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지난 9월, 유튜브를 통해 “개 구충제를 먹고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해외 사례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에 절박한 암 환자 가족들은 ‘시도라도 해보자’며 시중에는 개 구충제 품귀 현상까지 일어났다. 

급기야 보건 당국까지 나서야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소문의 원인인 개구충제의 ‘펜벤다졸’에 대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말기 암 환자는 항암치료로 인해 체력이 저하된 상태로,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고 설명하며 가족들을 말려야 했다.

현실의 문제 앞에 과학이 무력할 때, 비과학이 현실을 파고든다. 

다만, ‘암’이라는 현실의 문제는 양자컴퓨팅이라는 과학과 기술의 결합체로 희망이 보인다. 

"암 연구는 컴퓨터에서 시작한다"

미국 듀크대 교수이자 종양학자인 제이슨 캐프닉(Dr. jason kapnick)은 암 정보 사이트 ‘Cancer Therapy Advisor’를 통해 “암 연구의 전진은 현재의 암 치료 옵션에 대해 더 잘 아는 방법일 뿐”이라며,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다면 암 연구에서도 도약이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암 연구의 진행은 컴퓨터에서 실험실로 이어지고, 그다음에는 의료 병상으로 간다”며, "속도에 따 라 암 치료법도 뒤따를 것”이라며 양자컴퓨팅이 암 연구에 가져올 효과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르다는 것일까?

양자컴퓨팅의 속도는 이미 활용 중인 기업이 증명하고 있다. 세계 최대 우주항공 및 방산 기업인 미국 록히드 마틴은 최초의 상용 양자컴퓨터로 알려진 D-웨이브(D-Wave)의 활용성을 빗대며, “양자컴퓨터를 쓰지 않으면 우주가 태어난 시간보다 오래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치로 예로 들면, 지난 10월 구글은 슈퍼컴퓨터로 10,000년에 걸쳐 수행해야 하는 연산을 자신들이 개발한 양자컴퓨터칩 ‘시카모어’로 200초 만에 해결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USC 정보 과학 연구소의 양자컴퓨터인 D-웨이브(
USC 정보 과학 연구소의 양자컴퓨터인 D-웨이브. 록히드 마틴은 D-웨이브를 우주 항공 궤도 계산과 같은 특정 고도 연산에 이용하고 있다. (사진=USC)

특히, 양자컴퓨팅의 빠른 성능이 암 연구 활용될만한 지점은 컴퓨터 단층 촬영(CT) 스캔과 같은 영상 분석. 

양자컴퓨팅을 활용한 암 치료용 약물을 개발 중인 스탠포드 대학의 게리 놀란(Garry Nolan) 교수는 “암과 싸우는 것을 볼 때 거의 모든 경우에서 ‘가상 실험 결과를 얼마나 빨리 스캔할 수 있을까?’ 혹은 ‘얼마나 빨리 그 사진을 얻을 수 있을까?’다”라며, “거의 항상 사용 가능한 컴퓨터 파워에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훨씬 더 빨리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가 있다면, 암 치료 역시도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게리 놀란 교수팀은 단세포 분석을 이용하여 암 및 백혈병, 자가면역 및 염증 연구를 계산적 접근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로 암 치료제 개발 연구 중인 텍사스 대학의 매튜 본(Matthew Vaughn) 생명과학 컴퓨팅 그룹 디렉터 역시 “양자 컴퓨터는 생물의학 분석, 유전학, 방사선 물리학 등에서 연구의 속도를 빠르게 가속화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환자의 빠른 치료에 도움되는 방향”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힘, 앞서 가고 빨리 간다

물론 이같은 미국의 양자컴퓨팅 응용에 대한 연구 노력은 정책적 지원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무려 10년 전인 2009년에 ‘국가양자정보과학비전’을 정하고 정보기관, 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관련 기술개발을 추진했다. 

지난 2018년 9월에는 양자컴퓨터 부문의 기술우위 유지를 위한 ‘양자정보과학 국가전략(National Strategic Overview for Quantum Information Science)’을 발표했다.

KISTEP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 소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이 주도한 ‘양자정보과학 국가전략’은 핵심은 정부 지원 확대를 통해 양자정보과학 분야 신기술개발을 지원하고, 기술적 난제 해결 연구에 예산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

전략 내에는 양자컴퓨팅 내 원천기술 연구 강화를 위해 10년간 지속적 투자 지원 약속은 물론, 초중고 교과과정에 양자과학 포함 등 인재 양성 프로그램 지원 확대, 산·학·관 공동연구센터 구축, 양자 인프라 시설 확충, 국제 협력 등의 추진 로드맵이 담겨 있다.

게다가 미 연방 상원은 양자 전략을 지원하기 위해 2018년 12월, 향후 5년간 최대 12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예산을 양자컴퓨터를 포함한 양자정보과학기술에 투자하는 ‘국가양자주도법(National Quantum Initiative Act)’을 통과시켰다. 해당 전략 문서에 따르면, 미국의 양자 정보 관련 예산은 컴퓨팅 연구 규모 수준을 상회한다.

미국 양자정보과학 국가전략 내 양자정보과학 산학관 협력 방안 (자료=KISTEP)
미국 양자정보과학 관련 연구 비중이 컴퓨팅 규모를 상회한다. (자료=NSTC)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양자컴퓨터를 비롯한 양자 과학 관련 연구 토대가 다소 부족한 상태다. 

물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나서 지난 1월, 양자컴퓨터 하드웨어 등 핵심 원천 기술 개발과 양자컴퓨팅 및 양자 알고리즘, 기반 소프트웨어 개발을 추진하는 ‘양자컴퓨팅 기술개발사업 추진계획’을 마련하긴 했다. 

그러나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총 445억 원의 투자 규모라는 점에서, 미국의 1조 4000억원의 예산에 비해 아쉬운 투자다. 

KISTEP에 따르면, 중국의 경우, 양자과학기술 강국 도약을 위해 2017년부터 안이후성 허페이시에 세계 최대 규모의 양자정보과학국가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하고, 2018년부터 5년간 1천억 위안(약 17조 원) 투입한다고 선언했다.

양자컴퓨터 개발 주요 기업 (자료=IITP, 量子コンピュータの最新動向(2018年1月版), Masayuki Minato)
양자컴퓨터 개발 주요 스타트업. SKT는 양자정보통신 분야 강화를 위해 IDQ는 인수했다.
(자료=IITP, 量子コンピュータの最新動向(2018年1月版), Masayuki Minato)

"우리나라, 아직 기회 있어...국가적 차원의 지원 전략 필요해" 

또 현재 미국처럼 구글, 인텔, IBM 등 글로벌 IT기업과 대학 등이 함께 양자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R&D 허브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며, 양자컴퓨팅을 실험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 설비도 없다.

우리나라의 양자컴퓨팅 관련 기술 수준은 미국의 66.3%로, 약 5.8년의 기술격차가 벌어져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나 포스텍(POSTECH), 카이스트 등 일선 연구기관에서 각개전투식으로 노력 중이기는 하나, 산학연이 연결된 국가 차원의 인프라가 없은 상태에서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점차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R&D 기관 관계자는 “특히 양자컴퓨팅의 경우, 기초 과학과 공학의 시너지가 중요하다”며, “AI 분야도 이제야 대학원 만들고 인재 육성하는 수준이라 쉽지 않겠지만, AI 역시 양자컴퓨팅을 통해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 금융 분석, 헬스 케어 등 양자컴퓨팅의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며, “글로벌 수준에서 봐도 아직까지는 양자 관련 기술 역시 상용화 전이니, 미국처럼 국가적 차원의 전략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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