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현 KAIST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 교수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을 지나는 사람들에겐 하찮은 손전등 하나가 큰 힘을 발휘한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뒤덮인 대도시에서는 그 효용 가치가 없어 보이나, 방향을 알 수 없는 캄캄한 시골길에서의 가치란 목 타는 사람에게 오아시스와 같이 큰 법이다.

우리의 경영환경은 어두컴컴한 길을 어디인가로 걸어가야 하는 여행자의 운명과도 같다. 전혀 미래를 예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귀중한 자원을 투입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

한번은 에너지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한 매체와과의 인터뷰에서 국제유가의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경영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상황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환율, 원자재 가격, 기술혁신의 방향 등의 불확실성만 제거되면 기업활동도 할 만할 것이라는 경영자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그런 이야기에 한편 공감 하면서도 필자는 이런 말이 생각난다. ‘교수는 강의만 하지 않으며 참 좋은 직업인데...’

최고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미래의 불확실성 하에서 귀중한 자원투입의 결정이다.

그런데 불확실성이 기업경영의 최고 걸림돌이고 불확실성만 제거되면 경영자로서 참 할만하다고 하는 이야기는 급여는 최고경영자 수준으로 받으면서 일은 주어진 일만 하는 김대리의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최고경영자의 높은 급여는 그가 불확실성 하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한 대가이다. 최고경영자에게는 불확실성이 그의 진정한 친구이자 그가 존재해야 하는 확실한 이유이다.

BI, 기업 성과에 결정적 요소

이런 최고경영자에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과 같은 역할을 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BI(비즈니스 인텔리전스)다.

BI라 하면 통칭 기업의 활동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가공/정제하여 의미 있게 표현하고, 이를 최종적으로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업의 경험, 기술, 시스템 등을 의미한다.

즉 BI는 바람직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근거 혹은 혜안(Insight)을 도출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 처리, 분석, 해석을 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거나 이런 과정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데이터마이닝 기법, 에이전트 기반 시뮬레이션, 회기분석, 소셜 네트워킹 모델링과 같은 다양한 통계분석 혹은 시뮬레이션 기법들은 BI를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BI를 활용하는 예는 많이 있다. 메리어트(Marriott) 호텔은 자주 사용하는 우량고객을 다른 경쟁자에 빼앗길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 모형을 만들어 객실의 가격을 책정하는데 있어 매우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캐피탈 원(Capital One)과 같은 금융회사나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같은 보험회사는 개별 소비자 별 이익의 기여도를 계산해 신용카드의 발급, 보험료 산정 등에 BI를 활용한다.

델(Dell)이나 월마트(Wal-Mart), 아마존(Amazon) 등은 공급사슬관리를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화하고 재고나 물품부족을 최소화하고 있다.

심지어는 Oakland A, New England Patriot와 같은 미국의 스포츠 구단들도 선수기용에 통계적 기법을 활용하여 구단 운영에 큰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경영관리 분야에서는 여러 가지 성과관리 및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활용되는 BI의 효과가 쉽게 가시화된다.

반면 불확실성이 큰 전략적인 분야에서는 BI가 무슨 필요가 있냐고 그 필요성을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된다.

아무리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도,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결국 모든 의사결정은 최고경영자의 ’감’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그 경영성과는 또 운에 좌우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어두컴컴한 상황에서 어차피 안보이니 눈을 감고 아무 방향이나 열심히 가다 보면 원하는 목적지에 운 좋게 도착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불확실성이 높은 분야는 그 중요성(stake) 또한 크다.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조그만 손전등 같은 BI의 역할은 기업성과에 매우 결정적 요소가 된다.

 

의사 결정 과정의 모형화

불확실성이 큰 전략적 분야에서의 BI의 활용은 그 가치가 매우 크지만, 이를 활용하는 과정은 매우 비정형적이다. 바람직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문제에 대한 적확한 이해와 직관은 시스템에 자료를 입력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생성되지 않는다.

현실 문제를 우리가 분석할 수 있는 형태로 모형화하고 이로부터 문제에 대한 이해와 혜안을 찾아내는 비정형적인 과정에 대한 이해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림)은 경영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모형화와 BI의 관점을 보여준다. 현실세계의 문제는 ‘모델(Model)’이라는 작업을 통해 개념적 모형으로 바뀌고, 분석을 하기 위한 포멀(Formal) 모형으로 개발된다.

다시 포멀 모형에 대한 분석을 통해 모형에 대한 혜안이 도출되고, 이런 혜안은 다시 현실에서의 경영적 혜안으로 해석되어 최종적으로 실제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BI는 모형의 개발과 이에 대한 분석과 혜안 도출, 즉 ‘모형화된 세계’에서 주로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모형화된 세계에서의 분석과 혜안이 ‘현실세계’에서의 그것으로 적절히 해석되지 않게 되면 분석을 위한 분석이 되고 만다.

모형개발 및 분석 전문가와 현실문제를 가지고 있는 의사결정자 상호간의 상호 이해가 미흡하게 되면 이런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BI의 활용가치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실세계에서 모형화된 세계로의 변환, 다시 모형화된 세계에서 현실세계로의 의미 있는 해석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한 과정에서 BI의 가치가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의사결정에 진가 발휘

BI는 불확실성 하에서의 의사결정 프로세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는 DW, ERP, CRM, KM, 성능 모니터링 시스템 등 BI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주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너무 기술, 소프트웨어, 시스템 패키지의 형태가 강조된 BI 인프라를 강조하면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 지금은 오히려 의사결정에 필요한 문제에 대한 적확한 이해와 이로부터 도출되는 혜안을 도출하는데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앞으로의 한국 IT 업계의 새로운 활력은 이런 BI 인프라를 토대로 최고경영자의 절대적인 이해와 지원 하에 주요 경영의사결정 문제에 BI가 활용되는 모습이어야 한다.

이런 노력은 또 다시 BI 인프라 구축의 수요를 창출하는 건전한 사이클이 형성되는 시발점이다. BI를 잘 한다는 것은 의사결정의 질이 높다는 것이고 선진화된 경영의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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