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며칠전 퇴근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우유를 고르고 있었다. 마침 옆테이블에서 서로 라볶이를 떠먹여 주던 고등학생 남녀가 내쪽으로 왔다. 단내 도는 우유로 매운 맛을 중화하려 한 듯했다. 남학생이 초코에몽을 고르자 여학생이 곧바로 제지에 나섰다. 그는 '인터넷도 안 보냐'며 '남양유업은 갑질을 많이 해서 불매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했다. 남학생이 '무슨 갑질을 했느냐'고 묻자 여학생은 '안 찾아봐서 모른다'고 대꾸했다.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있는 불매 현장이었다.

일명 '남양 불매'는 누리꾼들의 단결이 만들어 냈다. 6년 전인 2013년 남양유업은 일부 대리점주에 감당이 어려울 만큼의 물품들을 떠넘겨 강매를 유도한 사실로 여론의 공분을 샀다. 당시 공개된 녹취 파일에서 30대 본사 직원은 아버지뻘인 50대 대리점주에 막말을 쏟아냈다. 윤리적으로 물의를 빚은 기업을 응징하고자 누리꾼들이 택한 방법은 '인터넷 불매운동'이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남양유업을 언급할 때마다 말머리나 말꼬리에 불매란 단어를 덧붙이는 식이다. 이로 인해 불매란 단어는 꼬리표처럼 남양유업을 따라다녔다.

(사진=신민경 기자)
(사진=신민경 기자)

그러다 지난 7월 일본의 수출 제재로 시작된 '노재팬(NO 재팬)' 운동은 불매란 단어를 '논란을 낳은 모든 기업들에 대한 응징'의 표현으로 바꿔놨다. 유니클로가 대표적이다. "한국 내 반발 움직임이 장시간 지속되지 않을 것"이란 일본 본사 임원의 발언 한 마디로 불붙기 시작한 유니클로 불매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10월엔 지난해보다 67% 줄어든 매출 196억원을 기록했다. 또 인기 내복인 히트텍의 무료 증정 행사가 열렸던 지난달 6일간의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매출액에서 70% 가량 급감했다.

한국콜마는 앞선 8월 윤동한 회장이 직원 700여명 앞에서 보수 유튜버의 영상을 틀어 논란이 됐다. 이 내용을 담은 한 매체의 보도가 있은 지 하루 만에 포털 검색어 상위권엔 '한국콜마 제품리스트'가 올랐다. 보도내용의 참과 거짓을 가리기도 전에 '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단 뜻이다.

문제는 누리꾼들의 불매 행동이 습관화 돼 간다는 데 있다. 습관의 무서운 특징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선 굵은 주장'만 남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희미해져 간다는 점이다. '불매하겠다'는 결심 외에 '왜 불매해야 하는지'와 '불매로 이 기업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등의 핵심 사안은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불매운동의 끝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보려면 소비자의 책임을 한층 키워야 한다. 논란이 된 기업의 뿌리를 이해하고 행동에 대한 개인적 명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또 감시 기능도 중요하다. 불매 운동은 소비자와 기업이 함께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가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1990년대 초반 나이키는 파키스탄 아동의 노동력을 착취한 하청업체에서 축구공을 납품 받아온 사실을 들켜 전 세계적인 불매운동에 부닥쳤다. 경제적인 위협을 느낀 나이키는 노동강령을 만든 뒤 노동자의 최소 연령을 올리고 개발도상국 청소년들을 위한 지원책을 확대하고 나섰다. 소비자가 기업 스스로 윤리·사회적인 잘못을 바로잡게 해 상생을 꾀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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