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여년간 IT업계에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 대해 찬성과 반대 입장이 공존했다. 필자도 '삐딱하게 바라본 4차 산업혁명'(2019 출간)에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글로벌 업체들의 고도의 전략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성능이나 기능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초기 도입비용이 공짜라는 무기는 시장을 현혹하고 저절로 손이 가게 만든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플랫폼 비즈니스가 대세를 이루는 지금,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존재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세계 어느 누구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오픈소스로 등록하고 기라성 같은 개발자들과 사용자들로부터 검증을 받는다. 동시에 시작부터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기여를 할 수도 있다.

김동철 티맥스소프트 대표
김동철 유비케어 사외 이사

돌이 가득 찬 그릇이 있다고 하자. 더 이상 돌을 넣을 수는 없지만 물을 넣으면 틈 사이로 빼곡히 채워진다. 이제 거꾸로 돌과 물을 빼 보자. 손으로 한다면 돌들은 쉽게 뺄 수 있지만 물은 따라 버리기 전엔 빼기 어렵다. 

기존 소프트웨어들은 한번 사서 쓰면 어지간해서는 도망갈 수 없다고 하는 소위 밴더 종속성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들 소프트웨어는 돌과 같아서 시장에서 쉽게 빠질 수 있다.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로 바뀔 수 있다. IT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시스템 소프트웨어와 미들웨어만 놓고 보면 글로벌 시장은 이미 오픈소프트웨어가 점령하고 있다.

지난 세기만해도 IBM, HP, 썬 등이 앞다투어 유닉스 기기들을 만들어서 시장을 지배했다. AIX, HP-UX, 솔라리스 각자 자기들만의 운영체계를 만들었고, 이들은 서로 호환이 되지 않았다. 오라클 같이 범용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들은 모든 종류의 운영체계에서 작동이 되도록 장비 회사들과 협력하는 것이 중요했다. DB2같은 자사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가 있는 IBM의 경우 오라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시장 판세는 초기에는 DB2, 오라클, 인포믹스, 사이베이스, MS-SQL 등이 서로 경쟁하다가 현재는 오라클과 마리아DB, 몽고DB같은 오픈소스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양강구도로 재편됐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약진에 기여하는 것은 벤더 종속성에 따른 무리한 유지보수 비용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를 포함해서 모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일정수준으로 책임지고 유지보수 서비스를 해준다는 업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존과 구글 같은 기업들은 오픈소스로 클라우드를 만들어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오래전부터 IT를 아웃소싱해 오던 대한항공도 모든 인프라를 아마존 클라우드로 이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IBM 웹 애플리케이션 서버인 웹스피어를 오픈소스인 레드햇 제이보스로 바꾸기도 했다. 

1991년 위대한 IT 재능기부자 리누스 토발즈 (Linus Torvalds)가 개인용 리눅스를 오픈 소스로 발표했을 때 기존 업체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 리눅스가 없다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병의 돌맹이처럼 독자적인 운영체계들이 하나 둘 씩 사라져도 리눅스는 클라우드 안에서 건재할 것이다. 이제 IT인프라 소프트웨어의 시장은 더 이상 매력이 없다. 소프트웨어는 산업의 노하우를 녹여내야만 경쟁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한 소프트웨어는 리눅스위에서 운영되며 클라우드 기반 SaaS기반 형태로 공급된다. 초기 오라클처럼 장비업체에게 자존심 상하며 굽신거리지 않아도 된다. 한국의 모든 가정에는 어느 틈에 리눅스가 여러 개씩 들어와 있다. TV옆 셋톱 박스에 어떠한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 있는지 한번 보시기 바란다.

물컵을 기울이지 않고 물을 꺼내는 방법은 물보다 밀도가 큰 액체를 넣으면 물은 모두 함께 밀려 올라온다. 지금까지의 소프트웨어는 기술의 발달에 따라 필요한 소프트웨어가 등장하고 기존의 시스템과 연계해서 작동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개수가 많을 뿐더러 관리하기도 어렵고, 장애 확률도 점차로 높아지고 있다. 물컵에 들어 있는 돌들처럼 틈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제조업체만이 유지보수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라면 제일 먼저 물컵에서 빼내지는 돌멩이 신세가 될 수 있다. 미래의 소프트웨어는 물보다 밀도가 큰 개념의 소프트웨어가 되어야 세대를 교체할 수 있을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보게 될 소프트웨어들은 인프라적인 부분은 업체별 종속성이 없는 큰 덩어리로 클라우드 업체들이 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기업이나 개인들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들은 세련된 사용자 화면을 제공하고 인공지능을 통신 인터페이스로 제공하고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로 위치하게 될 것이다. 이들 소프트웨어는 영역별 전문성을 더해 경쟁을 돌파하는 전략을 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다시 종속성이라는 문제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물컵 속의 돌과 물의 프로세스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세상은 열려 있는 전쟁터다. 개발중인 소프트웨어가 미래지향적인 무기를 장착하지 않는다면 태어나기도 전에 과거의 유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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