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4일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이 발부될 경우 이 부회장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요청이 사실상 무의미해질 전망이다. 기각되면 자신의 혐의와 관련해 "지시나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이 부회장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

검찰, 이재용 분식회계ㆍ시세조종 혐의 구속영장 청구
검찰, 이재용 분식회계ㆍ시세조종 혐의 구속영장 청구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이날 오전 이 부회장과 최지성(69)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64)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를 법원에 접수했다. 이 부회장 등에게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김 전 사장은 위증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변경에 이르는 과정이 모두 이 부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됐으며 이 과정에 분식회계와 주가조작 등 불법 행위가 동원됐다고 판단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부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검찰은 삼성 측이 2015년 5월 이사회의 합병 결의 이후 주식매수청구권(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자신의 주식을 회사에 팔 수 있는 권리) 행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가를 동시에 부양하려 한 것으로 본다. 실제로 합병반대 의사 표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인 2015년 7∼8월을 전후로 호재성 정보가 집중됐다.

삼성물산은 2015년 상반기 신규주택을 300여 가구만 공급했으나 같은해 7월 주주총회에서 합병이 결의된 직후 서울에 1만994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2조원의 규모인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기초공사 수주 사실도 공개했다. 제일모직 손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같은해 6월30일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삼성 측은 나스닥 대신 삼성바이오로직스 국내 상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검찰은 특히 제일모직이 주총 이후 자사주를 대량 매입해 삼성물산을 포함한 두 회사 주가를 동시에 관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제일모직은 2015년 7월23일 자사 보통주 250만주를 4400억원에 장내 매수했다고 공시했다.

검찰 조사 마친 이재용 부회장
검찰 조사 마친 이재용 부회장

검찰은 이번 수사의 단초가 된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의 회계사기 의혹 역시 고의적 '분식회계'가 맞다고 보고 주식회사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도 영장에 적었다.

삼성바이오는 당초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미국 합작사 바이오젠의 콜옵션(주식을 미리 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을 회계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가 2015년 합병 이후 1조8000억원의 부채로 잡으면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해 4조5000억원의 장부상 이익을 얻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콜옵션을 반영하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데다 합병 비율의 적절성 문제가 다시 제기될까 우려해 회계처리 기준을 부당하게 변경했다고 의심한다.

김종중 전 사장에게는 위증 혐의도 적용했다. 김 전 사장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제일모직의 제안으로 추진됐고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와 무관하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검찰이 의혹의 정점이자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이 부회장의 신병 확보에 나서면서 영장 발부 여부가 1년 7개월간 계속된 이번 수사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수사팀은 각각 150쪽 안팎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범죄 혐의를 적고 구속이 필요한 사유를 각각 수백 쪽의 의견서에 별도로 담았다. 법원에 함께 제출한 수사기록은 400권 20만쪽 분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영장 청구는 이복현 부장검사 명의로 했다.

수사팀은 지난 2일 이 부회장과 김 전 사장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요청 이후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굳히고 내부 결재를 거쳐 전날 윤석열 검찰총장의 재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청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내부 이견은 없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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