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휴대전화로 전송 온 QR코드를 차량 뒷문 쪽 카메라에 댔더니 수납고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구입한 물건을 꺼내고 다시 저장고 문이 닫힐 때까지도 차 안의 배송기사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대형마트 내 셀프 계산대에서 물건을 사고 무인 접수대로 가서 배송 신청을 한 뒤 집 앞으로 전달 받기까지 모든 과정이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이젠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물건을 사고 팔수 있게 된 걸까.

이마트는 스타트업 '토르드라이브'와 협력해 자율주행차를 활용한 배송서비스인 '일라이고(eli-go)'를 내놨다. 지난 15일부터 서울 여의도점에서 2주간 시범 운영 중이다.

직원이 배송할 물품을 수납고에 싣고 있다. (사진=신민경 기자)
직원이 배송할 물품을 수납고에 싣고 있다. (사진=신민경 기자)

지난 16일 오후 1시20분께 여의도점에서 물건을 구입한 뒤 주차장 전용 엘리베이터 맞은편에 있는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를 찾았다. 키오스크를 통해 선택할 수 있는 일라이고 서비스는 '직접 픽업'과 '집 앞 배송' 등 2가지다. '직접 픽업'을 선택하면 아파트 내 합의된 장소로 소비자가 내려와 직접 받아가야 한다. '집 앞 배송'은 배송기사가 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일단 '직접 픽업' 단추를 누르고 점포에서 가까운 아파트의 동과 호수를 입력했다. '집 앞 배송'은 인근 아파트 단지인 금호리첸시아와 삼부아파트의 실 거주자만 이용할 수 있는 데다 구매금액이 5만원을 넘어야 해서다. 화면 상 지도로 표시된 픽업 장소와 신청 정보를 확인하면 배송장이 출력된다. 일라이고 서비스는 하루 3번 운영되며 각각 오전 11시30분과 오후 2시, 4시에 차량이 출발한다.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최대 물량 수는 3건이다.

배송 정보를 입력하면 이마트에서 접수 확인을 알리는 카카오알림톡을 보낸다. (이미지=신민경 기자)
배송 정보를 입력하면 이마트에서 접수 확인을 알리는 카카오알림톡을 보낸다. (이미지=신민경 기자)

배송 직전엔 차량 수납함을 열 인증 수단인 'QR코드'가 카카오알림톡이나 문자메시지로 온다. 여의도점에서 목적지까지는 걸어서 15분이 걸렸다. 내비게이션에 저장된 최적의 경로로 운행한 자율주행차는 미리 도착해 있었다. 차량 앞으로 가서 QR코드를 비추니 수납고가 열려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전하게 배송 임무를 마친 자율주행차는 다음 배송지로 훌쩍 떠났다.

일라이고의 두드러진 장점은 비대면이다. 중간 서비스 제공자와 마주하거나 살갗이 닿을 필요가 없단 얘기다. 1인 여성가구가 늘고 주거침입 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마트가 택배업계에서 약한 고리로 꼽혔던 '여성 소비자 배송문제'를 해소하고자 한 점이 눈에 띈다.

자율주행차량 일라이고 내부. (사진=신민경 기자)
자율주행차량 일라이고 내부. (사진=신민경 기자)

비대면화 등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 수급 형태를 스타트업과 협업을 통해 실현시킨 점도 돋보인다. 지난달 29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밝힌 '4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에 따르면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등에 대한 전망이 기준치를 크게 밑돌았다. 오프라인 유통업의 경기가 불황으로 허덕이는 중에도 업계 안팎의 유통혁신 의지는 주변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해 4월 자율주행 스마트카트 '일라이'를 선봬고 국내 점포 140여곳의 절반에 무인 계산대를 들여 놓는 등 새 구매 환경 구축에 힘쓰고 있다.

다만 시범 운영임을 감안하더라도 엉성해 보이는 항목들이 상당했다. 이마트가 일라이고를 내놓은 명분은 '자사 점포의 유통 혁신 가능성 진단'이다. 혁신인지 아닌지는 소비자와 업계 종사자 등 이해관계자가 결정짓게 되는데 이 가운데 이득을 보는 입장이 뚜렷하지 않다는 게 흠이다.

QR코드를 차량 카메라에 인식하면 자동으로 수납고가 열린다. (사진=신민경 기자)
QR코드를 차량 카메라에 인식하면 자동으로 수납고가 열린다. (사진=신민경 기자)

일단 일라이고를 통한 인력 감축이나 인건비 절감의 효과는 거의 없다. 좁고 복잡한 아파트 단지를 들어설 때에 한해 수동으로 운전할 직원 1명과 집 앞 배송을 위한 직원 1명이 차 안에 타고 있어서다. 소비자 입장에선 대면을 꺼리는 일부 여성 소비자를 제외하곤 되레 퇴보한 서비스로 느낄 수도 있다. 자율주행차량 배송의 시도가 최근 유통업계의 화두로 올라선 '라스트마일(last-mile, 소비자가 제품 배송을 받는 최종 구간)'을 좁히기는커녕 벌여서다. 라스트마일을 획기적으로 좁히기 전까진 소비자로서 편리함을 체감하진 못할 것 같다.

직접 픽업의 매력이 낮은 점도 아쉽다. 기자가 방문한 16일 오후엔 토르드라이브 엔지니어 2명이 차를 몰았다. 단지 안에선 안전 등의 이유로 합의된 택배 수령지점에서만 차를 주차시킬 수 있다. 그런데 수령 장소가 모호해 각 아파트 1층 현관에서 대략 20~30m는 걸어 나온 후에야 차량을 만날 수 있었다. 일라이고의 배달서비스가 '획기적인 혁신'이란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이때문이다.

이마트는 오는 28일까지 일라이고를 시범 운영한 뒤 상용화를 위한 개발을 계속할 예정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시행 첫날엔 1건이 접수되는 등 이 서비스를 모르고 있는 소비자가 많았는데 점차 배송 요청이 늘고 있다"며 "일라이고의 주력 서비스는 직접 픽업으로, 안심택배를 원하는 1인 여성가구의 수요를 충족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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