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IT칼럼니스트

이명박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이 윤곽을 드러냈다. 통일부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 여성가족부 등 5개의 부처를 폐지하는 것이 이번 개편안의 골자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정부조직 비대화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이 많기에 이번 개편안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규모를 얼마나 줄이는가’가 아니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살렸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이명박정부가 향후 5년 대한민국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분명히 드러내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문을 닫는 부처들의 공통점은?

 

이번 개편으로 사라지는 부처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한국의 미래에 투자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점이 그것이다. 10년, 20년 또는 1백년 뒤 한국의 모습이 어떠할 것인지 고민하고 밑그림을 그리며 변화를 현실화시킬 수단을 만들어내는 조직들인 것이다.

통일부는 분단 상태를 벗어나 미래의 민족 화해와 통일로 나아가는 준비를 해온 조직이다.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퍼주기’ 시비가 끊이지 않았지만, 조금만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대북 유화정책은 정치 경제 외교 어느 측면에서도 투자 대비 효과가 엄청나게 큰 사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도 해외자본 유치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국제자본을 끌어들이는 대전제는 ‘투자의 안정성’이다. 이런 점에서도 남북 긴장완화의 가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해외 IT기업들은 한국 시장 판매가격을 미국 시장에 비해 높게 책정하는 이유로 ‘군사 긴장도가 높은 한국의 비즈니스가 갖는 위험 부담’을 들곤 했다.

과학기술부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당선자는 “상품화로 연결되지 않는 원천기술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지만 가장 높은 미래가치를 갖는 기술은 현재 상태에서 전혀 상품화의 가능성을 읽을 수 없는 기술들이다. 건설사 CEO 출신이 한눈에 간파하는 기술이라면 별로 대단할 것이 없다. 그런 기술로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창의적인 인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도 다른 사람들이 전혀 생각해내지 못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완전히 상품성을 무시하는 것도 비현실적이지만 대한민국의 경제나 예산 규모에서 과학기술부 같은 부처의 존재조차 용납할 수 없다면 정말 한국의 미래는 없다.

정보통신부 얘기를 하려니 가슴이 아프다. 여느 부처나 마찬가지로 정보통신부도 이런저런 정책적인 오류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자. 정보통신부는 대한민국 정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어낸 부처이다. 정부 부처 가운데 ‘찬 밥’ 1,2위를 다투었던 체신부가 모태였지만, IMF 극복의 동력이 여기에서 나왔다. 반면 정부부처 ‘더운 밥’ 1위였던 재경부는 IMF를 불러온 원흉이라는 평가도 받지 않았던가.

 

정통부, 정부 역사상 최고의 성공사례

 

생명과학 등 새로운 첨단 분야들이 떠오르고 있지만, 이들 분야 역시 정보화를 기반으로, IT를 무기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정보통신부 없는 한국의 미래는 상상하기 어렵다.

해양수산부를 보자. 한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이지만 역대 왕조의 국가 운영기조는 철저하게 내륙 지향적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명박 당선자의 대운하 역시 철저하게 내륙으로 파고들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미래의 가능성, 미래의 국가 영토는 해양에서 찾아야 한다.

현재 세계의 판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결에서 해양세력이 궁극적으로 승리했다는 냉정한 역사적 결론을 보여준다. 이명박 당선자가 따르고 싶어하는 미국의 경우 해군성 조직이 육군성이나 공군성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는 사실을 이명박정부 관계자들이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18대 총선을 염두에 두고 정부조직 개편안을 손봤다면 여성가족부 폐지는 가장 성공작이 될 것 같다. 그만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여성부에 대한 반감이 극심하다.

