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민병권 기자] 2019년 9월 다임러그룹 디자인 총괄 고든 바그너를 비롯한 벤츠 디자인 관계자들은 프랑스 니스에 신설한 어드밴스드 디자인 센터에서 새로운 콘셉트카를 최초 공개했다.

니스의 어드밴스드 디자인 센터에서 비전 메르세데스 심플렉스 콘셉트카를 공개하는 고든 바그너(가운데) 등 벤츠 디자인 관계자들 (사진=민병권기자)
니스의 어드밴스드 디자인 센터에서 비전 메르세데스 심플렉스 콘셉트카를 공개하는 고든 바그너(가운데) 등 벤츠 디자인 관계자들 (사진=민병권기자)

보통 콘셉트카에서 기대되는 ‘미래 자동차’ 이미지보다 차라리 디자인 조형물처럼 보였던 그것의 이름은 비전 메르세데스 심플렉스(Vision Mercedes Simplex). 1900년대 초반 벤츠 역사의 한장을 장식했던 ‘메르세데스-심플렉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콘셉트카다.

비슷한 시기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세계적 모터쇼(IAA 2019)를 놔두고 굳이 니스의 비밀스런 디자인 시설에서 콘셉트카를 공개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고든 바그너는 “우리 브랜드의 탄생에 일조한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라고 힌트를 줬다. 니스는 메르세데스라는 이름, 그리고 벤츠 자동차 역사의 ‘성지’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주로 ‘벤츠’라고 줄여 부르는 자동차회사(브랜드) 원래 이름은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다. 해외에서는 ‘메르세데스’라고(발음은 다르지만) 줄여 부르기도 한다. 현재 ‘벤츠’ 승용차는 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AMG,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등 벤츠가 아니라 ‘메르세데스’를 축으로 한 서브 브랜드들로 나뉜다. 그리고 이 회사가 메르세데스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쓴지는 올해 4월로 딱 120년이 됐다.

비전 메르세데스 심플렉스
비전 메르세데스 심플렉스

이야기는 19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벤츠 차를 만들고 있는 다임러그룹의 창업자 중 한 사람, 고틀립 다임러는 1890년 빌헬름 마이바흐(마이바흐 브랜드의 유래)와 함께 다임러-모토렌-게젤 샤프트(DMG)라는 회사를 설립하며 자동차 엔진을 개발했다.

당시 니스에 살던 오스트리아 출신 사업가 에밀 옐리넥은 DMG의 지지자이자 까다로운 고객이었다. 1897년 옐리넥이 처음 구매한 다임러 차는 최고속도가 시속 24km에 불과했다. 옐리넥은 DMG에 시속 40km로 달릴 수 있는 차를 주문했고, 그 결과 1898년 8마력 4기통 엔진을 장착한 ‘피닉스(Phoenix)’가 탄생했다.

스페인어로 ‘우아함’을 의미하는 딸의 이름 ‘메르세데스(Mercédés)’를 가명으로 사용해 코트다쥐르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에 출전한 옐리넥은 더 빠르고 강력한 고성능 차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기억하기 쉬운 브랜드 이름의 중요성 또한 알고 있었다.

성공한 사업가였던 옐리넥은 주변 상류층들에게 다임러 차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딜러가 됐다. 1900년 4월 2일, DMG와 옐리넥은 니스에서 자동차 및 엔진 판매에 관한 협의를 진행했는데, 이때 새로운 엔진에 메르세데스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후 ‘다임러-메르세데스’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엔진 개발이 결정됐고 옐리넥은 36대의 차를 주문했다.

메르세데스 35hp
메르세데스 35hp

1900년 12월 22일 DMG는 신형 엔진을 장착한 최초 차량 ‘메르세데스 35hp(35마력)’를 옐리넥에게 납품했다. 당시 DMG 수석엔지니어 마이바흐가 개발한 최초의 메르세데스는 큰 화제를 모았다. 성능, 무게 절감 및 안전을 위해 체계적으로 설계됐고 경량 고성능 엔진, 긴 휠베이스 및 낮은 무게 중심을 가졌다.

