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딱 10년이 지났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외환 위기 이후 10년의 변화상을 조명하는 일이 많아졌네요. 정보기술(IT) 업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IMF 이후 1~2년간은 기업의 투자 심리 위축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1999년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는 소위 닷컴 붐으로 인해 IT업계는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리눅스’라는 말만 들어가도 주가가 폭등하던 시절이라는 점을 지금 생각해보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전통기업들도 저마다 ‘e'를 붙여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나섰던 것도 기억납니다. 물론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흐름이 이랬으니 모두가 한바탕 즐겁게 웃었다고 생각하면 편할지도 모릅니다.

불과 2~3년의 잔치가 끝나자 닷컴 열풍이 ‘거품’이라는 부적합 판정을 받고 IT 업계가 크게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IT 업체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주요 수요처였던 많은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어려움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 때부터 IT인들은 ‘내년’만을 기다렸습니다. 연말만 되면 CEO들은 ‘내년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을 자주 듣곤 했습니다. 대부분 똑같은 말을 했답니다. ‘내년 하반기쯤이면 풀리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올해 세밑을 앞에 두고 내년 경기 전망을 물었더니 이제 그 기대감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더군요. 기업의 투자 심리 위축이 여전한데다 대통령 선거까지 겹치면서 IT 투자에 대한 부동의 자세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답니다.

최근 한 경제연구소는 IMF 이후 10년이 지난 현재의 문제점 중 하나는 여전히 정부나 기업들이 너무 위축돼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외환위기를 예정보다 3년이나 일찍 졸업을 한 데 대한 자긍심을 가질 만도 한데 정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너무 소극적으로 계속 움츠리고 있다는 얘기죠. 앞으로의 10년을 전진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데 그게 결여돼 있는 수준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이 논의 바탕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 깔려 있습니다.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정부는 적극적인 제도개혁을, 기업들은 역동적이고 공격적인 패턴의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해법으로 제시됐습니다. 특히 제조 기업들의 투자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적어도 차세대 사업에 대한 일정 부분의 투자가 필요할 때입니다.

그나마 IT 업계 입장에서 볼 때는 금융 시장은 아직 매력적입니다. 1997년 당시만 해도 33개에 달했던 국내 은행들이 이제는 절반 가까이 사라지고 10여개만 남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IT에 대한 투자규모는 꾸준히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긍정적입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 <투데이 리뷰>를 통해 금융 IT 시장에 대해 집중 분석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입니다. 내년에는 금융업 뿐만 아니라 전 산업에 걸쳐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투자가 많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병희 기자 shake@ittoday.co.kr

<이 글은 IT Today 12월호에 게재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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