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과연 '아시아 유턴'은 아디다스가 계산한 그림일까. 독일에 본사를 둔 아디다스가 미국과 유럽에 지은 최첨단 공장 2곳을 청산하기로 한 가운데 그 뒷배경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적은 생산량과 신발 종류 제한 등의 장애요소에 부딪혀 항복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이번 폐쇄 조치가 당초 사업 계획의 일부였을 수 있단 시각도 나온다.

27일 관련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아디다스는 최근 독일 안스바흐와 미국 애틀랜타 내 스피드 팩토리(Speedfactory)의 가동을 멈추기로 했다. 오는 2020년 4월 정식 폐쇄된다. 이들 스피드 팩토리는 로봇과 3D(3차원) 프린터 등을 투입한 첨단 제조사업장이다. 각각 지난 2016년과 이듬해 문을 열었다. 노동 집약형 산업의 대표 격인 신발 생산 거점을 본사가 위치한 독일로 옮기려는 취지가 반영됐다.

아디다스가 최근 독일 안스바흐와 미국 애틀랜타 내 스피드 팩토리를 폐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신민경 기자)

글로벌 신발 시장에선 제조기지를 자기 나라로 원위치시킨 전례가 드물다. 저소득국가와 선진국 소비지역 간의 인건비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당시 아디다스의 독일 복귀 결정은 '제조업 일자리를 선진국에 되돌려 놓을 수 있다'는 업계 희망을 키웠다.

하지만 아디다스가 스스로 약속을 뒤집으면서 현재 일명 '리쇼어링(reshoring·제조업의 본국 회귀) 환상'은 깨진 상태다. 두 공장에 속한 직원 200여명은 일자리를 잃게 될 전망이다.

다만 회사 측은 이런 결과를 애초에 의도했단 입장이다. 아디다스는 지난 19일(현지시각) 보도자료를 통해 철수 배경을 밝혔다. 글로벌 운영 책임자인 마틴 섕클랜드는 "스피드 팩토리는 우리가 혁신적인 생산 공정을 갖추는 데 충분한 역할을 했다"며 "리드 타임(주문부터 소비자 전달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여 신속한 배송을 구현했으니 두 공장에서의 목표는 이룬 셈"이라고 했다.

회사에 따르면 스피드 팩토리의 기술은 향후 중국과 베트남의 공장 2곳에 적용된다. 아디다스 측은 "확보한 새로운 개발 방식들을 아시아의 기존 생산시설에 연내 흡수시킬 것"이라면서 "이로써 제품 설계가 유연해지고 신발 모델의 변형이 쉬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9일(현지시각) 아디다스 홈페이지에 올라온 보도자료 내용 일부 캡처. 섕클랜드 책임자는 독일과 미국 공장에서의 목적은 이뤘다고 밝히며 '전략 실패설'을 일축했다.

다만 외신들은 보다 근본적인 원인에 주목했다. 일단 넘치는 수요에 비해 적은 생산량이 문제로 지적된다. 아디다스는 연간 3억 켤레를 만든다. 이 중 스피드 팩토리 2곳은 해마다 운동화를 55만 켤레 가량 생산하는 데 그쳤다. 전 세계 생산량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디다스는 대형 소비시장 근처에 생산시설을 둔 채 현지 소비자와 더 가까워지려고 했겠지만 공급 수량과 속도가 의욕을 못 따라갔다"면서 "미국 시장 점유율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전략 수정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작업 공정이 필요한 제품들이 생산 라인에 오르지 못했던 점도 부담요인으로 지목됐다. 스피드 팩토리에선 기계로만 신발을 만들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재질을 다루지 못한다. 고무창을 덧댄 가죽 신발이 그 예다. 두 스마트 공장이 오랜 기간 패션 신발로 주목을 받았던 자사 제품인 '슈퍼스타'나 '스탠 스미스' 등을 취급하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디다스의 이번 조치를 '전략 실패'로 해석하는 업계 분위기와는 달리 일부에서는 상반된 의견도 나온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고한석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은 아디다스가 처음부터 독일과 미국 내 스피드 팩토리를 R&D(연구개발) 목적으로 세웠다고 봤다.

고 이사장은 디지털투데이에 "아시아 지역의 소비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소비시장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옮겨졌다"면서 "이전의 아시아 유턴 행보가 '저가 노동 접근성' 때문이었다면 최근에는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아디다스 스피드 팩토리. (사진=아디다스)

실제로 올해 3분기 의류·신발 부문에서 아디다스는 북미와 아시아 지역에서 전년 대비 각각 13%와 11% 오른 매출을 기록했다. 반면 유럽 본토 시장에서의 판매율은 현상유지에 그쳤다.

인건비와 자동화기계 운송비 등 비용 측면에서 불리함에도 아디다스가 두 선진국을 기지로 택한 이유는 R&D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고 이사장은 "관련 연구자들이 모여 다양한 실험과 조정 단계를 거치려면 임시 공장 위치론 미국과 독일 등지가 최적이었을 것"이라면서 "시스템이 어느 정도 안정됐다고 판단하고 생산을 본격화하기 위해 아시아로 옮기기로 한 듯하다"고 말했다. 애당초 민간 영리기업인 아디다스가 본국 일자리 창출을 앞세우는 공공정책에 부응하고자 했다는 분석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고 이사장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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