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양대규 기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종료가 '조건부 연기'로 결정됐다. 지소미아의 종료, 수출규제의 WTO 제소 등 주요 안건은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제자리는 아니다. 그동안 협상을 거부한 일본이 ‘지소미아 종료’ 문제를 연기하며, 수출규제와 관련해 다시 협상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난 23일 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최근 일본 정부가 수출 관리정책 대화를 개최해 수출관리 운용을 통해 재검토될 수 있도록 한다는 입장을 외교 경로를 통해 전달해 왔다”고 전했다.

이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그래서 지소미아 종료 통보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논의 끝에 결론 내렸다”며 지소미아 종료의 조건부 연기 배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소미아 종료와 WTO 제소 두 가지는 철회된 것이 아니"라며, "일본이 협의 과정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거나 하는 것들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관련 기업은 물론, 산업 전반에 걸쳐 일본의 수출규제 지속으로 인한 손실이 더욱 커질 것은 아닌 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최근 산업통산자업부에 따르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아직까지 큰 손실이 발생하지는 않았다는 업계의 보고가 올라왔다. 반면 한국경제연구원은 수출규제가 지속될수록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손실이 클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생산차질이 없었다고 앞으로도 계속 긍정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일본과의 관계 악화는 한국에 일부 불이익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가 우선 일본과의 무역 관계 개선에 노력하며, 장기적으로 일본에 대한 소재·부품·장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R&D에 투자를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지=양대규 기자)
(이미지=양대규 기자)

반도체·디스플레이, ‘日 수출규제’ 차질 없어

산업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주요 4개 업체는 지난 7월 일본의 수출 규제 발표 이후 이에 따른 생산 차질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최근 정부에 전달했다.

앞서 업계는 일본의 규제 대상 품목들에 대한 대일 의존도가 워낙 높아 수출 규제가 2~3개월 이상 지속할 경우 생산라인 전면 중단 등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으나 결과적으로는 큰 영향은 없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각 업체가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통해 기존에 확보하고 있던 재고 물량의 생산라인 투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수입 채널을 유럽 등으로 다변화하고 국산화 노력도 병행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국내 언론들에 따르면, 삼성, SK, LG 등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4개 대표 업체 가운데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당초 예정된 생산물량을 채우지 못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안다"며, "영향이 없었다기보다는 피해가 없도록 치밀하게 대응한 덕분"이라고 밝혔다. 올 3분기와 4분기 실적에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마이너스 요인'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도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며, 이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생산 차질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 계속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직접적인 손실은 없더라도, 물량확보와 새로운 소재 개발 등을 위해 소모된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장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미지=양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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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연, "수출규제 지속, 한국이 더 불리해"

24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화이트 리스트 제외에 따른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일갈등이 심화될수록 일본에 비해 한국이 입는 GDP 손실이 더 클 것으로 분석됐다. 화학공업 제품을 중심으로 양국이 수출규제를 한다고 가정할 때, 한국의 GDP 손실이 일본의 GDP 손실보다 크며 무역 분쟁이 악화될수록 양국의 GDP 감소 폭은 커질 전망이다.

한경연은 한일 갈등이 심화할 경우 양국은 상대국에 큰 타격을 주면서 자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출규제 품목을 전략적으로 선택할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현재 수출규제를 받고 있는 3개의 품목 이외에도 ▲블랭크마스크, 초산셀룰로우스 등 반도체·디스플레이의 생산차질을 유발하는 품목 ▲티타늄 등 우주, 항공분야에 생산차질을 유발하는 품목이 새로운 규제대상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보고서는 한국은 철강 제품 9개, 화학공업 제품 6개, 광 슬래그 등 기타 제품 3개로 총 18개를 수출규제품목으로 고려할 수 있으나 일본 산업에 타격을 주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경연은 일본의 GDP 손실은 미미한 수준이지,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국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의 생산에 차질이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한국의 GDP 손실은 최고 6.26%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경엽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한일갈등이 심화될수록 일본에 비해 한국의 GDP 손실이 상대적으로 큰 만큼 국가 차원의 외교적 노력은 물론 민간 외교력까지 총동원하여 해결할 필요성이 높다"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분쟁 해결을 위해 개별기업은 물론 일본 재계와 주기적인 교류를 어어 온 경제단체 등의 민간외교 역할 확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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