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유다정 기자] 내외부 잡음에도 불구하고 설마 설마했다. 게임의 마스코트, 콤피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야생의 땅: 듀랑고'가 12월 18일 서비스를 종료합니다"라고 말하기 전까진 믿지 않았다. '오류', '흥행 실패'란 수식어로 끝맺기엔 너무 아까운 듀랑고. 이것은 2년이 채 안되게 듀랑고 곳곳을 누볐던 한 개척자의 소회다.

듀랑고는 처음부터 남달랐다. 광고엔 "듀랑고 워프 1일차 비상금을 태워 몸을 녹였다. 듀랑고 워프 10일차 더 이상 주택 대출은 없다"라는 멘트로 관심을 끌었다. 

듀랑고의 세계관은 원인 모를 낯선 땅으로 워프해 야생에서 살아남는 생존기다. 게임은 군인, 주부, 취업준비생 등 각자의 사연을 가진 플레이어가 여행을 떠난 기차에서 시작한다. 갑작스레 알 수 없는 사고로 열차 내 사나운 공룡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한다. 플레이어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공룡과 맞서 싸우게 된다. 그렇게 열차는 듀랑고라는 처음 보는 미지의 세계에 도착한다. 

듀랑고의 장르는 모바일 샌드박스 MMORPG로, 현대를 살아가며 잠자고 있었던 모험심을 자극한다. 개발자가 만든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놀이터처럼 흙, 돌 같은 놀이 재료를 주고 본인만의 플레이를 개척할 수 있다. 공략을 보지 않고 제멋대로 게임을 하다가 잘못 찍은 스탯에 승급하지 못하고 좌절했던 경험이 있는 본인에겐 제격인 게임이었다. 

실제로 유저들이 직접 겪는 일들을 소개하는 사이트인 '듀랑고 아카이브'엔 각종 괴상한 의식주가 나돌았다. 가죽을 삶아 훈제를 했더니 먹을 만한 요리가 되고, 또 희한하게 매력이 증가하는 버프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실로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인 것이다.

성장 스트레스도 없다. 만렙인 60레벨은 시간을 조금 투자한다면 일주일이면 충분히 도달 가능했고, 능력치를 높이고 싶은 부분에 스킬포인트를 배분하면 된다. 성장이 주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과금 또한 치장이나 편의성을 제공하는 정도다. 

(이미지=게임 내 필드 및 상점 화면 갈무리)
(이미지=게임 내 필드 및 상점 화면 갈무리)

계속되는 서버 문제에 발목

듀랑고는 '화이트데이', '마비노기' 등을 제작한 이은석 PD를 필두로, 5년 반의 개발 기간을 거쳤다. 그간 각종 테스트를 통해 게임을 살짝 접해본 유저들도 많아 기대감도 높은 상황이었다. 많은 이들이 몰린 탓에 대기열이 이어졌다. 게임에 접속해도 버그로 게임 이용이 어려운 경우도 계속됐다.

인구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무수히 많은 섬이 만들어졌다. 한번 만들어진 섬은 없애기도 어려웠다. 또, 듀랑고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요소가 서버 사이드에 저장되고 플레이어의 행동 하나 하나가 세계에 영향을 남기게 된다. 유저 한명 한명이 내는 트래픽 또한 엄청날 것이다. 조그만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만드는 나비효과처럼 말이다. 출시 초기인 2018년 2월 기준으로도 듀랑고 서비스에 사용된 서버는 7962대의 머신, CPU는 7만2774개, 램 메모리는 273TB에 달했다. 

애초에 넥슨은 게임을 내면서 "매출 상관 않겠다", "10년 넘게 사랑받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순위에 연연하진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과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 출시 이후에도 나오지 않는 매출은 둘째치더라도, 가중되는 트래픽으로 인한 서버비용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월 서버비용이 10억원이 넘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허리띠 졸라매기'에 결국

애초에 국내 게임업계 큰 형님격인 넥슨이기에 가능했던 게임인 셈이다. 그런 넥슨의 상황도 좋지만은 않다.  

