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강진규 기자]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한국판 뉴딜 사업을 뒷받침할 금융 지원, 일명 '뉴딜금융'이 금융권의 새 화두로 부상했다. 주요 금융회사들이 수조~수십조원에 이르는 뉴딜금융 방안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비슷한 형태로 과거 정부에서 추진됐던 녹색금융과 기술금융이 엇갈린 길을 가고 있어 주목된다. 녹색금융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반면, 기술금융은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 뉴딜금융은 과연 어떤 전철을 밟게 될까.
31일 은행연합회의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2020년 5월 기준 기술신용대출 누적잔액은 235조원, 누적대출건수는 58만3679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강조하며 이를 지원하기 위한 기술금융을 금융권 화두로 제시했다. 기술금융은 기업들의 기술을 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금을 지원해 사업화, 제품화 등을 지원하는 개념이다.
금융위원회의 적극적인 정책에 따라 시중은행, 정책금융기관은 기술금융에 나섰다. 2014년 10월에는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주도로 은행별 기술금융 실적을 점검하는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기술금융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은행연합회가 운영 중인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기술금융은 조금씩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18년 5월 누적대출 147조원(34만1429건)이었던 기술금융은 2019년 5월 약 26% 성장한 185조원(43만3751건)으로 집계됐다. 이어 올해 5월까지 약 27% 성장한 235조원(58만3679건)을 기록한 것이다.
은행별로 보면 IBK기업은행이 2020년 5월 기준으로 지금까지 71조1735억원의 기술금융을 지원했다. 이어 KB국민은행이 35조8684억원, 우리은행이 31조4119억원, 신한은행이 31조2180억원, 하나은행이 27조1879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은행별 기술금융 지원 추이를 보면 과거처럼 급격히 대출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반면 녹색금융은 기술금융과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다. 2008년 8월 15일 경축사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비전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제시했으며 2009년 2월 대통령 직속에 녹색성장위원회가 출범했다.
이후 2009년 4월 전국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 국내 금융기관들은 녹색성장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과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을 지원하는 녹색금융협의회를 창립했다. 은행연합회가 협의회 회장사와 사무국 역할을 맡았다.
당시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KB국민은행,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은 너도나도 녹색금융상품을 선보였다. 그러나 2014년 이후로 녹색금융 관련 상품이 나오지 않고 있으며 출시됐던 상품들도 대부분 판매중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녹색금융협의회도 명목상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 수년 간 녹색금융협의회는 물론 녹색금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녹색금융은 금융권에서 해리포터의 ‘볼드모트’ 같은 금기어가 돼 버렸다.
금융권에서는 기술금융이 창조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기는 했지만 기술력이 있는 기업에 금융을 지원한다는 일반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고 본다. 창조경제가 아니더라도 기업의 기술력을 보고 금융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혁신성장 등과 기술금융이 연계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다.
반면 녹색금융은 녹색성장과 관련된 특정 분야에 국한된 특수성이 강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다보니 녹색성장과 관련된 정책이 사라지고 관련 기업이 위축되면서 녹색금융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처럼 뉴딜금융 지원 요청나선 금융당국
최근 금융권의 화두는 뉴딜금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4일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를 갖고 2025년까지 6년 동안 160조원를 투입해 약 19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 등으로 추진된다.
금융당국은 이명박 정부에서 녹색금융을, 박근혜 정부에서 기술금융을 강조했던 것처럼 뉴딜금융을 강조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7월 23일 5대 금융그룹 회장들과 비공개 조찬모임을 갖은 자리에서 한국판 뉴딜에서 금융권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후 금융회사들은 뉴딜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한국판 뉴딜 금융 프로젝트’에 착수해 10조원의 금융지원에 나선다고 밝혔다. KB금융그룹도 ‘그린 스마트 스쿨’, ‘국민안전 에스오시(SOC) 디지털화’ 등에 2025년까지 9조원을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우리금융그룹도 향후 5년간 디지털 뉴딜에 3조3000억원, 그린 뉴딜에 4조5000억원 등 총 10조원을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권은 50조원 이상이 뉴딜에 지원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녹색금융, 기술금융을 경험한 금융권의 뉴딜금융을 바라보는 속내는 복잡하다. 일각에서는 녹색금융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뉴딜 중 그린 뉴딜에 대한 우려다. 그나마 기술금융처럼 명맥을 유지한다면 다행이라는 반응도 감지된다. 금융권이 우려하는 최악의 경우는 2022년 5월 대선 후 금융정책이 바뀌고 정부가 또 새로운 금융에 지원하라고 요청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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