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이 DLF 사태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제재 수위를 논의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금감원이 DLF 사태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제재 수위를 논의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은 DLF 사태에 대한 우리은행 경영진의 수습 노력에도 불구하고, 손태승 우리은행 회장 등에게 ‘문책’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DLF 사태가 발생한 후 우리은행이 빠르게 배상에 나서고, 책임을 다했는 지는 따져 물을 수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1월15일 피해자에게 DLF 배상비율을 통보했다. 그리고 1월21일 기준으로 전체 배상 대상 고객 661명 중 50%가 넘는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 아울러 지난해 10월 수수료 위주의 임직원 핵심성과지표(KPI) 평가에서, 자산관리상품을 제외시키는 등의 혁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금융감독원은 DLF 사태의 모든 책임을 은행에만 떠넘기고, CEO에 중징계 내렸다. 

선거를 앞두고 일부 비판여론을 의식해 꼬리를 자르려고 하는 것은 감독당국의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감독당국은 해당 은행이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 대책이 미흡한 지를 따져서, 사태를 정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관리 감독해야 할 것이다.

DLF 사태의 책임은 금융당국과 은행, 투자자들 모두의 공동 책임이다. 지난해 10월 은성수 위원장은 DLF 투자 피해자에 대해 "공짜 점심은 없다"며 자기 책임 강조한 적이 있다. 시장경제에서 ‘투자는 자기 책임으로 한다’는 상식을 이야기 한 것이다. 금융당국도 은행감독 시마다 해당 지점이 불완전판매의 설명 의무를 완결했는지 매번 따져 물어야 했다는 책임이 있다. 

DLF 사태 처리는 상호의 과실 부분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선까지 은행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지 등에 대해 다투는 것이 합리적 법치이고, 감독행정의 책임이다.

이미 우리은행 직원들은 손태승 회장에 대한 금감원의 DLF 중징계에 대해 과도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내부통제가 미흡했다고 CEO를 제재하는 것은 법리상 맞지 않고, 손태승 회장은 해당 피해자 배상도 신속하게 진행하는 등 수습 및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항변했다. 손 회장의 피해자들에 대한 빠른 배상 등 수습 노력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점에 대한 관리부실이라는 내부통제 미흡으로 경영진까지 제재한다면 관리 감독당국인 금감원과 금융위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법적 근거도 미흡하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돼 있고, 시행령에는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만 명시돼 있다. ‘내부통제에 실패했을 때, CEO까지 제재할 수 있도록 한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시장 논리에 맞지 않아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문제가 생겼다고 일벌백계 차원에서 CEO에 중징계의 칼을 휘두르는 것은 과도한 조치이다. 은행이 판매하는 금융상품이 수백 가지인데 CEO가 일일이 살펴볼 수도 없다. 

금감원은 투자 상식과 원칙에서 벗어난 모호한 법적제재 근거를 들어 중징계를 내린 것이다. 금융당국의 논리라면 DLF 사태의 책임은 2015년 사모펀드 활성화 대책을 시행하고, 이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금감원의 책임이 제일 크다.

최근 대법원이 직권남용 판결의 기준을 엄격하게 변경한 것도 공무원들의 합리적, 생산적인 의사결정을 보호해주고, 복지부동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사고가 났으니 은행장이 책임져야한다는 식의 논리로는 은행장들에게 생산적, 진취적 경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만약 금융위에서도 중징계로 결론이 난다면, 앞으로 금융시장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사고시에 CEO들은 어차피 중징계로 금융권 퇴출이 예상되기 때문에 수수방관하고, 피해구제에도 나서지 않을 것이다. 본인의 법적 책임을 벗어날 방법에만 몰두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은행의 주주이탈, 주가 폭락 등으로 경영상 금융회사 지배구조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은행은 둑(bank)이다. 온 직원들이 믿고 따르는 CEO가 신뢰를 잃고, 표류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순식간에, 그 둑은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둑이 무너지면 우리경제는 순식간에 모라토리엄 사태로 치달아, 경제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IMF사태를 거치면서 우리는 둑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거대 기업들의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은행을 지켜내려 했다. 그 쓰라린 교훈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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