넥슨 매출 반 이상이 중국에서 나온다. 캐시카우 '던전앤파이터' 덕분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중국 정부의 압박, IP 노쇠화로 매출 감소는 예견됐던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2분기에 넥슨의 중국 매출액은 2257억원(212억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8.2% 감소했다. 

게임산업 전반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었을까. 넥슨의 지주회사 NXC의 김정주 회장은 넥슨 매각에 나서기도 했다. 이때 출시를 준비 중이었던 '트라하'는 '토르'로 유명한 크리스 햄스워드를 광고 모델로 내세우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나름의 몸값 불리기인 것이다. 결국 '어두운 전망 대비 비싼 몸값'이라는 오명만 남긴 채 매각도 실패하자, 넥슨은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나선 상태다. 

4월부터 '히트', 'MOE'(마스터 오브 이터니티), '니드포스피드엣지', '배틀라이트' 한국 서비스, '어센던트 원' 등이 서비스 종료를 밝혔다. 서비스 중인 게임들도 종료되는 상황에 하물며 개발 중인 프로젝트들도 버티지 못했다. 네오플 산하 스튜디오42의 해산에 따라 '데이브'와 '네 개의 탑' 등 다양성 게임들도 출시가 좌절됐다. 정상원 개발 총괄 부사장이 세운 띵소프트가 10여년 동안 준비해 온 '페리아연대기'도 그 중 하나로, 정 부사장은 넥슨을 떠나기도 했다. 

내부에서 '허리띠 졸라매기'가 한창인 가운데, 듀랑고는 수뇌부는 물론 일반 개발자 사이에서도 눈칫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 것이다.

일반 유저가 만든 듀랑고 게임닷 사이트에서 유저들이 마지막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이미지=게임닷 사이트 갈무리)
일반 유저가 만든 듀랑고 게임닷 사이트에서 유저들이 마지막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이미지=게임닷 사이트 갈무리)

결국 지난 16일, 넥슨은 12월 18일 듀랑고의 서비스 종료 소식을 알렸다. 이날 서비스 종료와 함께 커뮤니티도 폐쇄된다. 페이스북 및 네이버 카페, 아카이브는 동시 삭제되며, 듀랑고 맵스의 삭제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팀이 없어지며 관리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간의 게임 데이터가 모두 없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긴 힘들다.

듀랑고는 지질·고생태학 박사과정 출신의 게임 디자이너가 참여해 생태계를 만들었다. 론칭 기준 공룡만 80여종. 실제 동물들의 소리를 재료로 녹음하는 등 독창적인 사운드와 환경에 따라 적절하게 바뀌는 BGM 또한 매력적이다. 잠이 안 오는 새벽엔 괜히 한 번 필드를 저벅저벅 걸으며 자체 ASMR을 했던 힐링게임이기도 했다. 양승명 PD가 개발자 노트를 통해 "서비스 종료 후에도 플레이어가 꾸려둔 개인섬을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언급하긴 했으나, 3D 이미지 형식의 듀랑고 맵스 수준일 공산이 크다. 듀랑고의 감성을 담기엔 역부족일 듯해 아쉽다.

많은 업계 관계자들도 이 비보를 접하며 "듀랑고는 넥슨이 게임업계 리딩컴퍼니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시도인데, 결국 서비스가 종료하게 돼 안타깝다"고 전했다. 매출만 잘 나온다고, 회사 규모만 크다고 리딩 컴퍼니가 될 순 없다.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꾸려나가며 생태계를 확장시키고, 트렌드를 선도해나가는 것이 리딩 컴퍼니의 역할이다. 듀랑고의 섭종이 실로 아쉬운 이유이자, 실패가 아닌 이유다. 

매출 못내는 망겜 '듀랑고', 유저들에겐 '갓겜'이었음을. 떠나는 길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본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