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공학 전공 학부생이 하루면 만드는 앱인데 이것을 혁신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건가요?”
작년에 참여했던 모빌리티 관련 전문가 회의에서 참석자 한 분께서 하신 이야기입니다. 차량공유 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개발자 경험을 했던 저는 순간 말 문이 막히고 말았고, 순간 저와 눈이 마주쳤던 관련기업에 종사하시는 분께서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는 표정이었습니다. 나름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위해 밤을 새워 개발과 테스트를 하고, 출시 후에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뭐라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더군요.
그 후 최근 자주 논란이 되는 모빌리티 분야의 ‘혁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설명할 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하게 됐습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혁신의 정의는 지난 1월 사망한 하버드대 교수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이 한 것입니다. 그는 혁신을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과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으로 나눴습니다.
존속적 혁신은 현재 수준의 제품 기능과 사양, 서비스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불만 요소를 제거해 품질을 개선하는 것이고, 파괴적 혁신은 현재 시장에 없는 제품과 서비스를 도입해 기존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전략입니다. 존속적 혁신은 기존 고객, 파괴적 혁신은 새로운 고객들이 타겟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카풀에서 타다까지, 최근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이동서비스들이 등장하면서 혁신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와 로리 맥도날드(Rory McDonald), 마이클 레이놀(Michael Raynor)은 2015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파괴적 혁신은 무엇인가(What Is Disruptive Innovation)?’라는 제목의 아티클에서 우버의 혁신에 대해 논했습니다.
우버는 과연 혁신일까요? 위의 아티클의 결론은 우버가 혁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택시산업을 파괴시키지는 못했지만, 택시보다 높은 서비스 품질로 택시산업을 변화시키는 존속적 혁신으로 분류했습니다.
우버를 반대하는 택시업계의 반응은 기존 산업이 존속적 혁신으로 위협받을때 표출되는 전형적 현상이라며, 새로운 시장진입과 요금을 통제 받는 택시회사들이 직면한 혁신의 한계도 지적 했습니다.
타다는 혁신일까요? 타다 역시 우버처럼 택시산업을 파괴시키지는 못했지만, 택시보다 높은 서비스 품질로 택시산업을 변화시켰습니다. 타다 등장 이후 택시에 대한 가장 큰 소비자 불만 중 하나인 서비스 품질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웨이고를 필두로 등장한 가맹형 택시 서비스와 사용자 경험 표준이 바로 타다입니다. 이것이 필자가 타다를 존속적 혁신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입니다.
언젠가 혁신(innovation)과 혁명(revolution)의 차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혁신은 새로운 아이디어, 방법, 디바이스 등의 등장을 뜻합니다. 혁명은 갑작스럽고 급진적이지만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진 완전하고 근본적인 변화(fundamental change)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동서비스 시장에서 기존 문제점을 개선하는 모든 비즈니스 모델은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갖춰진 모빌리티 산업의 ‘혁명’은 쉽지 않겠죠?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혁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대략 의미가 파악됩니다. 혁신이란 단어가 일반 명사화 되어 어느 분야에 가져다 써도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문장으로 정의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가 바로 혁신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컨설팅 업체 프레쉬(Fresh)는 회자되는 혁신의 정의를 정리해서 웹사이트에 공개했습니다.
가치를 창출하는 참신한 사고, 기업가 정신의 구체적 수단, 새롭거나 다른 것의 시도, 아이디어를 숫자로 변환, 익숙한 영역에서 미지의 영역으로의 탈출 등 눈에 띄는 정의들도 있습니다. 30여 개의 정의를 종합해 보면, 혁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조직과 대상 제품 및 서비스에 따라 정의의 차이가 있지만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적합한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이동서비스는 계속 등장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혁신에 대한 논란 역시 반복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혁신이라는 개념을 공유하고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모빌리티 업계의 가장 커다란 혁신은 이해 당사자 간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방과 직접 만나 서로에게 귀를 기울여 주는 것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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