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일본 본사 임원의 발언 한 마디에서 시작된 '유니클로 불매운동'이 절정을 맞고 있다. 최근 공개한 후리스(폴라플리스 소재로 된 유니클로 대표 제품) 광고 영상이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 비하' 의혹을 받으면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단문 번역과 인물 설정만으로 '역사 왜곡'을 언급하기엔 논리의 비약이 심하단 주장이 나온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유니클로가 올해 가을·겨울(F·W) 시즌 후리스 출시를 맞아 이달 1일 공개한 광고에는 패션 컬렉터로 소개된 98세 할머니와 패션 디자이너인 13세 소녀가 등장한다. 30초 분량의 이 영상에서 할머니는 소녀에게서 "제 나이 땐 어떻게 입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맙소사! 그렇게 오래된 건 기억하지 못해!(Oh My God, I can't remember that far back!)"라고 답한다.

그런데 지난 10일 유니클로코리아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영상에선 할머니의 대사가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로 의역됐다. 여론의 빈축을 산 것도 여기에서다. 일본 광고에는 "옛날 일은 잊어버렸어.(昔のことは、忘れたわ。)"란 자막이 달린 점을 미뤄 볼 때 유독 국내편에서만 '80년'으로 구체화한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논란이 된 유니클로 후리스 25주년 영상 캡쳐.
논란이 된 유니클로 후리스 25주년 영상 캡쳐.

영상에서 언급된 대로 8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강점기 시기다. 일본은 지난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했다. 특히 올해 기준 80년 전에 해당하는 1939년은 국가총동원법에 따른 국민징용령 선포로 강제징용이 본격화한 때다. 해마다 많은 조선인들이 노동력에 강제투입됐고 여성들은 위안부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파장은 컸다. 많은 누리꾼들은 해당 광고의 자막이 과거 한·일 관계를 감안하지 않은 데다 자칫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조롱으로 읽힐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지난 21일 청년단체인 대학생겨레하나와 평화나비네트워크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유니클로 디타워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조롱한 유니클로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 19일엔 17개월간 미쓰비시중공업에서 강제징용 피해를 겪은 양금덕 할머니가 전남대 사학과 윤동현씨와 함께 '유니클로 광고 패러디' 영상을 찍어 게시하기도 했다. 영상에서 양 할머니는 "누구처럼 원폭이나 방사능 맞고 까먹지는 않아"라며 "(윤씨 나이 때 겪은) 그 끔찍한 고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라고 말했다.

(사진=신민경 기자)
(사진=신민경 기자)

반면 전문가들 사이에선 영상 속 출연자 나이 설정과 번역 문구에 비하 의도가 담겨 있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줄을 잇고 있다.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은 유니클로가 애써 우리나라 역사를 조롱할 이유가 없단 얘기다. 앞서 유니클로는 일본의 수출 제재 조치가 있은 지난 7월부터 매출이 급감해 최대 60%의 낙폭을 보인 바 있다. 

영어교육 전문가인 이보영 이화여대 외국어교육특수대학원 부원장은 디지털투데이에 "대다수 번역가들이라면 굳이 80으로 수치화하진 않을 것 같지만 다른 한 편으론 '정말 옛날 일'임을 강조하기 위해 융통성 있게 번역을 잘 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면서 "의도는 번역을 맡은 이만 알 수 있겠지만 이같은 정황만으로 조롱과 비하 의도를 담았다는 것은 비약이다"고 말했다.

NHK 외부연구원과 동아시아일본학회 학술위원장을 역임한 이연 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은 "불매운동이 진행형인 한국에선 광고 노출도를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데 국민 정서를 고려하지 않고 송출한 점은 실망스럽다"면서도 "수익성을 만회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유니클로가 고의로 한국편 영상을 내놨을 것 같진 않다"고 했다.

기업의 마케팅 활동은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고 파악해야 한단 의견도 나온다. 시종일관 시국과 연결지어 비난거리를 찾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단 얘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본은 90세에서 100세의 사람들이 200만명을 웃돌기 때문에 98세 모델이 등장하는 게 결코 희소한 일이 아니다"면서 "젊은이나 고령자나 남녀노소 모두 입을 수 있는 옷이란 메시지를 봐야 하는데 일련의 사건들로 예민해진 소비자들이 과민 반응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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