현대적인 자동차의 원형으로 손꼽히는 메르세데스 35hp는 ‘말 대신 엔진이 끄는 마차’ 수준이었던 당시 자동차들 사이에서 단연 혁신적이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모터스포츠 대회였던 1901년3월의 니스 주간(Semaine de Nice)에서 각 부문을 휩쓴 것은 당연했다.

덕분에 옐리넥과 메르세데스는 파격적인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1901년 3월과 8월 출시된 형제 모델들도 인기에 불을 지폈다. 당시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었던 상류사회에서 메르세데스는 ‘잇템’이 됐고 독일 칸슈타트의 다임러 공장은 수요를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1902년에는 동일한 개발 원리로 개발된 메르세데스-심플렉스 모델들이 출시됐다. 심플렉스라는 명칭은 당시 기준에서 차의 조작이 용이함을 나타낸 것. 이 차들은 혁신적인 경주용 자동차와 스포티한 일상의 고급 자동차로서 똑같이 성공을 거두었다.

에밀 옐리넥과 딸 메르세데스
에밀 옐리넥과 딸 메르세데스

메르세데스라는 이름은 뛰어난 성능과 신뢰성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1902년 6월 23일 DMG는 메르세데스를 브랜드 이름으로 상표 등록했고 같은 해 9월 26일 법적 보호를 받게 됐다. 1903년 에밀 옐리넥은 자신의 이름을 에밀 옐리넥-메르세데스로 바꾸기까지 했다. 아버지가 딸 이름을 물려받은 셈.

이후 1926년에 DMG가 세계최초 내연기관 자동차를 발명한 칼 벤츠의 회사 ‘벤츠 & 씨에(Benz & Cie.)’와 합병하며 다임러-벤츠 AG가 설립됐다. 다임러-벤츠가 ‘메르세데스-벤츠’라는 이름으로 자동차를 생산해오면서 메르세데스는 대표적인 럭셔리 프리미엄 브랜드로 남아있게 됐다. 이후 1998년 미국 크라이슬러를 인수해 다임러-크라이슬러가 결성됐다가 2007년 크라이슬러와 분리되면서 오늘날 다임러 AG로 사명이 변경됐다.

메르세데스는 독보적인 명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자동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을 뿐 아니라 단순한 브랜드명을 넘어 우아한 고품격 자동차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현재까지 자동차 브랜드로 여성 이름을 가진 것은 메르세데스-벤츠가 유일하다.

니스의 벤츠 디자인 센터를 배경으로 한 비전 메르세데스 심플렉스 이미지
니스의 벤츠 디자인 센터와 1900년대 메르세데스를 배경으로 한 비전 메르세데스 심플렉스 이미지

한편 '심플렉스'라는 명칭은 1905년 메르세데스 자동차의 모델명에서 사라졌지만 1901년 메르세데스 35hp로 시작된 양산 차량과 경주용 차의 독특하고 세계적인 성공 스토리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콘셉트카 '비전 메르세데스 심플렉스'는 메르세데스-벤츠 럭셔리 브랜드의 기원과 미래를 동시에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디자인과 기술의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동시에 역사적 유산과 브랜드 탄생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비전 메르세데스 심플렉스는 120년전의 개척정신과 디자인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비전 메르세데스 심플렉스 콘셉트카
비전 메르세데스 심플렉스 콘셉트카

고든 바그너는 “메르세데스-벤츠는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성능과 기술로 결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더구나 지금 메르세데스-벤츠 디자인의 성공 비결은 지성과 감성의 결합이다”라면서 “완벽한 럭셔리의 구현과 혁신은 우리가 추구하는 브랜드 DNA의 일부다. 이것이 메르세데스-벤츠가 과거와 현재, 미래에 모빌리티(이동성)의 새로운 기준을 세울 수 있는 힘을 준다. 이 차는 메르세데스-벤츠만의 럭셔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상징하며, 브랜드가 자동차의 변혁과 이동성의 선구자로서 계속 전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