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투데이 강진규 기자] # 개인사업자였던 A씨는 사업상 이유로 법인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법인 계좌를 만들기 위해 은행 지점을 방문했다.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은행 직원은 왜 법인 계좌를 만들어야 하는지 캐물었다. 계좌 개설을 위해 필요하다며 사업체 운영에 관한 각종 서류도 요구했다.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하자 은행 직원은 마지못해 계좌를 개설해주면서도 당분간 계좌 이용 금액 등을 제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 후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한 B씨는 은행 계좌를 만들기 위해 지점을 방문했다. 은행 창구에서는 B씨에게 재직증명서와 근로소득원천징수 영수증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프리랜서라서 재직증명서를 뗄 수 없었던 B씨는 은행 직원에 자신의 사정을 설명해야 했다. 은행 거래를 새로 하려는 의도였는데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시중은행들이 법인, 개인 계좌 개설 절차를 강화하고 있다. 금융거래 이용목적 확인을 위한 각종 서류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신청 후 이용금액을 제한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코로나 사태로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대포통장 확산을 우려해 이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범죄를 예방하자는 차원이지만 그에 따른 불편이 소비자들에게 가증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계좌 개설방어’라는 신조어까지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 나무위키는 우체국 금융, NH농협은행, 전북은행, 한국씨티은행, SH수협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SC제일은행, 하나은행, IBK기업은행, KB국민은행, BNK부산은행 등의 계좌 개설방어 사례도 소개하고 있다.
나무위키에서는 한국씨티은행이 계좌 개설방어의 끝판왕이며 신한은행이 개설방어계의 신흥 강자로 소개돼 있다. 또 KB국민은행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이전부터 개설방어가 매우 심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NH농협은행은 개설방어가 '심각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우리은행의 경우는 원칙상 신분증만 있으면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고 설명하지만 실제 지점을 방문하면 계좌 개설을 거부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주장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한 대표는 “정부에서는 창업을 활성화하겠다는 하는데 은행 창구에서는 법인 계좌 개설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며 “은행에서 사업에 관한 사안을 물러보고 서류를 제출하라고 설명했다. 급기야 근처 다른 은행 지점을 설명하며 거기서는 법인 계좌 개설이 쉽다는 취지로 이야길 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은행 지점에 계좌 개설을 문의했는데 서류 제출은 물론 사무실 실사까지 요구했다. 결국 법인 계좌를 개설해주기는 했지만 일정 기간 동안 소액만 거래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 입장에서 은행이 정한 소액만 거래할 수가 있느냐”며 “창구 직원이 법인카드 발급도 꼭 해야 하느냐고 말해서 놀랐다. 법인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도 있느냐”고 반문했다.
개인 소비자들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다. 공무원, 대기업 직장인, 장기 근속자 등은 상대적으로 계좌 개설이 쉬운 반면 프리랜서, 아르바이트생, 대학생, 주부, 사회 초년생 등은 계좌개설이 어렸다고 한다. 이들은 재직증명서, 근로소득원천징수 서류, 4대 보험 서류 등을 제출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금융약자 차별" vs "범죄 예방 위해 어쩔 수 없다"
금융관련 커뮤니티 등에는 계좌 개설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들이 지속적으로 게재되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계좌를 개설하려고 했지만 대포통장 개설로 오해를 받아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은 물론 직장에 다니고 있음에도 이제 막 입사를 했다거나, 비정규직으로 4대 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이유로 계좌 개설이 거절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한 은행 이용 고객은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계좌 개설을 하면서 각종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까다롭게 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대포통장,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는 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취업준비생, 비정규직, 알바생의 입장에서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차별로 인식된다”고 지적했다.
물론 은행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에서 대포통장 등을 막기 위해 은행에 확인 의무를 강화하는 강력한 지침을 내렸다는 것이다. 또 실제로 대포통장, 사기 등을 위해 계좌를 개설하려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한 은행 지점장은 “현장에서 나쁜 의도로 계좌를 개설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결국 그 책임을 은행과 은행 지점, 직원들이 져야 한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실제로 법인 계좌를 개설하려고 온 사람이 있었는데 명함 주소로 찾아가보니 사무실도 회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후 직원들에서 법인 계좌를 개설할 때 진짜 사무실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 한 은행 직원은 “젊은 여성과 할머니가 창구에 왔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계좌를 만들어주기 위해 왔다고 하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며 “며느리라는 사람에게 다른 창구로 가서 서류 작업을 시키면서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사실 며느리가 아니라고 했다. 계좌 개설에 각종 서류가 필요하다고 시간을 끌면서 경찰에 신고했다. 이처럼 대포통장 개설이 지능화되고 있기 때문에 절차가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금융권은 앞으로 이런 문제가 더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2월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각종 금융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존 보이스피싱은 물론 코로나와 관련된 피싱, 사기도 늘고 있다. 올해 3월 11일, 4월 8일 금융감독원은 보이스피싱 소비자경보를 발령한 바 있다. 또 7월 6일에는 신종 대포통장 사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금감원이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금융권은 올해 하반기는 물론 내년까지 보이스피싱, 대포통장 등과 관련된 범죄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금융약자들은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 금융거래의 어려움이라는 2중고를 겪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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