이름에 꼬박꼬박 성 두 개 붙여쓰는 ‘패션 좌파’들도 그렇고, 공무원 채용시 군 입대자 가산점 제도 폐지 등 이슈도 이런 적대감에 불을 질렀다. 여성부가 특정 여대 출신 페미니스트들의 입신양명 수단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꼭 이런 비난이 아니더라도 여성부가 정책 수립과 시행에서 이런저런 기술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진전 과정에서 여성 인력의 개발과 활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이다. 몇 가지 실수나 정서적인 반감을 명분으로 여성부를 폐지한다는 조치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역할은 지금보다 10배, 100배 더 확대되어야 한다. 이것은 어설픈 페미니스트들의 명분이 아니다. 21세기 무한경쟁 국제질서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조건의 하나이다. 정확한 이유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은 좀더 드센 편이다. 이런 가능성을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선택이다.

통일부나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 여성가족부의 간판을 내린다고 해서 해당 업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부처와 통합해서 더 효율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일견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것은 말장난일 뿐이다.

간판이 중요하지 않고, 통합해서 더 효율적일 수 있다면 외교부 간판을 내리고 그 조직을 통일부로 흡수시키는 것은 어떤가? 마찬가지라면서 왜 그런 선택은 하지 않는가?

 

‘간판’은 그 정부의 정책적 가치관 증거

 

간판과 명분은 어떤 정부의 정책적 가치관을 보여준다. 이명박정부에서는 통일부가 아닌 외교부, 정보통신부가 아닌 산업자원부의 가치관이 정책을 주도해간다는 선언이다. 통일부나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와 해양수산부, 여성가족부에서 전문성을 축적해온 공무원들이 앞으로 계속 그런 전문성을 발달시키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들 부처 공무원의 대부분이 과거와 동떨어질 업무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당선자가 보기에는 외교부와 통일부의 업무 영역이 중복되고,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의 업무 역시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이들 부처는 완전히 상반되는 가치관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외교부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국가들과의 정상적인 외교를 통해 국익을 극대화시키는 정책 정체성을 갖고 있다. 엄격히 말해 외교부의 전통적인 정책 가치에 비춰보면 북한은 대화의 파트너가 아니라 적극적인 타도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이런 점에서 외교부에 흡수된 통일부가 원래의 정책적 가치를 고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럴 경우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보통신부도 마찬가지다. 산업자원부가 눈에 보이는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부처인 반면 정보통신부는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 기반의 정책 가치를 추구한다. 이 두 부처를 기계적으로 결합할 경우 한 가지 가치는 희생되기 쉽다. 이번 개편안이나 이명박 당선자의 언행으로 봤을 때 정보통신부의 정책 가치가 희생될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미래로 갈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의 가치가 더 커진다.

정책 결정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한 두 가지 원칙으로 모든 사안, 모든 부처, 모든 영역의 과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맹신이다. 그런 절대선, 지고지선의 이론이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이 실물 경제에서 깨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걸 인정하고,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겸허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걸 모르고 날뛰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결과가 된다.

국가 정책은 신중하고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의 CEO는 중동 사막에서 저가 입찰로 손해를 보고 결국 기업이 속병 들어 무너져도 그냥 자기 혼자 그만두면 된다. 기업의 임직원은 그렇게 제한적인 책임만 진다. 하지만 국가의 명운을 짊어지는 대통령은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한다.

 

리스크 커도 미래투자는 필수다

 

미래 투자는 원래 리스크가 크다. 당장 효과는 안 나고, 돈만 들어간다. 별 성과가 없으면 욕만 먹는다. 하지만, 이런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게 미래 투자다.

미래 투자를 안 하고 당장 잘 되는 것만 하자는 것은 마치 곶감 빼먹듯이, 있는 것 싹 털어먹고 나중에 튀면 그만이라는 보따리장사 마인드다. 우선은 인기 좋다. 공짜라면 소도 잡아먹는다지 않는가? 소 잡아서 흥청망청 마을 잔치 벌이면 사람들 다 좋아하고 칭찬할지 모른다. 하지만 당장 내년 봄에 농사는 어떻게 짓나?

이명박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보면서 이런 우려가 커진다. 제발, 이런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기를 바란다. 최악의 리더는 무능한 리더가 아니라, 조직의 미래를 끌어다가 현재에 흥청망청 소비하는 리더이다. 최소한 이런 리더가 되는 것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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