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금융권의 뿌리 깊은 관행들마저 뽑을 조짐이다.
이달 초 한국은행이 내놓은 '코로나19 확산이 주요국 지급수단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영국 내 현금사용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아마존 인디아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등 일부 관광지는 현금 결제를 아예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서비스 제한을 권고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의하면 올 1월 10.2%에 그쳤던 쿠팡 등 온라인 유통업체 매출이 2월엔 34.3%로 3배 넘게 뛰었다.
'언택트가 일상 속 금융을 집어삼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소비 양상이 비대면·비접촉 방식으로 바뀌면서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주고 받는 대신 디지털 결제나 온라인 구매를 택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새 시도를 꺼려온 금융당국과 각 금융사에서도 직접 낡은 관행을 뒤집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을 위한 파일럿 테스트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CBDC란 블록체인 등 분산원장기술을 통해 디지털 형태로 발행되는 중앙은행 화폐다. 중앙 정부의 관리가 따르고 법정화폐 단위를 쓴다는 점 등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의 민간 가상자산(암호화폐)과 다른 점이다. 한은은 올해 안에 CBDC 구현기술 검토를 끝내고 내년 중 가동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는 앞서 CBDC 도입에 선을 그었던 한은의 기존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한은은 지난해 1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보고서에서 "가까운 장래에 CBDC를 발행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현금사용이 비중이 여전히 높은 데다 소액결제시장도 다각화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비접촉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한은도 디지털화폐 발행 대열에 동참하게 됐다.
금융위원회도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요지부동하던 망분리 원칙에서 한발 물러섰다. 2월 말 금융위는 "금융사가 업무연속성을 유지하도록 일반 임직원의 원격접속을 통한 재택근무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전산센터 직원 외의 본점 직원들에게까지 망분리의 예외를 인정한 것은 지난 2013년 망분리 규제 도입 이후 처음이다.
망분리란 정보유출과 사이버공격을 막기 위해 통신회선을 업무용(내부망)과 인터넷용(외부망)으로 분리하는 것을 뜻한다. 현행 전자금융감독규정은 금융회사와 전자금융업자에 망분리된 업무망을 갖추도록 의무를 지우고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2월 7일부로 한국씨티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대해 '일반 임직원도 원격접속을 통한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은 비조치 의견서를 회신했다. 지난달에는 은행연합회와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 각 업권별 법정협회에 망분리 관련 비조치의견서를 전달했다. 비조치의견서란 금융사가 취할 행동에 대해 금융당국이 제재를 가할지 여부를 미리 알려주는 제도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한해선 협회 차원에서 받은 비조치의견서가 소속 금융사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
콜센터 재택근무에 대한 금융사들의 입장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그간 은행 등 금융회사는 콜센터 인력을 재택근무로 전환하기 어렵단 입장을 고수해 왔다. 누적 통화시간 등 각종 업무 성과가 내부 전산망에 기록되는 형태인 데다 민감한 금융정보를 다루고 있어 정보유출 여지를 남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난달 서울시 구로구에서 콜센터 직원 집단감염 사건이 발생하자 금융사들은 태도를 바꿨다. 당시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이 선제적으로 콜센터에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또 8일에는 삼성생명이 보험업권 최초로 일부 콜센터 상담원들을 상대로 재택근무를 추진하기로 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디지털화폐도 이미 각국이 연구개발에 뛰어드는 상황인지라 늦은 감이 있는 데다 망분리 원칙의 경우도 산업 발전을 위해 애초부터 개선됐어야 하는 부분"이라면서 "코로나19 사태로 금융 애로의 상당 부분을 ICT로 해결할 수 있단 희망을 봤지 않느냐. 이번을 기회로 금융당국이 보수적인 규제 방식을 지우고 기업들이 혁신적인 조직문화를 형성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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