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양대규 기자]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 대표단이 WTO(세계무역기구)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로 출국했다. 양국 대표단은 한국시간 19일 오후 6시 2차 양자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2차 양자 협의로 결론이 나지 않으면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는 재판으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 9월 11일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를 WTO에 제소하면서 양자협의 요청 서한을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 일본 정부는 9월 20일 양자협의 제안을 수락했다.

당사국 간 양자협의는 WTO 분쟁해결 절차의 첫 단계다. WTO 협정에서는 본격적인 소송에 앞서 당사국 간 협의를 통해 서로 만족할 만한 조정을 시도하도록 규정한다. 양국은 지난달 진행된 1차 양자협의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19일 2차 양자협의를 진행한다.

국장급을 수석대표로 진행되는 2차 양자협의에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정해관 신통상질서협력관이 한국 측 대표로 참석한다. 정해관 협력관은 18일 인천공항에서 출국을 앞두고 "기본적인 의제와 논의 사항은 지난 1차 협의와 유사하다"며, "일본이 이번 협의에 전향적인 태도로 임한다면 조기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최근 지소미아와 관련한 수출규제 협의에서도 아베 정부의 반응이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재판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여진다.

정해관 협력관도 “일본 측이 소극적이고 협의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다면 저희로서는 다음 단계인 패널(재판부) 설치 절차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추진해 나가야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사용되는 3개 물질(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에 대한 일본의 차별적이고 부당한 수출제한 조치는 WTO 상품무역협정(GATT), 서비스협정(GATS), 무역관련 지식재산권협정(TRIPS), 무역관련 투자조치협정(TRIMS) 등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양자협의를 불과 사흘 앞둔 지난 16일 일본은 규제조치 이후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던 '액체 불화수소' 수출을 승인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WTO 재판 절차에 대비한 정당성 확보 차원으로 보고 있다. 실질적인 수출 승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양대규 기자)
(이미지=양대규 기자)

아베 정부, 불화수소 승인으로 '규제 명분' 잃어

하지만 업계는 일본의 이번 승인이 결국은 수출규제의 원인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아베 정부는 ‘불화수소 등의 주요 소재가 군사용으로 반출됐다’며, 한국에 수출규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출규제의 명분을 잃은 것이다.

불화수소의 경우, 금속 제련과 반도체, 화합물 제조 등에 주로 쓰이지만, 군사용으로 신경작용제에 활용할 수 있다. 실제 수출통제체제 국제협약인 호주그룹(AG)에서는 생화학무기 전용 가능성을 이유로 불화수소를 통제하고 있다.

지난 7월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를 단행하며, 불화수소 등 주요 소재가 군사용으로 반출됐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발표 직후 이를 전면 반박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불화수소를 수입해 가공하거나 수출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긴급 조사를 실시했으나, 전혀 문제 삼을 만한 점이 없다고 밝혔다.

당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불화수소가 북한을 포함한 국제연합(UN) 결의 제재 대상국으로 유출됐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최종 사용자 보고 등 각종 의무도 적법하게 이행하고 있음을 재차 확인했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기업이 불화수소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목적지, 사용자, 용도, 수량 등을 알리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본포괄허가 및 특별일반포괄허가로 최종사용자를 확인하지 않는 일본 정부보다 한국 정부의 수출 규정의 신뢰성이 더욱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핵공급국그룹(NSG)와 호주그룹(AG), 미사일통제체제(MTCR), 바세나르체제(WA) 등 4대 국제 수출통제 체제와 3대 조약(CWC·BWS·NPT)에 가입했다. 아시아권에서는 한국, 일본 두 나라만 이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일본이 수출 규제를 완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적인 목적보다는 정치적인 목적이 큰 만큼, 수출 규제를 철회하는 것은 아베 정부에는 큰 리스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지=양대규 기자)
(이미지=양대규 기자)

수출규제, 일본보다는 한국이 더욱 유리한 상황

전문가들은 일본의 수출규제가 오히려 한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올해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1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며, 일본의 수출규제가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 더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8일 산업부와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는 163억 6600만 달러(약 19조 1500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206억 1400만 달러(약 24조 1100억 원)보다 20.6% 줄었다. 2003년 155억 6600만 달러(약 18조 2100억 원) 이후 가장 적은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대일 무역이 좋아진 것은 수입 감소폭이 수출을 크게 웃돌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까지 대일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 줄어드는 데 그쳤으나 수입액은 무려 12.8%나 감소했다.

지난 13일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물량이 훨씬 더 많이 줄었기 때문에 일본도 함께 수출규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소재·장비 '국산화'로 일본 영향력 벗어나고 있어

업계는 또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장비의 국산화로 일본의 영향력에서 점차 벗어나면, 앞으로 대일 무역 의존도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LG디스플레이가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에 필요한 고순도 액체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불화수소 국산화 테스트를 마치고 조만간 생산라인에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원익머트리얼즈가 EUV 반도체 공정에 에칭가스로 사용될 수 있는 세븐나인(99.99999%) 초고순도 불화수소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 반도체 라인에 사용되는 에칭가스 역시 SK머티리얼즈가 개발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양사가 개발 중인 반도체용 에칭가스에 사용되는 초고순도 불화수소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상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과기정통부)
제 1회 소부장 기술특위(사진=과기정통부)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대한 움직임은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측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일 정부는 일본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를 해결하기 위해 8월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R&D 투자전략 및 혁신대책’의 실행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1회 소재·부품·장비 기술특별위원회(이하 소부장 기술특위)를 개최했다. 소부장 기술특위는 소재·부품·장비 관련 연구개발(R&D) 주요 정책, 투자 전략, 성과관리 방안 등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지난달 25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 산하에 구성된 위원회다.

정부는 국가적 현안 등으로 정부 R&D과제의 시급한 추진이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정부가 정책지정을 통해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명시적 근거를 신설했다. 정책지정은 과제 선정 시 공모를 통하지 않고, 부처에서 R&D를 수행할 기관을 지정하는 방식이다. 또한 대·중견 수요기업의 연구개발비 출연·부담 기준을 중소기업 수준으로 완화해, 적극적인 연구개발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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