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고정훈 기자] 한국은행이 디지털화폐(CBDC) 발행 검토를 공식화했다. 올해 초 CBDC 발행에 부정적인 모습과 대조적인 행보다. 왜 입장을 바꾼 것인지, 또 향후 한은이 발행할 디지털화폐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 19일 한국은행이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분산원장기술 생태계와 전자금융의 미래’ 세미나에서 분산원장기술의 현 주소와 미래를 진단하는 자리를 가졌다. 분산원장기술이란 수많은 사적 거래 정보를 개별적 데이터로 만들어 이를 블록체인기술에 응용한 분야를 뜻한다. 때문에 가상화폐나 디지털화폐와도 연관성이 짙다.

이 자리에서 한국은행 관계자는 디지털화폐와 관련된 연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은행이 올해 초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과 상반된다. 당시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에서는 현금이용 축소에 대응하거나 금융 포용을 제고하는 디지털화폐의 발행유인이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또 지난 10월에는 우리나라의 지급결제 인프라가 선진적이고, 다양한 지급수단이 발달했다는 이유로 다시 한번 디지털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행 내부에서는 디지털화폐와 블록체인의 결합, 또는 디지털화폐 발행에 관한 검토를 적극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분산원장기술과 디지털화폐 관련 세미나도 지속적으로 개최하거나, 관련 인력 채용 공고를 내고 있다. 이는 디지털화폐와 암호자산 등 지급결제 분야의 디지털 혁신 관련된 기반기술과 분산원장기술을 활용한 지급결제시스템 설계·구현∙운영방안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한국은행이 디지털화폐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픽사베이)
한국은행이 디지털화폐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픽사베이)

 

이날 한국은행 홍경식 금융결제국장은 "우리도 중국처럼 시범적으로 한 구역에서만 먼저 운영해보고 (확대)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디지털화폐를 사용하면 어떤 이점들이 있을지 알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또 "블록체인 적용 여부는 아직 모른다. 중앙은행이 블록체인을 사용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라며 다소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놨다.

한국은행 윤성관 전자금융조사팀장은 "현금이 사라지는 미래 상황에서는 금융 안정을 위해 CBDC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소비자 단에서 쓰이는 CBDC가 아닌 기업 또는 기관 쪽에서 쓰이는 CBDC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화폐는 한 국가의 중앙은행이 전자 형태로 발행하는 새로운 개념의 화폐를 뜻한다. 기존 화폐의 자리를 디지털 정보가 대신하는 셈이다. 이에 따른 장점도 많다. 따로 돈을 들고 다닐 필요 없이, 화폐를 제작할 때 발생되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위조지폐 제작과 관련된 범죄 행위도 막을 수 있다

최초로 디지털화폐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 내에서는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발생하는 디지털화폐가 공상은행을 비롯해 4대 국유상업은행과 인터넷 플랫폼, 결제 청산 기관 등으로 우선 공급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디지털 화폐는 개인이 이들 기관에서 충전해 스마트폰 앱 '전자지갑'에 담긴다. 단순히 지불을 넘어 경제 주체 간 송금 역시도 가능할 예정이다. 이는 기존 화폐의 자리를 완벽하게 대신하는 셈이다.

프랑스도 디지털 화폐 개발 프로젝트 발표를 알렸다. 지난 4일 프랑스은행 프랑수아 빌루아 드 갈로 총재는 "중앙은행으로서 금융 시스템 혁신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2020년 1분기 말까지 CBDC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디지털화폐가 새로운 ‘통제’의 개념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의 디지털화폐가 기존의 화폐 자리를 대체하지만, 중앙집중형의 형태를 띄고 있어서다. 디지털화폐는 분산형 장부 관리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손쉬운 '감시'가 가능하다. 전자지갑 안 잔액은 물론이고, 누구와 거래를 했는지까지 빅데이터로 남게된다. 반대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어느정도 추적은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 익명성을 보장하고 있다.

한 업계관계자는 "아직까지 한국은행이 어떤 형태의 디지털화폐를 연구하는지 윤곽이 나오지 않아 예측하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다만 일반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디지털화폐가 아니기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아직까지는 기존 화폐를 대신하는 개념은 아니기 때문에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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