주장에 동의한 사람이 20만명을 넘었다. 또 게임스톱 사례를 본 개인투자자들이 한국의 개미들도 단결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게임스톱 사태에 참여한 국내 개인투자자들도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 29일 기준 예탁원을 통한 게임스톱 순매도 결제 금액은 5396만달러(약 603억원)로 집계됐다. 국내 투자자들은 이 종목을 4286만달러 매수 결제하고 9682만달러 매도 결제해 전체 결제 금액이 1억3968만달러에 달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게임스톱 사태와 관련해 주식을 거래한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은 게임스톱 사태에서 개미들이 승리한 것에 고무돼 있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한시적 공매도 금지 연장을 발표한 경우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크게 반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스톱 사태처럼 단체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3~6개월 후 공매도가 재개됐을 때 미국 개인투자자들처럼 대항할 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공매도 금지의 한시적 연장, 재개를 놓고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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