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한국법인 샤넬코리아가 '업무 외 시간 30분' 때문에 여전히 노사간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사측은 "직원들에게 조기 출근을 지시한 적 없다"는 입장인 데 반해, 노동조합(노조)은 "사측의 이같은 안일한 태도가 업계 관행인 초과 근로를 청산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맞서고 있다. 재판부는 일단 사측의 손을 들어준 상태다. 직원들이 정해진 출근시간(오전 9시)보다 30분 먼저 나온 사실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단 판단에서다. 이에 일각에선 입증책임을 근로자에게 지우는 현행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는 최근 샤넬코리아 노조원 335명이 사측을 상대로 낸 추가수당 16억7500만원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사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현재 샤넬은 취업규칙에서 매장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주 40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휴게 1시간을 뺀 하루 근무시간은 평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총 8시간이다. 백화점 개점 시간인 10시30분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하는 것은 판매에 앞서 매대 등 주변 환경과 개별 옷매무새를 정돈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모든 준비를 끝마치기엔 주어진 1시간이 빠듯했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이미지=unsplash)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직원들에게 매장 청결과 꾸밈노동(그루밍) 업무에 대한 지침서를 나눠주고 따르게 했다. 여기엔 ▲매장 유리창과 거울 닦기 ▲비로 바닥 쓸고 진공 청소기로 청소하기 ▲메이크업과 액세서리 착용하기 등의 내용이 담겼다. 특히 일명 '그루밍 가이드'에선 달마다 다른 스킨케어와 아이, 네일, 립, 향수, 액세서리 제품을 지정해 준다. 직원들은 이 가이드에 적힌 내용에 따라 용모를 꾸며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노조는 사측이 엄격하게 적용한 준비 항목들을 모두 지키기 위해선 오전 9시에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며 3년간 30분씩 조기출근한 데 대한 임금으로 각 직원들에게 500만원과 연 15% 연체이자를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사측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줬다. 직원들이 초과근로를 매일 꾸준히 제공해왔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부족해서다. 샤넬코리아는 법원의 판결에서처럼 결백하다는 입장이다. 샤넬코리아 관계자는 디지털투데이에 "우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므로 전 직원들에게 조기출근을 명령한 바 없다"면서 "백화점 오픈을 위해선 준비시간 1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샤넬은 달마다 다른 콘셉트의 그루밍(꾸밈노동) 가이드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배포했다. (자료=김소연 샤넬코리아지부장 제공)

현재 샤넬 사업장엔 연장근로수당 지급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출퇴근 관리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 직원들이 백화점 폐쇄회로TV(CCTV) 영상과 교통카드에 기록된 출퇴근 시간 등을 직접 모아 증거로 제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갈등을 계기로 관련 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 있느냐'는 물음에 회사 관계자는 "판결과는 무관하게 근로조건 개선에 힘쓰고 소비자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면서 확답을 피했다.

이에 노무업계에선 입증책임의 요건을 완화해야 한단 의견이 나온다. 노사 간 핵심 쟁점에 대한 입증책임을 온전히 근로자에게 넘기는 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시작하는 것과 같단 얘기다.

소민안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은 "과태료 행정처분을 넘어 형사처벌과 관련한 문제에선 근로자가 사실관계를 입증하도록 법제화돼 있다"면서도 "이 점을 이용해 회사에서 연장근로수당의 여지를 없애기 위한 꼼수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소 부회장은 이어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선 근태 관리 시스템을 반드시 마련하도록 강제하고 관련 내용을 노사가 항상 공유하는 등 실무적인 입증책임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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