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강남구 인터넷기업협회 앤플레이스에서 열린 ‘n번방 방지법 : 재발방지 가능한가?’ 긴급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표하고 있다.

[디지털투데이 정유림 기자]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업계 전문가들은 국회 발의안들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내놨다.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사업자들에 과도하게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정작 관련 사건이 주로 벌어진 해외 사업자에게는 처벌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사업자에 책임을 물리기보다 사법기관의 사법적 집행력을 강화하는 등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8일 서울 강남구 인터넷기업협회 앤플레이스에서 열린 ‘n번방 방지법 : 재발방지 가능한가?’ 긴급토론회에서 최민식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관련 발의안에 대해 “해외 사업자인 텔레그램 등은 수범 대상에서 제외되고 오히려 관리 가능한 국내 사업자에게만 적용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디지털 성착취 범죄 방지와 관련된 발의안은 16건이다. 이중 정보통신망법(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성폭력범죄처벌법(송희경 미래통합당 의원), 정보통신망법(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 3건은 부가통신사업자가 성 범죄물 또는 불법 촬영물을 발견할 시 삭제, 전송 방지, 중단 등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발의안들은 기술적 조치 의무를 기존 웹하드 사업자에서 부가통신사업자로 확대했다. 성 범죄물을 신고하거나 발견했을 때 삭제하던 조치를 취하던 데서 나아가 파일 업로드·전송 시점에서 이를 걸러내고 삭제하는 사전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를 위반할 시 실제 손해액 몇 배에 이르는 과징금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송희경 의원 발의안을 예로 들면 이를 어길 시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도록 했다. 

업계에선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 해외에 소재한 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들에서 관련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법이 의도한 효과를 볼 수 있는지 미지수라고 내다봤다. 서버 소재지, 담당자 연락처 등을 모르는 상태에서 기술적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데 따른 처벌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사업자가 실제 대화 내용을 확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를 적용하긴 어렵다”며 "전면적으로 기술적 조치를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인 통신 비밀을 침해하는 사적 검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론에서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강도 높은 처벌에 대해 많은 국민이 반기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사업자에 부과하려는 의무 수준이 적정한지, 실제 수행이 가능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네이버, 카카오 등 대형 기업에서는 자율적으로 조치를 취하고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중소 사업자는 해외로 이전하게 돼 국내 산업만 타격을 받는 양상을 보일 것"이라며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 비협조적인 해외 플랫폼에 대한 국민적 거부, 불이용 캠페인을 통해 사법 협조를 압박하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고 제안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사업자에게 규제가 강화되면 범죄자들은 또 다시 해외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해 같은 목적을 달성하게 할 것“이라며 ”국내 플랫폼에 역차별을 강화해 이용자들이 해외 플랫폼으로 빠져 나가는 현상만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대한 용어와 정의를 명확히 하고 처벌 기준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여러 법안에 산재된 입법 중복을 해소해 정확한 법안을 마련할 것을 강조했다.

한편, 여야는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n번방 방지법’을 29일 저녁 열리는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다. 이에 정부 제출안을 대안으로 백혜련·박광온·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송희경 미래통합당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을 묶어 병합 심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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