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고정훈 기자] 엘리베이터(승강기) 업계의 편법 하도급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설치 근로자의 사망사고를 두고 편법 하도급이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어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는 국정감사(국감)을 통해 엘리베이터 업계의 이 같은 문제점을 끝까지 추적해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21일 환노위는 국감 증인으로 엘리베이터 4사(현대엘리베이터,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오티스엘리베이터, 미쓰비시엘리베이터) 대표를 채택했다. 지난 12일 경기 평택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근로자의 사망사고를 되짚기 위해서다.

당시 티센크루프 협력업체 근로자 A씨는 신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 승강로 내부에서 작업 발판용 비계(통로 및 작업을 위한 임시가설물)를 설치하던 중 갑자기 비계와 함께 1층으로 추락했다. 이후 A씨는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목숨을 잃었다.

고용노동부는 원인으로 안전대책 미흡을 꼽았다. 고용노동부 초동수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비계는 마지막 4·5층에만 설치됐다. 이 비계는 1층부터 쌓아야 무너질 위험이 적다. 또한 A씨는 안전벨트는 착용했으나 막상 안전벨트의 로프를 걸고 작업하지는 않았다.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4개사 엘리베이터 대표가 증인으로 채택됐다.(사진=고정훈)

이날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낸 건 티센크루프 서득현 신임 대표 뿐이었다. 그나마 현대엘리베이터만이 송승복 대표 대신 전용원 설치본부장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오티스와 미쓰비시는 회의 일정과 건강 등 사유로 불참석했다.

주요 질의는 '편법 하도급'에 집중됐다. 그동안 승강기 업계는 '공동수급'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하도급 계약을 해 왔다. 건설법상 승강기 설치에서 하도급 사용이 금지되자 '공동수급'이라는 편법을 이용한 것이다.

이는 엘리베이터 업체와 협력업체간의 계약서에서 드러난다. 동등한 '공동수급' 관계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갑과 을의 '신분 차이'는 뚜렷했다. 

환노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티센크루프와 협력업체 간 계약서를 살펴보면, 계약이 만료되더라도 최소 10년 동안 티센크루프와 티센크루프가 지정한 회계사 등은 협력업체를 감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 있다. 

또 갑(티센크루프)은 을(협력업체)에게 계약대금을 지급할 때 60일이라는 여유기간을 갖지만, 반대로 을은 계약기간 내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못할 경우 지연 수수료를 현금으로 즉시 갑에게 지급해야만 했다. 또 갑이 손해를 입을 경우 그 책임은 을이 지도록 명시돼 있다.

한정애 의원은 "티센크루프는 하도급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계약서 상에 하도급 업자(subcontractor)라는 단어가 이미 등장한다. 이는 사실상 하도급 계약이 이뤄지고 있는 걸 보여주는 셈"이라며 "현재 이 계약 외에도 현대엘리베이터 58.1%, 오티스 38.6%, 티센크루프 68.9% 비율로 유지 도급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 의원은 협력업체가 처한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최근 사고가 발생한 평택 작업 현장의 경우 5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데 투입된 사람은 3명이다. 협력업체는 하루 작업과 관련해 적은 비용을 받는다. 인건비나 나올지 모르겠다"며 "원래 승강기를 납기하기로 한 날짜가 10월 10일이다. 사고가 난 시점(12일)에서 이미 기한이 넘어버렸다. 앞뒤가 촉박한 상황에서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티센크루프 서득현 대표는 "이번 사망사고에 대해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겠다. 지적한 부분 유념해서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했다.

이날 연이은 엘리베이터 대표의 불참 소식에 국감장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기도 했다. 한노위 김학용 위원장은 서 대표의 답변이 두고 "불성실하다", "변호사가 적어준 대로 읽지말라"고 지적했다. 이후 국감이 종료되기 전 김 위원장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표들이 참석하지 않았다"며 추후 현안 질의를 통해 다음달 대표들이 출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환노위 한정애 의원이 국감에서 공개한 엘리베이터 업체별 비교표와 티센크루프 계약서 내용 (자료=한정애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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