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정부가 같은 계위 간 인터넷망 상호접속의 정산 방식을 유지하되, 무정산 구간을 신설하기로 했다. 무정산 구간은 대형 통신사 간 트래픽 교환비율의 최대치보다 높은 수준인 1:1.8이다. 최근 1년간 대형 통신사 간 월별 트래픽 교환비율은 모두 1:1.5 이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무정산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가 무정산 구간 교환 비율을 1:1.8로 설정한 것은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무정산 구간 설정으로 통신사(ISP, Internet Service Provider)가 접속 비용 없이 CP(Contents Provider, 콘텐츠제공사업자)를 유치할 수 있게 되면서 CP유치 경쟁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또한 이를 통해 국내 인터넷 기업들이 OTT, 가상현실·증강현실(VR·AR) 등 신규 서비스를 부담없이 출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정산 구간 교환 비율은 1.1.8로 일단 운영하되,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추후 재조정될 수 있다.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인터넷 시장의 공정경쟁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인터넷망 상호접속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인터넷망 상호접속이란 통신사가 인터넷 트래픽을 교환하기 위해 인터넷망을 서로 연동하는 것을 말한다. 통신사가 상호접속을 통해 연결돼 있어, 이용자는 한 통신사에 가입하면 전 세계의 콘텐츠 또는 다른 통신사의 가입자들과 인터넷 통신이 가능하다.

지난 2016년 당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는 데이터 중심의 통신환경변화를 반영해 트래픽 기반 정산방식을 도입하는 등 인터넷망 상호접속제도 전반을 개편한 적 있다. 이때 정부는 같은 계위인 대형 통신사(KT·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간 접속료 정산방식을 기존 무정산에서 발신 트래픽량에 따라 상호정산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2016년 제도 개편 이후, 통신사 간에 발생하는 접속료가 CP시장에 영향을 미치면서 오히려 인터넷 시장에서의 경쟁이 위축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됐다.

지난 18일 인터넷망 상호접속제도 개선방안과 관련해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개최됐던 기자 스터디에서 김남철 통신경쟁정책과장은 “2016년 당시, 정부는 CP가 지불하는 소매 요금이 접속료보다 높기 때문에 CP 유치경쟁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을 했다”며 “하지만 한 ISP는 제도가 바뀌어서 CP를 유치하면 비용이 상승하니 (CP에게) 대가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니 실제 대가가 인상하는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소매 시장이란 CP 및 이용자가 ISP에게 요금을 지불하는 것을, 도매 시장이란 ISP간 상호 연결에 따른 대가를 주고 받는 시장을 말한다.

김남철 과기정통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이 인터넷망 상호접속제도 개선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백연식 기자)
김남철 과기정통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이 인터넷망 상호접속제도 개선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백연식 기자)

예를 들어, 국내 ISP인 KT가 대형 CP인 페이스북을 혼자 유치했는데 SK브로드밴드 이용자들이 페이스북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KT 망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을 상호접속이라고 부른다. KT와 SK브로드밴드는 같은 계위(등급)이고 2016년 이전에는 무정산 방식이었기 때문에 두 통신사가 서로에게 지불하는 비용이 없었다. 하지만 2016년 이후, 같은 계위 사업자도 트래픽에 따라 서로 정산하는 것으로 바뀜에 따라 상호접속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SK브로드밴드 이용자가 페이스북에 업로드 할 경우는 SK브로드밴드가 KT에 비용을 이용자 대신 지불해야 하는데, 다운로드의 경우는 KT가 SK브로드밴드에게 비용을 내야 한다. 일반적으로 업로드보다 다운로드 건이 훨씬 많기 때문에 사실상 KT가 SK브로드밴드에게 비용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KT는 페이스북을 유치해서 매출이 발생했지만 정산 방식으로 변경됨에 따라 예전과 달리 SK브로드밴드 등에게 비용을 지출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KT 등 ISP 사업자들은 CP를 유치할 때 예전보다 소극적이게 됐고, CP에게 비용을 더 요구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정부가 이번에 1:1.8 비율까지 무정산 구간을 설정한 것은 ISP들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KT-SK브로드밴드 간 트래픽 교환비율이 1:1.5라는 것은, KT에서 SK브로드밴드로의 발신 트래픽량이 100일 때, SK브로드밴드에서 KT로의 발신 트래픽량이 150이라는 의미다.

김 과장은 “트래픽 증대환경에 대비해 ISP간 합리적인 비용분담을 위해 트래픽 기반 정산체계는 유지한다. ISP간 자율적인 계약원칙은 최대한 보장한다”며 “현재의 트래픽 시장을 보고 과거를 분석해 보면 1:1.8을 넘는 경우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사실상 무정산인데도 불구하고 1:1.8 비율을 설정해 정산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글로벌 대형 CP 변수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디즈니 플러스 등 대형 CP를 국내 한 통신사가 유치할 경우에는 트래픽 발생이 1:1.8 비율을 넘을 수도 있다.

또한 정부는 중소 통신사(중계사업자, CATV사 등)의 접속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접속통신요율을 인하하고, 사업자 간 상호합의가 있는 경우 계위 등을 달리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화한다. 접속통신요율은 매년 요율 별로 동일한 비율로 인하해 왔으나, 요율 간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요율 별로 인하율을 달리 설정하고, 연간 최대 30%(중계접속요율) 가량 인하하기로 했다.

김 과장은 “하위계위(중소 ISP) 활성화를 위해 과거에는 연간 7.3%~13.4% 정도 접속요율 인하를 했는데, 이젠 최대 30%로 확대한다”며 정산방식을 용량이나 트래픽 중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화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는 인터넷 시장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접속통신요율 상한과 대형 통신사 간 트래픽 교환비율을 공개하고, 업계와 협의해 망 이용대가 추이를 수집·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홍진배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 통신정책관은 “이번 개선안은 통신사 뿐 아니라 인터넷 생태계 구성원의 의견을 모아 만든 결과물”이라면서, “앞으로도 우리의 강점인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위에서 다양한 인터넷 생태계 참여자들이 동반성장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계속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과기정통부는 제도개선 방안이 조속히 시행될 수 있도록 고시를 개정하는 한편, 관계부처와 함께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등 인터넷 시장의 경쟁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인터넷망 상호접속제도 개선에 대한 업계의 주요 의견 (사진=백연식 기자)
인터넷망 상호접속제도 개선에 대한 업계의 주요 의견 (사진=백연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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