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갑 시스코프 대표이사

한 아이가 잔디밭 앞에서 울고 있었다. 지나가던 신사가 그 이유를 물으니까 울고 있던 어린아이는 자기 모자가 바람에 날려서 잔디밭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잔디밭에는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안타까워 발만 동동 굴리며 울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사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뻗어서 모자를 건져 주었다는 영국 이야기가 동화처럼 뇌리에 잊혀지지 않고 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어렸을 때부터 몸에 베게 하자는 것이다. ‘선진화는 기초질서 지키기부터’ 라는 캠페인을 벌리고 있는 요즈음, 아이들은 물론 어른에 이르기까지 꼭 상기 시켜야 할 이야기이다.

 법에는 ‘하라는 법’과 ‘하지 말라는 법’으로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기본 정신은 자기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남을 배려하라는 취지이다. 쉽게 말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이고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무엇 무엇을 하라든지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고 규제하여 공공질서 유지나 사회 안전을 위하고 자신과 타인의 권익을 보호해 주자는 것이 법이다.

이런 취지로 법이 만들어 지면, 만들어진 법을 잘 지키는가 하고 감시하는 조직이 필요하고 이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발생된다. 그리고 이 비용은 법의 보호를 받는 국민 개인이나 기업의 부담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 규제를 한가지 더 만들면 이를 감시 통제하기 위한 조직은 물론 이를 준수하기 위한 인력도 더 늘어나게 됨과 동시에 발생되는 부담은 개인이나 기업의 몫이 되는 흐름인데, 2008년 1월 현재 규제 건수는 총 5167건이라 하니 이렇게 많은 규제를 당(?)하면서도 발생되는 비용을 부담해야 되는 기업들의 고통을 행정 담당자들은 얼마나 이해를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이를 역으로 돌려보면 단순한 계산이 나온다. 즉, 규제를 없애면 이를 감시하는 조직은 물론 이를 준수하는데 추가로 필요했던 인력이 줄어들게 되고 행정 당국이나 기업에서 부담하는 비용도 그만큼 절약된다는 단순한 논리이다.

 물론 하루 아침에 규제를 전부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가 성숙해 감에 따라 규제도 옷을 가볍게 해야 한다. 허용 한도를 감안하지 않은 과도한 규제나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대처하고 있지 못한 10여년 전(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1년 전의 경우까지도 고려해봐야 한다)의 전근대적인 황당한 규제들을 시대의 요구에 부응 되게 과감히 풀어야 한다.

‘하라는 법’은 규제가 꼭 필요한 경우로 최대한 축소하고, ‘하지 말라는 법’은 규제를 할 필요가 있는 최소한의 경우로 한정해 나간다는 정신으로 규제 대상을 정리해 나가면 어렵지 않게 규제 타파가 아닌 규제 혁파를 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규제를 할 때나 규제를 풀 때에 전문성을 발휘한다면 ‘하라는 법’이나 ‘하지 말라는 법’ 모두 최소한의 조건에만 제약하면 될 것이다. 무엇을 하라고 해야 할지 또는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해야 할지 이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나열식 규제가 되고 그것도 불안하여 제일 끝에는 ‘기타 이와 관계 되는 것 등’ 과 같이 애매모호한 규정이 삽입되어 이를 해석하는데 이해 당사자간의 의견이 상충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 소모는 물론 생산성 없는 불편만 가중되는 것이다.

 어떤 집에 꼭두새벽에 형사들이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그 형사들은 분실 신고된 바이올린을 수색하러 왔노라고 하면서 압수수색 영장을 집 주인에게 제시했고, 분실 신고한 학생과 보호자가 형사들을 뒤 따라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 주인은 공부방에 있던 자기 아이의 바이올린을 보여 주면서 이것은 유학간 우리 아이가 사용하던 것이라고 설명하자 형사를 따라 온 학생이 자기가 분실한 것과는 다르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그 학생의 보호자가 네 것이 아닌 것이 확실하냐고 재삼 확인도 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이 집 주인이 유학 간 자기 집 아이가 사용하던 바이올린을 팔아야겠다고 한 말이 꼬리를 문 소문으로 번져나가다가 장물 바이올린이 어느 집에 있다는 식의 소문을 형사들이 듣고 그 집을 새벽 같이 처 들어 온 것이다. 장물이 아님이 이미 판정 되었는데도 형사들은 이 방 저 방 다니며 그 집에 있던 좀 작은 사이즈의 바이올린은 물론 다른 악기들을 압수해야 하겠다고 하였다. 이 때 집 주인은 형사들에게 찾고 있던 물건이 아닌 것이 확인 되었는데 왠 압수냐 하고 물었고 또 다른 악기들은 왜 압수하느냐고 반문하였다.

형사들은 압수수색 영장을 집 주인에게 다시 보여 주면서 여기 보면 압수수색 목록에 ‘바이올린 등’ 이라고 되어 있으니까 바이올린이 아닌 다른 악기는 ‘등’에 해당 된다는 억지 논리를 주장하였다고 한다. 물론 집 주인은 압수당한 악기들과 함께 경찰서로 가서 수사 완료 서류 작성을 위해 하루 종일 경찰서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규제 혁파는 위 사례에서 압수수색 목록에다 압수하고자 하는 품목만 적자는 것이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혐의가 없는 것이 확인 되었으면 그냥 경찰서로 돌아가서 경과보고서만 작성하면 될 것이다. 집 주인을 경찰서까지 대동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당연히 같이 가야겠지만 현장 확인만으로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과감하게 위임되어야 하는 것도 규제 혁파이다.

다시 잔디밭 이야기를 하면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어느 도시에 잘 관리되어 많은 시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아름다운 잔디 밭이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흠 이라면 이 잔디 밭의 한 가운데가 사람들의 무수한 발자국에 짓밟혀 있는 것이다. 들어가지 말라는 팻말을 아무리 크게 써 붙여 놓아도 시민들은 막 무가로 밟고 다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어떤 대책을 세워야 잔디밭을 잘 유지하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잔디밭에 사람들이 아예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망을 친다거나 펜스를 높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 할 수 있겠다. 만약 우리의 안목이 못 들어가게 한다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그 잔디밭에 생기는 사람들의 발자국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철망으로 된 출입금지 지역은 철망을 훼손하고서라도 들어가고 싶고, 높아진 담장은 뛰어 넘어 가고 싶은 사람 심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고의 틀을 180도 틀어서 오히려 그 자리에 사람들이 떳떳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면 전체 잔디밭은 더 아름답게 유지 관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규제 혁파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하면 더 효과적이 될 뿐 아니라 효율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본다.

 <필자소개>

여인갑 박사

 경복고를 졸업(1964)한 후, 서울대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한 공학사(1968)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광운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1992)를 취득했다. 지난 1970년 한국IBM에 입사해 IT업계와 인연을 맺고 삼성전관 컴퓨터사업부 이사, 한국HP 전무, 지멘스정보시스템 대표이사를 거쳐 2000년부터 시스코프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통상산업부 산업표준심의회 위원(1981-2006), 한국정보통신기술사협회 회장(1998), 한국정보처리전문가협회 회장(2001)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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